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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골목, 그리고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전시

<인천시립박물관 ; 골목 –남겨진 기억> 전

양진채 (소설가)

오래 전, 살던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이사한 뒤 다시 그 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 마당에 작게나마 있던 화단에서 봄이면 라일락 향기가 나곤 하던 집이었다. 겨우 며칠이었는데 그 사이 집은 유리창이 모두 깨져 있었고, 대문에는 붉은 페인트로 빈집이라는 ○표시와 출입할 수 없다는 ×표시를 마구 흘려놓아 섬뜩했다. 며칠 전까지 내가 살았던 그 집인가 싶었다. 그 집에서 아이들을 낳고, 아이가 걸음을 떼고, 학교에 들어가고, 어느 날은 라일락꽃을 꺾어 식탁을 장식해보던 그 모든 삶이 존재하는데도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고, 깡그리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한동안 집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쪽에서 동네를 슬럼화해서 이주하지 않은 집들을 쫓아내기 위해 일부러 더 그렇게 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때의 느낌은 모멸과 무시와, 훼손이었다. 재개발을 하려고 집들을 쓸어버릴 때, 그 ‘쓸어버린다’에 들어 있는 수많은 함의는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어딘가 아렸다.

인천시립박물관 한나루 갤러리에서 열리는 <골목 –남겨진 기억> 전시는 그런 내게는 치유 그 자체였다. 전시의 시선 자체가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어깨를 다독여주듯 따뜻했다. 전시된 물건은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이랄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의 자취를 물씬 풍기며 고스란히 드러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남겨진 기억 포스터
남겨진 기억 포스터
남겨진 기억 포스터

재개발을 추진하는 쪽에서 동네를 슬럼화해서 이주하지 않은 집들을 쫓아내기 위해 일부러 더 그렇게 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때의 느낌은 모멸과 무시와, 훼손이었다. 재개발을 하려고 집들을 쓸어버릴 때, 그 ‘쓸어버린다’에 들어 있는 수많은 함의는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어딘가 아렸다.

인천시립박물관 한나루 갤러리에서 열리는 <골목 –남겨진 기억> 전시는 그런 내게는 치유 그 자체였다. 전시의 시선 자체가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어깨를 다독여주듯 따뜻했다. 전시된 물건은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이랄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의 자취를 물씬 풍기며 고스란히 드러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전시는 1층 로비 한쪽 규모에 불과했지만 한 마을이 통째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숭의동 109번지, 흔히 전도관 일대로 더 알려진 동네는 지금 무자비한 포크레인 아래 마구 쓸어버려지고 있다. 다 쓸어버려 영영 흔적도 없어질 곳을 박물관에서 기록으로 남겨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기록이 사진이나 글에만 머물지 않고,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지극히 사소한 물건에 집중해 입체감을 더하고 있었다.

대문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대문의 문패, 지번을 알리는 표찰, 손잡이, 각종 계량 표시, 대문 위를 장식하던 아치형 철 구조물.
명패에 이름을 새겨 대문에 걸던 가장의 자부심을 생각한다. 어렵사리 고생해서 얻은 첫 집이었다면 그 감회가 더 남달랐을 것이다. 남편은 밖에서 돈 벌고, 아내는 집안일을 주로 하던 시대, 가장의 힘으로 마련한 집이었다면 그날 가장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으쓱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한 가족을 책임진다는 의미도 있었다.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수도번호 표찰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수도번호 표찰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수도번호 표찰을 전시해 놓은 모습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수도번호 표찰을 전시해 놓은 모습

(사진 제공: 인천시립박물관)

물론 그 집을 마련하기 위해 졸라맸을 허리띠, 장기 대출 등을 안고 있더라도 그날 대문에 명패를 거는 그 순간은 환했을 것이다. 명패는 주로 궁서체였고 한자였지만 한글 이름도 많았고, 부부의 이름이나 아이의 이름으로 된 명패도 있었고, 그 소재도 다양했다. 오래돼 이름이 바랜 패도 많았다. 그 집에 살았을 이름의 주인공을 생각해보게 했다.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수도번호 표찰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수도번호 표찰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명패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명패

