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김시덕 도시문헌학자가 지켜본 인천

김성호 (경인일보 기자)

인천문화재단은 지난 8월 29일 도시문헌학자인 김시덕 박사를 초청해 ‘2022 문화예술 열린강좌’를 개최했다. ‘2022 문화예술 열린강좌’는 인천문화재단의 특강 시리즈다. 도시 인천, 나아가 한국 사회와 전 세계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변화의 흐름에 대응하는 문화예술 정책 방향을 가늠해보자는 차원에서 마련한 강좌다. 인천문화재단이 주목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은 인구·기후위기·과학 기술 등의 분야다. 이번 강좌는 그 첫 순서로 마련됐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가 ‘변화하는 인천의 도시 환경과 문화예술’을 주제로 강좌를 진행했다.

자료를 보여주며 강연하고 있는 김시덕 박사

자료를 보여주며 강연하고 있는 김시덕 박사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김시덕 박사는 최근 국내 대표 유튜브 경제 채널인 ‘삼프로TV’(구독자 200만명)에서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라는 코너를 진행하며 이름과 얼굴을 널리 알렸다. 그는 꾸준히 책도 펴내고 있다.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포레스트 북스 刊)·‘대서울의 길-확장하는 도시의 현재사’(열린책들 刊)·‘갈등 도시-서울에서 경기도까지, 시민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열린책들 刊), ‘일본인 이야기 1·2’(메디치미디어 刊) 등의 저서가 있다. 한 온라인 서점은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동네 근처에서 먼 지방까지 다니며 도시 곳곳을 촬영하고 기록하는 도시 ‘답사가’이자, 도시에 남아있는 지나간 시대의 흔적과 자취를 추적하며 도시의 역사와 현재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도시문헌학자’이다.”

설명처럼, 그는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좌’ 내내 우리나라 도시 곳곳을 직접 답사하고 촬영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박물관에 초대받아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그가 이번 강의를 위해 가져온 외장형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자료만 무려 4테라바이트라고 한다.

강좌에 참여한 시민들이 쉬는 시간에 김시덕 박사가 가져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강좌에 참여한 시민들이 쉬는 시간에 김시덕 박사가 가져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김시덕 박사는 이날 강좌에서 제일 먼저 자신이 최근 구입한 자료라고 하며, 1960년 역무원들이 사용하던 여객열차 시각표를 꺼내 보여줬다. 또 직접 만져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록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는 “문헌학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말하는 이야기는 잊어도 되지만 손으로 만져본 그 느낌을 기억해달라.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을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역사학자나 사회학자와 다른 점은 바로 자료를 ‘소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료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예를 들면 1960년 여객열차 시각표에 있는 철도 노선 명칭만으로도 엄청나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은 사라진 철도 노선이 많은데, 그를 통해 도시와 도시가 관계를 맺어온,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들려줬다. 이밖에도 고지도·철도 노선도·열차 시각표·위성 사진 등 다양한 자료가 동원 됐다.

그가 장기간 답사하며 촬영한 사진을 통해 확인하는 도시 곳곳의 변화상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수인선, 소래포구 등 그의 사진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지금은 이미 사라져버린 인천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안내도와 1960년에 대한민국 교통부에서 발간한 여객열차 시간표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안내도와 1960년에 대한민국 교통부에서 발간한 여객열차 시간표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그의 강연이 자신이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소개’하는데 그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중간중간 꼭 전해야겠다고 싶은 외부인으로서의 몇 가지 ‘조언’을 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문제였다. 그는 어찌 보면 이 주제가 이번 강연의 핵심이라고 했다. 작금의 인천에서는 지역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을 둘러싸고 ‘개발’과 ‘보존’이 대립하는 양상의 갈등이 자주 불거졌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는 인천이라는 도시가 이 문제에 대해 지금보다 “과감해야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0년의 뼈아픈 역사를 미워한 나머지 무작정 지우려 하지 말고, 자신 있게 보존할 것이냐, 아니면 반드시 남길 것만 남기고 과감하게 밀어버리느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였다.

그는 “재개발·재건축을 할 때마다 지키자, 말자 싸울 것이 아니라 전국적 규모의 ‘살생부’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어릴 적 추억이 있으니 소중하다는 논리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국가적 가치를 따져봤을 때 가치가 있다면 살린다거나, 인천의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는 등의 기준을 지방자치단체가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기준을 제시한 이후 이 기준에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재개발·재건축도 허용해야 한다.”며 “무작정 붙들고 있어서는 도시가 쇠퇴하고 인구도 줄며, 결국 아무도 찾지 않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식 건물에 카페를 만들고 팥빙수 가게를 만들어도 결국에는 상주인구가 늘어야 도시 상권이 살아나는 것”이라며 “관광객을 오게 만들려면 정말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찍 시작하고 더 규칙적으로 남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의 구도심에서 반드시 보존해야 할 몇 군데를 직접 꼽기도 했다. 그곳은 현재 개발사업이 추진 중인 인천 동구 금송구역 일대의 개량형 기와주택 단지다. 그는 이곳이 인천 최대 규모의 개량 기와집 단지라는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일대의 위성 사진을 소개하며 ‘ㅁ’자 ‘ㄱ’자 등 형태의 가옥이 몰려있는데, 중부지방형 도시형 한옥 단지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서울의 익선동, 북촌, 서촌 일대와 같은 ‘자산’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곳까지 헐어버린다면 인천에는 과연 뭐가 남을 것인가.” 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금송지구 일대의 한옥을 보존한다면, 주변에 새로 들어설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도 훌륭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구도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 강북과 사대문 안으로 놀러 오고, 세종신도시 도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도심을 찾아 여가를 즐기는 것과 같은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한 토막이라도 살릴 여지가 있다면 남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천 동구 송림동의 재개발 정비구역 모습.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구 전도관 건물.

인천 동구 송림동의 재개발 정비구역 모습.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구 전도관 건물.
(출처: 네이버 개인 블로그 바로가기)

인천 동구 금송구역에 있는 기와주택 사진

인천 동구 금송구역에 있는 기와주택 사진
(출처: 네이버 개인 블로그 바로가기)

김성호 경인일보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기자

김성호(金成浩, Kim Sung Ho)

경인일보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기자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Pos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