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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청년들의 뮤지컬 만들기 “꿈속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강화 ‘큰나무캠프힐’ 인터뷰
김주회 (연극인, 사단법인 연극놀이터 해마루 회원)
강화군 양도면에 위치한 ‘큰나무캠프힐’을 찾아가 보았다. 이곳에는 7명의 발달장애인이 직업과 거주를 공유하며 7명의 교사와 함께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연말에 뮤지컬 공연을 발표하고, 발표의 내용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뮤지컬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 뮤지컬 수업의 강사는 그동안 마당극 연출로 활동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 예술교육으로도 남다른 경험을 쌓아온 오지나 씨이다. 오지나 씨는 2년여에 걸쳐 발달장애인들과 호흡을 맞추며 뮤지컬 창작과 연기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Q: 그동안 장애인들 대상으로 연극수업 또는 예술교육을 많이 하셨는데, 이번 ‘큰나무캠프힐’에서 장애인들과 수업하면서 좀 색다른 분위기가 있을까요?
오지나(이하 오): ‘큰나무캠프힐’ 참여자들 대부분은 자폐를 가진 장애인입니다. 이 친구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이 너무나 고유하고도 분명한 사람들인데, 이들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거나 경험치로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려움이 많아서, 오히려 제가 이 사업을 통해 자폐 친구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Q: 뮤지컬 만들기를 할 때,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창작 과정은 어떤 형태가 바람직할까요?
오: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 반복 연습을 할 수는 있지만, 장애인이라서 반복 연습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수업 내용이 공연과 연결된 접점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소통의 과정들이 모이고 개별 활동이 이어져서 결국은 공연이 되도록 연구 중입니다.
곧 수업이 시작되었고, 참여자들은 『문어의 꿈』 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몸을 풀고 다양한 표현 놀이를 하였다. 상호 간에 소통이 어려운 자폐성 장애인들이었지만 교사들의 안내를 통해 몸짓과 소리 표현이 이어졌다. 이번 시간의 주제는 ‘마음의 지도 그리기’였다. 서로의 마음이 종이에 모이고 다양한 해석을 하며 즐기다가도, 그림을 그리던 연필을 부러뜨리거나 느닷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엉뚱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수업이 마무리 될 즈음, 시종일관 기록 촬영을 하던 푸른영상의 강세진 씨를 만나 보았다. 강세진 씨는 강화 ‘큰나무캠프힐’에서 영상 수업을 4~5년 정도 진행하였고, 수업에 대한 기록영상을 찍으면서 내년에 본격적으로 찍게 될 뮤지컬 영화의 사전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Q: 꽤 오랜 시간 장애인들을 만나 오셨는데 영상 작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강세진(이하 강): 대부분 즐겁게 수업을 하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는 개인의 사연들이 서로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말하는 사람 빼고는 분위기가 산만해져서 작업이 조금 힘들었어요.
Q: 수업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뮤지컬 공연에 대한 특별한 기대감이 있나요?
강: 현재로는 활발하게 잘하고 있는데, 공연 당일 그날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청년들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죠. 영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쉬었다 찍고 수정하면 되는데 공연은 한 번 올라가면 끝이니까 그런 점이 약간 걱정이에요.
수업이 끝나고, Cafe큰나무의 음악실로 이동하여 문연상 대표와 함께 강화 ‘큰나무캠프힐’의 발자취와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한기 때는 공예와 직조를 진행하고, 현재는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윤서영 교사도 합석하여 대화를 이어갔다.
Q: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캠프힐’이 있는데, 강화 ‘큰나무캠프힐’만의 특이점이 있을까요?