(사진 제공: 인천시립박물관)

벽에는 사자 머리 형상이 여러 개 전시돼 있었는데 문의 손잡이를 장식하던 사자머리였다. 이런 장식이 대문 손잡이에 달리던 한때의 유행을 떠올려본다. 이 집엔 사자가 지키고 있으니 도둑은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손잡이 장식에 달린 사자 얼굴은 대부분 바래고 삭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 표정이 다 달랐다. 대문을 만들던 각 철공소마다 틀이 달랐던 건 아닐까 상상해본다.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손잡이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손잡이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손잡이
(사진제공: 인천시립박물관)

대문에 교회나 천주교 신자임을 알리는 십자가 표시도 그 모양이 각기 달랐다. 지금은 사라진 타원형의 변소나 수도 개량 표식과 저걸 어디서 구했을까 싶은 텔레비전 안테나까지 전시 돼 있어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엇보다 대문. 숭의동 109번지 수많은 집 중에서 골라왔을 대문에는 비록 출입을 금한다는 개발정비사업조합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봄날의 하늘색에 가까운 환한 색으로 전시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볼 수 있었고, 안쪽에서 주인인양 문을 잠글 수도 있었다.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사진제공: 인천시립박물관)

영상이나 사진 일부는 지금 헐리는 전도관 일대 풍경을 담았는데, 홍승훈 사진작가가 찍었다는, 헐리기 전 전도관을 중심으로 그 일대가 담긴 사진과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 전시가 ‘헐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살았던 곳을 기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은 한 벽을 가득 채운, 온전했던 동네 모습과 허물리는 광경의 작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천정에는 같은 모양의 지번 표찰이 가느다란 낚싯줄에 매달려 흔들렸다. 대문에 붙였던 자리는 접착제를 긁어내고 거울을 달았다고 한다.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며 지번은 다른 지번을 비추고 있을 거였다. 누군가 살았던 곳, 집이 있던 곳임을 알리던 지번. 서로 이웃하며 비 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나눠 먹었을, 대소사를 같이 하며 어깨를 기대던 집들이 그렇게 지번으로 남아 어깨를 기대는 듯했다.

대문 명패

대문 명패

천정에 지번 표찰이 매달려 있는 모습
지번 표찰

지번 표찰

전도관구역재개발 지역에서 수거해 온 대문 명패

천정에 지번 표찰이 매달려 있는 모습
(사진제공: 인천시립박물관)

집은 사라지고 지번만 천정에 매달려 흔들리는 광경과 전도관 일대를 찍은 홍승훈 작가 사진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언젠가 인천시립박물관 유동현 관장님은 전도관이 배처럼, 수많은 집들이 바다처럼 보여 마치 전도관이 그 동네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배처럼 보이던 전도관도, 바다와 같던 수많은 집들도 다 허물어지고, 대단위 아파트가 세워지면 수많은 지번은 한 지번으로 통일될 것이다. 가장의 당당한 자부심이던 명패 대신 몇 호만이 붙은,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똑같이 생긴 공간 중의 한 공간에서 누군가 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 동네에 살며 수많은 사연을 묻었던 사람들은 그나마도 그 공간에 들어가지 못한 채 쫓기듯 더 외진 곳으로 보따리를 싸고 밀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천정에 매달려 흔들리는 지번이, 사라진 집들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허공에 지은 집.

이 전시가 남겨진, 누군가 살았던 집과 골목에 대한 기록이지만 전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집에 살았던 사람, 그 골목을 수없이 지나갔을 발자국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가 아니라 거기 살았던 사람의 미래까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양진채

양진채 (梁眞彩, YANG JIN CHE)
소설가. 인천을 소설 속에 담으려 노력한다.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 『검은 설탕의 시간』, 장편소설 『변사 기담』, 산문집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 등을 출간했고, 현재 동구 화도진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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