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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다시 찾은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배윤수 (김포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우리 둘째 아이는 요즘 락 퓔에 흠뻑 빠져서 산다. 브릿 락과 더불어 하드 락, 프로그레시브 락 등 그 역사와 함께 일찍 세상을 등진 지미 핸드릭스(본명 :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영어: James Marshall Hendrix, 1942년 11월 27일 ~ 1970년 9월 18일), AC/DC 리드 싱어 본 스콧(Bon Scott, 1946년 7월 9일 ~ 1980년 2월 19일), 레드 제플린 드러머 존 보냄(John Henry “Bonzo” Bonham, 1948년 5월 31일~1980년 9월 25일), 너바나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본명 : 커트 도널드 코베인(Kurt Donald Cobain, 1967년 2월 20일 ~ 1994년 4월 5일) 등 락 밴드 음악 세계와 뮤지션들에 대한 인생사를 쉼 없이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락 음악에 대해 알고 있는 ‘썰’을 늘어놓는다. 누가 락 음악을 들어보라고 권한 적도 없었던 터라 둘째 아이가 락 뮤지션 한 명 한 명의 인생사나 곡 해석(?)을 내놓으며 락 음악을 주제로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음악을 통해 이렇게 세대를 넘어 공감대를 이루며 그 무섭다는 사춘기 ‘중 2병’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게 락 음악에 흠뻑 취한 둘째 아이는 올해 여름방학에 생일 선물로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후 펜타락페)에 꼭 가고 싶다며 내게 조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그렇게 하여 둘째 아이와 함께 3년 만에 동행하여 펜타 락페 현장으로 걸어가면서 남모르는 설렘과 두근거림, 그리고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펜타 락페에 대한 옛 추억을 회상하며 축제 현장 속으로 둘째 아이와 함께 향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메인 스테이지에서 들려오는 크라잉넛의 인사말에 매인 스테이지 공연이 시작되는 걸 감지한 둘째 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며 “먼저 가 있을게요!!!”하며 뛰어 들어간다. 나의 23년 전 모습 그대로…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포스터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포스터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포스터
(출처: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대한민국 락 페스티벌 전설의 시작

오래된 기억을 잠시 떠올려 본다. 1999년 7월 국내 최초의 락 페스티발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와는 달리, 토요일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해서 점점 굵어지던 빗줄기가 축제 현장을 온통 진흙탕 수렁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결국 상당수 관람객이 공연 하나 온전히 보지 못하고 사람 구경만 실컷 하다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발은 ‘비운의 락 페스티벌’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날 딥 퍼플(어: Deep Purple 제1기 전성기 1968~1976, 제2기 전성기 1984~현재)의 노래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반전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억수같이 내리는 소낙비에 진흙탕이 된 축제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거침없이 뿜어내던 전설의 하드락 밴드 딥 퍼플 이언 길런의 그 소름 끼치던 목소리를, 많은 관람객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이언 길런의 외마디 비명에 가까운 노랫소리가 그 뒤로 7년이 지난 2006년에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존재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딥 퍼플의 공연

1999년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딥 퍼플의 공연
(출처: 유튜브)

어스름 어둠을 가르며 한줄기 빛줄기처럼 가르던 이언 길런의 딥 퍼플 공연이 이후에도 계속 회자된 이유는, 강우성 소나기로 인한 빗물이 관람객의 정강이까지 차오를 정도의 상황에서 밴드가 서는 무대 역시 빗물로 인한 감전 사고 위험이 커서 절대로 공연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딥 퍼플은 자신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축제 현장에 운집한 한국 팬들에 감동하여 악조건 속에서도 공연을 강행했고, 그 순간은 1999년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덕분에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은 대한민국 최초로 티켓을 판매하여 관람객을 모은 락 페스티벌의 시조로 기록될 수 있었다.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딥 퍼플은 이후 팬들의 요청으로 한국을 다시 방문하여 공연하게 되었고,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현장에서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
(출처: 한겨례 신문)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
(출처: KOCCA MUSIC 네이버 블로그)

