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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끝나도 독서는 계속되리
2023 인천독서대전
이병국
‘책, 무한한 세계로의 환대’라는 표어 앞에서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책은 우리에게 무한한 세계를 향한 노정을 제시하지만, 사실 다른 매체에 비교해 그 영향력을 잃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성인 인구의 열독율을 조사한 결과는 여기에 적어두기에 민망한 정도로 처참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한국 영화와 OTT 드라마 등 K-콘텐츠의 기반이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개막식에서 축사한 이행숙 인천시 문화복지정무부시장의 말처럼 “독서 문화 진흥 및 독서환경 조성”을 위한 독서대전 행사가 개최되는 것이겠다.
© 이병국
지난 9월 22일, 가까이는 인천 내항을, 멀리로는 인천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인천 자유공원 광장에서 2023 인천독서대전 개막식이 진행됐다. 오후 2시의 가을볕은 얇은 천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따가웠다. 그럼에도 많은 내빈과 행사 참여자들, 특히 중고등학생들로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를 억제하진 못했다. 행사장 왼편에 마련된 도서관과 출판사, 책방 부스를 메운 독자들의 뒷모습도 개막식의 열기를 북돋고 있었다. 축사와 독서진흥유공 표창, 공모전 시상을 거쳐 몇몇 대표자들이 ‘독서란 000이다.’라는 표어를 외치며 진행된 개막선언과 김사월 밴드의 특별 공연 <기계적 문제로 지연된 공연> 은 본격적인 독서대전의 시작을 알렸다.
© 이병국
기실 개막식은 개막선언의 의미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와 관련된 행사들일 것이다. 그러나 자유공원 광장에 설치된 부스는 생각보다 조촐했다. 도서관, 책방, 출판사 등의 북&아트마켓과 이벤트 참여 부스는 인천독서대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비해 참여 단체가 적어 아쉬웠다. 자유공원 광장이라는 공간이 지닌 협소함으로 말미암아 그렇다고는 해도 공원 아래쪽에 자리한 아트플랫폼 주변을 활용하여 참여를 독려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축제의 열기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독서대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방과 도서관의 참여를 충분히 독려할 수 있었을 텐데,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제물포구락부와 얼마 전 방영한 tvN <알쓸별잡>을 통해 주목받은 인천시민愛집을 행사 장소로 사용한 것은 인천의 역사적 공간을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이병국
제물포구락부에서는 워크숍과 포럼이, 인천시민愛집에서는 토론 및 전시, 강연이 이루어졌는데 필자는 행사 마지막 강연이었던 김금희 소설가의 <개 건너 ‘롸이터’가 간다>를 신청해 참석할 수 있었다. 2021년 인천독서대전 때도 강연을 했던 김금희 소설가는 ‘인천의 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만큼 유년기부터 인천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고 이를 바탕으로 인천이 배경인 작품을 다수 창작했다. 김금희 소설가는 인천에서의 삶을 다룬 작품이 실린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창비, 2014)을 비롯해 인현동 화재 참사를 다룬 『경애의 마음』(창비, 2018)의 창작 배경을 설명하는 한편 인천에서의 성장 과정을 풀어내고 청중으로 참여한 독자들의 질의에 성심껏 대답하면서 인천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와 같은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작가의 작품과 이야기를 통해 같은 공간과 장소를 경험한 이들의 추억을 상기하는 한편 동시대적인 삶의 감각을 일깨우며 지역민으로서의 공감을 바탕으로 작품을 향유할 수 있게 했다.
그런 점에서 인천독서대전의 강연 대부분이 인천과 무관한 작가들로 채워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천을 거점으로 삼고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참여가 눈에 띄질 않았다. 물론 인천에서 주관하는 행사라고 해서 반드시 지역성에 기반을 두고 기획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열린 부산, 고양의 독서대전과 변별점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국적 인지도 있는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의 삶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지역 작가와의 접점을 모색하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인천작가회의나 인천문인협회 등 인천의 문학단체 소속 작가뿐만 아니라 김금희 소설가와 같이 단체에 소속되지는 않았으나 인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인천시민과 함께하는 자리에 초대하지 않은 점은 인천독서대전의 의미를 퇴색시킨 점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또한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인천의 동네 책방과의 연계가 미흡해 보였던 점도 인천독서대전의 방향성의 층위에서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지만, 인천독서대전 본 행사 이전에 진행된 ‘우리동네 미리대전’도 주목할 만하다. 총 열 곳의 동네 책방에서 기획, 진행된 이 행사는 동네 책방을 경유해 독서 문화를 큰 행사의 차원이 아닌 생활 공간의 한 부분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필자는 중구의 문학소매점에서 진행된 손유미 시인의 낭독회에 청중으로 참가하면서 작가를 보다 가까이, 그것도 나의 생활권에서 마주하고 작품 향유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책방을 찾은 독자의 독서환경을 충만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기획이 독서대전의 중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독서 문화 진흥 및 독서환경 조성”은 일회성의 행사로 도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책, 무한한 세계로의 환대”라는 표어가 그저 하나의 구호로 제창되고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세계’로 ‘책’을 읽고 나눌 수 있는 장(場)을 일시적 소비의 장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 안에서 ‘환대’ 가능케 하는 문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광장이 아닌, 비록 협소하더라도 책으로 둘러싸인 책방에서 지역 작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다른 삶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책이 펼쳐놓는 저 무한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화려한 축제의 마당에서 파편화된 개인이 아닌 옹기종기 모여 독서공동체로 공감을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
어찌 되었든 인천독서대전은 3일간의 행사 기간 5,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마무리되었다. 북적거렸던 축제의 여운이 일상에서의 책 읽기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매개로 작가와 독자 그리고 도서관과 책방, 출판사가 어우러졌던 축제이니만큼 이러한 관계가 찰나에 그치지 않고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환대받는, 그 무한한 세계의 확장과 향유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병국 (李秉國, Lee Byungkook)
시와 문학평론을 쓴다. 시집으로 『이곳의 안녕』과 『내일은 어디쯤인가요』가 있다.
늘 이곳과 내일의 안녕을 묻고 한국문학 안에서 그것들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했지만 언제나 오늘에 충실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