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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울에 우리 잇수다
문화예술교육 거점 만들기
전철원
11월 27일 저녁, 마을극장 나무에서 가재울마을 28명의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함께 어울려 떠든 이들 중에는 마을 내 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들과 다양한 마을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이 있었고, 마을에서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와 이런저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해 온 기획자와 예술가교사들도 있었다. 전통적인 마을주민과 소위 관계주민(관계인구)로 불릴만한 이들이 함께 모인 것이다. 이는 <가재울 살롱 : 마을에서 예술하며 놀기, 놀며 성장하기>라는 이름으로 개최한 가재울마을에서의 네 번째 라운드테이블이었다.
<가재울 살롱> 네 번째 라운드테이블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2023년 가재울마을에서는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지원 사업의 거점형 프로젝트 <가재울에 우리 잇수다>를 진행했다. (처음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워킹그룹 활동을 시작하던 초반까지만 해도 이 거점형 프로젝트는 자기 이름을 따로 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써 마을주민들과 대화형 예능 영상 제작을 계획하면서 ‘가재울에 우리 잇수다’라는 프로젝트 이름을 짓게 되었다) 라운드테이블은 이 거점형 프로젝트에서 가장 공들여 진행한 활동이다. 가재울마을 ‘문화예술교육’에 관련된 이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2024년 이후 가재울마을의 문화예술교육을 주관하는 주체 형성을 꿈꾸었다.
파일럿 프로그램 현장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과 ‘방송 쫑파티’의 형식으로 진행했다. 막걸리와 김치전 등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마을의 공원이라는 마을 주민들이 오가는 열린 공간에서 방송 출연자로 참여하며 마을 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경험들에 대해 묻고 답했다. 그리고 가재울마을에서 이뤄지는 문화예술교육의 경험들은 무엇이 있는지, 또 어떤 것들이 만들어지면 좋을지 역시 묻고 답했다.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예술인, 예술가교사, 학교교사, 문화예술 기획자들과 함께했다. 마을 안에서 예술이 가지는 가치, 문화예술교육의 효용과 가치 등을 이야기 나눴다. 물론 가재울마을에서 시도하고 경험한 문화예술교육의 사례들과 함께 시도해 보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조금 특별히 진행할 수 있었다. 마침 청소년 공간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가좌4동 주민자치회에서 마을 청소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했고, 이를 위한 활동 예산을 만들어 두었다. 이를 워킹그룹이 계획하던 청소년 라운드테이블과 연결했고, 가재울의 청소년들과는 총 8번의 만남 속에서 마을에서의 문화예술에 관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다.
청소년 라운드테이블 – 팔복예술공장 탐방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마을에서 매년 하고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나눔 사업 준비로 마을극장 나무는 조금 좁았고, 사방을 둘러 놓여있는 트리들 덕에 좀 더 감성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서로 낯선 사이인 28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첫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공간의 전체 온도는 조금 서늘했다. 더구나 4개의 모둠을 무작위로 나누었기 때문에 이미 친숙한 사이의 사람들끼리 함께 앉을 수도 없었으니 초반에는 어떤 이야기도 쉽게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어 그리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어색한 분위기는 금방 풀렸다. 공동의 목표를 향한, 동일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의 공동활동. ‘이어 그리기’라는 놀이에 담긴 이 형식이 아주 빠르게 개인들의 연립을 연합으로 만들어주었다. 특히 조금씩 섞인 서로의 실수가 미션 실패로 이어지는 결과는 서로를 웃게 했고, 실수에 대한 관대한 태도를 이끌어 내었다. 이 관대한 태도까지 나타나면서 <가재울 살롱>은 비로소 본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어느 때보다 유의미한 결과를 가질 수 있었다.
<가재울에 우리 잇수다>는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새롭게 시도한 기획지원:거점형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이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우리가 생각한 거점은 사람이었다. 마을에서 지속가능한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하다 보면 언제나 제기되는 문제들은 공간과 예산이다. 맞다. 특히 쓰임이 고정되지 않은 공간과 유무형의 역량 축적을 이뤄야 하는 계량 불가의 활동에 쓰이는 예산이다. 이는 효율과 증빙을 우선하는 자본과 공공의 영역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게다가 많은 곳에서 필요한 이 활동을 연속적으로 지원한다는 것 역시 어렵다. 그렇다면 이 공간과 예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출발 지점은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 마을에는 다양한 공간이 있고, 마을 사람들은 어디에 무슨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쓰여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가치를 지향하는 돈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함께 움직인다. 그렇다면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 다수가 마을에서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와 동의를 갖고, 이 주제에 대해 자주 만나 대화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공간과 예산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워킹그룹 회의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사람, 마을 사람들의 느슨한 연합을 마을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거점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네 번째 라운드테이블 <가재울 살롱>을 하면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마을 주민, 마을 청소년, 주민자치회장, 통우회장, 상인회장, 예술가, 예술가교사 등 다양한 지위와 역할로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4개의 모둠 내에서도 연결 지점을 찾아 바람과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이들은 다시 전체로 모이면서 참여한 이들 각자에게 내년에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이날 함께 한 이들은 적어도 서로에게 ‘문화예술교육’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이들이고, 들을 수 있는 이들로 서게 되었다. 물론 이는 4번을 이어 한 라운드테이블만의 힘이 아니다. 워킹그룹 안에 예술가교사, 기획자와 마을 주민들이 섞여 있는 구조가 힘을 발휘했고, 마을 주민과 열린 공간에서 대화한다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힘을 보탰으며, 주민자치회와 주민협의체 등과 다양하게 만들어 간 소통채널이 힘을 더했다.
아직 ‘거점’으로서 ‘사람(들)’이 형성되었다 말하긴 어렵다. 사실 ‘놀이’로 쉽게 연 열린 태도는 그만큼 빠르고 쉽게 다시 닫히는 것처럼 ‘이벤트’로 연 관계는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이제 더 중요한 일은 2023년 한 해 동안 공들여 열어 둔 관계들이 닫히기 전에 어떻게 지속하고 확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벤트 그룹인 워킹그룹이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것을 넘어서 일상 그룹인 마을 내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걸고 답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지속되게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또다시 갈 곳이 멀다. 하지만 일 년 내내 움트지 않았던 우리의 ‘거점’이 마지막 라운드테이블에 와서 발아했듯이 결국 꾸준함은 길을 트게 될 것을 믿는다.
전철원(全哲源, CHEOLWON JEON)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함께 살아가는 삶과 예술을 지향하며 영화를 주 매체로 문화예술교육과 삶을 기록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