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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은 온전합니까?

어린이 국악뮤지컬 <우리집에 집신이 살아요> 리뷰

송은이 (자유기고)

미추홀구에는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미추홀학산문화원이 있다. 지역 예술가와 마을 동아리를 연결해 삶의 이야기를 예술 작품으로 창작, 공연하게 도와주는 입체적인 생활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4층에 있는 학산소극장에서는 예약만 하면 누구나 음악, 연극, 뮤지컬 등 여러 분야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우리집에 집신이 살아요>를 만난 곳도 바로 이 학산소극장이다.

<우리집에 집신이 살아요>(연출 오지나)는 연극 놀이터 ‘해마루’와 예술공작소 ‘웃다 짓다’ 극단이 공동으로 창작, 제작, 공연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20 경기예술활동’, ‘2021 경기예술활동 지원사업-모든 예술 31’, ‘2022 아티스트 인 과천’, ‘2023 아이들극장 창작지원작품’에 선정되어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좋은 작품을 만났다는 생각에 공연을 보기 전부터 기대가 됐다. 또한 오지나 연출가가 대표인 극단 예술공작소 ‘웃다 짓다’가 인천에 기반을 둔 단체라 더 반가웠다.

<우리집에 집신이 살아요>는 집[家]신 또는 가택신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전통 신들이 주인공이다. 이 연극에 나오는 주요 집신은 집 전체를 관장하는 성주신(이일규),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백은숙), 물을 관장하는 우물신(김주희), 장맛을 관리하는 장독신(정성규), 화장실을 관장하는 정랑각시 또는 측간신(이명은)이다. 한여름 여기저기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등골 오싹한 귀신 얘기뿐인데 우리 집을 지켜주는 신들 이야기라니, 연극 소재가 참으로 신선하다. 아이들이 공연 내내 대답, 박수, 노래 등 적극적으로 연극에 참여했던 것을 보면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한 이야깃거리다.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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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집에 집신이 살아요> ©예술공작소 ‘웃다 짓다’

무대에는 오래된 집 한 채가 꾸며져 있었다. 100여 년 전부터 집과 변할매 가족을 보살피며 살아온 집신들의 집이자 변할매 집이다. 무대 중앙 뒤쪽으로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본채, 무대 오른쪽 앞에는 우물, 왼쪽 앞에는 크기가 다른 장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가 있었다. 게다가 평상에, 외양간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부엌 앞에 따로 설치한 싱크대와 그 위에 있는 너무 현대적인 주전자가 변할매 집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긴 했지만 공연을 즐기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필자의 할머니 집에도 부뚜막과 뒤뜰에는 큰 장독 여러 개가 있었다. 마당에 있던 평상은 동네 할머니들 놀이터였고 마당 구석에는 재래식 화장실 두 개가 있었다. 정랑각시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할머니 집에선 화장실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워 주로 요강을 사용했다. 무대를 보며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즈음 공연이 시작되었다.

국악 뮤지컬답게 배우들이 풍물놀이로 극의 시작을 알렸다. 무대에 오르기 전 배우들이 직접 북, 징, 장구, 소고로 풍물을 쳤고 별달거리 장단에 맞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십여 분간의 풍물놀이는 처음 만나는 관객과 무대와의 낯섦을 없애주었다. 풍물놀이뿐만 아니라 한 시간가량의 공연 내내 판소리 사설, 랩, 창, 민요 등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우물신의 물 흘러가는 듯, 숨넘어가는 듯한 창법은 독특했고 조왕신과 정랑각시의 아파트 송(이라고 필자가 칭함)은 익살스럽고 재미있어 관객들은 후렴구 ‘아파트’를 신나게 외쳤다. 필자 뒤 유아는 정랑각시를 놀리는 장독신과 우물신의 ‘똥또로로 똥똥’ 가락에 웃음을 터뜨렸다. 변할매(박정열)가 흥얼거리는 트로트 구절들, 특히 절묘한 순간에 훅 들어온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에 절로 웃음이 났다. 이 극은 유아에서 어른까지 아우르는 웃음으로 어린이극은 어른이 보기에 ‘유치하다’는 고정관념을 깨 주었고 끝까지 지루하지 않았다.

극의 마지막도 풍물놀이로 닫았다. 배우들은 액맥이 타령과 신나는 풍물놀이를 치며 자연스럽게 극장 밖의 포토존으로 이동하는데 극이 계속 이어지는 줄 착각해 하마터면 따라갈 뻔했다. 극단의 노련미가 돋보이고 그 덕분에 질서 있게 움직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필자가 몇몇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어봤는데 풍물놀이에 감명받은 아이가 있을 정도로 흥겨워했다. (6학년 김OO, “꽹과리랑 막 북이랑 장구랑 너무 잘 쳤어요. 다음에 또 보고 싶어요.”) 무대 뒤 한옆에서 시종일관 장구 열연을 펼친 연주가에게도 박수가 쏟아졌다. 배우들의 연기에 맞춰 느리게 혹은 빠르게, 배우들이 부르는 뮤지컬 음악에 장구 가락을 얹어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장구 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필자가 앉아 있는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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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집에 집신이 살아요> ©예술공작소 ‘웃다 짓다’

변할매 아들이 변할매에게 낡은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을 권유하면서 집신들의 갈등은 시작된다. 아파트에서는 구조상 서로의 영역이 겹치고 변할매 남편이 황소를 팔아버려 사라져야 했던 우마신(소와 말을 보호하는 신)처럼 집신들의 존재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집신들은 본분을 잊은 채 이사 여부를 놓고 대립한다. 오지나 연출가는 집신들을 통해 ‘예스러운 것이 좋다’가 아니라 ‘집’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마을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집신들이 과거를 넘나들며 변할매 집의 추억을 엮어가고 왜 열린 결말로 극을 끝내야 했는지 이해가 된다. 또한 오지나 연출가는 자의든 타의든 오래 머물지 않는 오늘날의 주거 방식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집에 대한 추억을 쌓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집을 집으로 보지 않고 ‘오늘의 시세’로 집을 바라보고 있는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인 것 같다.

변할매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을까? 이사를 했다면 집신들도 같이 이사를 했을까? 아니면 알아서 살길을 찾았을까?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우리집에 집신이 살아요> 시즌 2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송은이

송은이 (宋恩伊, Song, Eun Yi)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들과 맘(Mom)대로 그림자극 동아리를 이끌며 나름 동네 아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어요. 지금은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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