앞서도 언급했지만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이 개최된 지 7년 만에 2006년 7월 28일 ‘제1회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날 역시 7년 전처럼 시작부터 3일 내내 비가 내렸으나, 7년이라는 세월 동안 국내외 팝 음악시장과 함께 성장한 락음악 매니아들의 열정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락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현장을 방문했고, 그들은 진흙탕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했다. 이때부터 펜타 락페는 비를 몰고 다닌다는 ‘진흙탕’ 페스티벌로 알려지게 되었고, 여성용 장화가 새로운 축제 굿즈(Goods)로 등장하면서 축제 현장의 유행을 선도하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펜타 락페의 다양한 굿즈 아이템이 입소문에 의한 반사이익을 얻게 되면서 펜타 락페가 젊은이들의 트렌디한 음악 축제로 자리 잡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포스터 사진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개인 블로그)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라인업 사진

1999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라인업 사진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K-Culture의 또 다른 성장동력 펜타포트

1999년 7월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이 비운의 축제로 끝난 이후, 7년의 공백을 딛고 다시 시작된 2006년 7월부터 2022년 8월 현재까지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23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람으로 생각해 보면 어엿한 청년의 나이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연으로 대체하여 축제가 개최되었던 지난 2년 동안 락음악 덕후들의 목마름 덕분이었는지, 2022년 펜타 락페가 MZ세대에게 하나의 트렌디한 여가문화로 자리해 나가고 있음을 축제 현장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주관사나 후원업체 선정과정, 공연자 섭외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다양한 의견들이 분분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난 2009년을 분기점으로 펜타 락페 주관사인 예스컴이 공동주관사였던 옐로우 나인과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축제 운영과정에 얽힌 여러 가지 사정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축제 전문가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2010년을 펜타 락페 성장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올해 역시 국내외 공연자 라인업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타 락페에 긍정의 생각과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지난 2009년 펜타 락페가 옐로우 나인과 결별한 이후 절치부심(切齒腐心) 속에 인디밴드 등용문 무대로 시작한 ‘슈퍼 루키’를 통해 새소년, 잔나비, 혁오, 10cm, 국카스텐 등 선 굵은 뮤지션들이 발굴되어 지금까지 무섭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장르의 신진 뮤지션이나 인디밴드들에 다양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은 우리나라 락 음악 저변 확산과 더불어 락 음악이 새로운 K-Culture로 자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다만, 펜타 락페 내내 아쉬움이 남았던 해외 헤드 라이너 보강 문제는 앞으로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2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4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3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공연 현장 모습
(사진 제공: 배윤수)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올해 약 15만명이 방문하여 코로나19 이후 다시금 환희의 축포를 터뜨린 대규모 야외 음악축제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펜타 락페가 이러한 환희의 축포를 앞으로도 계속 터뜨릴 수 있을지 아니면 3년 만에 개최된 음악축제였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더불어 ‘밸리 락 뮤직 & 아츠 페스티벌’이 무산되면서, 현재 시점에서 펜타 락페가 국내 유일의 세계 10대 락 음악 페스티벌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지난 23년 동안 펜타 락페 안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기획자와 제작 관계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 그들은 어느덧 많게는 70대에서 적게는 3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음악시장의 산증인들이다. 그동안 우리 음악시장 발전에 적지 않은 선한 영향력을 남겼던 펜타 락페이기에 그동안 참여했던 이들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복기하면서 다음 해를 준비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음악축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펜타 락페는 1999년부터 2022년 오늘 현재까지 함께 했던 모든 락음악 덕후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인천의 문화예술현장에 있어서도 매우 소중한 현재 진행형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축제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땀방울을 흘린 축제기획자들의 노하우와 역량이 흩어지지 않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환대와 포용 안에서 자리할 때, 디아스포라 도시 인천의 문화뿐만 아니라 다가올 반세기 펜타 락페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참고 글

1. 김작가, kocca_music 네이버 블로그, <홍대 앞 결정적 순간 6화 :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   바로가기

2. 서정민, 서울문화재단 네이버 블로그, <한국 록 페스티벌 흥망사>   바로가기

포스터 모음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역대 포스터 (2006~2021)
(출처: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배윤수

배윤수 (裵潤洙 / BAE YOON SOO)

현) 김포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전) 부천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예술본부장)
전)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사무국장
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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