문연상(이하 문): 이곳은 2~3살이었을 때 만났던 친구들이 이제 2~30대 청년이 되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업은 이들의 생애발달주기에 맞게 적절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기획하고 있습니다. 학령기 때 공부를 하고 나면 그 이후가 막막합니다. 엄마가 돌보든지 시설에 가야 하는데, 저희는 2010년부터 고민을 해서 2013년에 강화에 땅을 사고 청년들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화훼, 작약, 꽃밭, 양봉 등으로 농업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향후, 농업이 교육과 치유, 고용도 창출할 수 있는 케어팜(Care farm)이 되도록 구상 중입니다.
정식 명칭인 비영리민간단체 ‘큰나무캠프힐’의 장애인들은 돈을 벌면서 살아가는 직장생활을 실현하고자 큰나무 카페와 농업회사법인 농장에 소속되어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고등학교 학령기 때부터 교과과정 안에 ‘일상생활의 독립적 기술’, ‘잠재된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는 방법’, ‘직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을 포함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러한 직업 활동과 더불어 자체 프로그램인 체육, 제빵, 요리, 미술, 나들길 걷기 등을 통해 삶을 공유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천문화재단, 농축수산부, 장애문화단체 등과 연계된 프로그램으로 사회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인천문화재단 지원사업인 영상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공연예술로 발현하는 것이다.
Q: 이곳 장애 청년들에게 영상은 어떤 의미일까요?
문: 영상 작업을 통해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자신의 관점으로 찍는다’는 개념은 참여자들이 독립적 존재임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기기를 활용해서 자신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펼쳐나가는 측면이 ‘큰나무캠프힐’에서 추구하는 자립적 세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영상이 장애 청년들의 성장과 독립에 도움을 미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Q: 윤서영 선생님께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서영: 프로그램을 처음 이끄는 입장으로서 ‘이 프로그램이 잘 되고 있나?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헤맬 때가 있어요. 매번 똑같은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서 청년들이 잘 따라오고는 있지만, 이게 진짜로 잘 되고 있는지 청년들의 속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현재 청년들이 그림책 한 권씩 만드는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인데, 그림책의 주제는 청년들이 ‘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이 중심입니다. 청년들이 같은 상황에서도 그때그때 나오는 말이 다 다르거든요. 그걸 개인별로 취합해서 모음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Q: 대표님께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문: 장애인들과 오랫동안 살아 온 사람은, 장애인을 특징적으로나 유형적으로나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99가지가 똑같은데 1가지의 차이, 예를 들자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한다든지, 자기만의 생각을 깊게 하다가 한 가지 말만 반복적으로 한다든지, 의사소통에서 어긋나는 말을 하는 지점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지점을 ‘자신들의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구나’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은 예술을 포함한 많은 영역에서 성급히 장애인의 도달 지점을 규정짓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예술이 내 안에 묻혀있던 그 무언가를 세상 밖으로 들추어내는 과정이라면 그들이 표현한 것에 그들의 의식이 있고 예술이 있는 것이죠.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행동이나 이해가 느린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큰나무캠프힐’에서 만난 고유한 사고방식의 장애 청년들, 그리고 헌신과 배려로 단련된 마을주민들은, 주어진 제도와 짜여진 틀 안에서 허덕이던 나에게 무언가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알쏭달쏭하지만 ‘캠프힐’과 소통했던 모든 순간 모든 인연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나는, 여름 햇살이 쨍쨍한 1,700평 규모의 비영리민간단체 ‘큰나무캠프힐’의 거주하우스 3동, 교육장, 식당, 비닐하우스 3동, 양봉장, 원예농장, 등등의 시설을 둘러보며 가수 안예은 씨의 노래 『문어의 꿈』 한 소절을 음미해 보았다.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그리고, 뮤지컬 수업과 더불어 ‘큰나무캠프힐’ 모든 식구가 문어가 되어 멋진 꿈을 꾸고 멋진 여행을 떠나길 응원한다.
김주회 (金珠會, kim ju hoe)
사단법인 연극놀이터 해마루 회원
해왕발달장애in노리터 회원
제5회 아시테지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수상
서울 전동초등학교 소고강사
극작·연출·배우·교육 등 연극 관련하여 다채롭게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