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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정지된 화면 위로 하얗게 바다꽃이 피어오른다
2023 트라이보울 초이스 선정작
이부안 개인전 <풍경이 몰려온다>
우사라 (부평구문화재단 예술교육팀)
어느덧 정지된 화면에 하얗게 바다꽃이 피어오른다. 바다꽃이다. 아름답고 순수한 형태, 하얗게 피어오른 바다꽃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끝은 짜고 쓰다. 사고와 사건에서 기인한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피어오른 바다꽃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순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에 부딪히고 부서뜨려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마주하고자 했을 때에는 숙명처럼 고통까지 끌어안아야 한다.
바다꽃 전시 전경
ⓒ작가 제공
바다꽃10, 89x130cm, 캔버스에 유채, 2021
ⓒ작가 제공
이부안은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풍경을, 배경이 아닌 전경으로 이끌어 내 느린 호흡으로 바라보며 집중한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풍경의 질감에 몰두한다. 하나의 대상을 오랜 시간 긴 호흡으로 집중하며 바라본다는 것은 배경으로만 마주했던 익숙한 장면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아름다운 형상과 함께 새로운 장면에 진입하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시선으로 드넓은 바다가 아닌 고통의 우연으로 피어난 바다꽃과 꽃잎처럼 흩날리는 물결을 성실하고도 집요하게 캔버스에 옮긴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바다의 수위와 무수한 우연의 겹에 따라 고통의 정도에 따라 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흩뿌리는 물결과 바다꽃의 발견은 그가 쉼 없이 붓질을 하게 하는 행복감이자 동력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에 발 디디고 서 있는지 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떠한 마음으로 그 대상에 집중하는지에 따라 매우 상이하게 발견되고 전해진다. 이부안은 바다 위 한가운데에서 물결에 집중하고 고통으로 피어나는 바다꽃을 결국 발견해낸다. 그에게 바다꽃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고통을 아는 사람만이 고통 후에 피어난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인고 후에 피어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바다꽃을 우리에게 시각 예술로 선사한다. 바다 한 가운데 물결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친 파도와 어딘가에, 무언가에 수없이 부딪히면서 만들어지는 하얀 포말 속 피어난 바다꽃을 보여준다. 검디검은 바닷속 침잠된 고통이 아니라 고통을 넘어 피어오른 바다꽃을 보여준다. 긴 호흡으로 애정을 가지고 지긋이 바라보면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다고, 절대 피하고 싶었으나 나에게 몰려온 어떠한 풍경도 잘 감상하며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전시 전경
ⓒ작가 제공
물결, 97x130cm, 캔버스에 유채, 2022
ⓒ작가 제공
그의 수행에 가까운 끝없는 붓질은 하나의 캔버스에 놓인 장면으로서 감상했을 때 작고 잔잔해 보이나, 가까이서 오랫동안 응시했을 때 거칠디거친, 짠 내가 묻어나는 짙은 녹 빛의 바다 파도의 붓질을 읽을 수 있다. 그의 붓질은 회색빛의 검푸른 잿빛의 바다, 얼마나 따스할지 모를 깊은 바다의 내면은 등 돌린 채 쉼 없이 등을 쳐대는 너무나 건조하고 차가운 날 선 파도 같다. 바다의 본질을 닮았다. 큰 바위를 부숴버릴 정도의 거대한 움직임의 파도, 곧장 나를 삼킬 것 같은 검푸른 빛의 풍경, 베일 것 같이 날 선 물결에서 피어나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바다꽃이라니 너무나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의 작고 잔잔해 보이는 붓질이 실은 무엇보다 거칠고 진한 잿빛의 붓질이라니. 따뜻함과 차가움, 고통과 아름다움, 잔잔함과 거침, 짙은 녹 빛과 새하얀 투명함. 아이러니 너머의 미학을 다시금 소환해낸다.
“너무나 흔해서,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 장소, 공간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나는 이 흔한 풍경에 집중한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대상들, 바람, 물, 햇빛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항상 무엇인가 거대한 대상들이 풍경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답고 순수한 형태, 예측 불가능한 형상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장면을 나의 눈을 통해 즐기고 싶다.
최근 몇 년 동안 매주 배를 타고 섬을 왕래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다 풍경’에 집중하게 되었다. 바다 한가운데 물결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친 파도와 무엇인가 부딪히면서 만들어지는 하얀 포말의 형상들에 집중한다. 계절에 따라, 조수 간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바다 풍경에 집중한다. 서해의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형상과 풍경에 집중한다.
2023년 봄, 우리는 풍경(바다)이 몰려오는 시기에 살고 있다. 무엇인가 어떤 힘에 의해 몰려오는 풍경을 인식하고, 이 풍경을 잘 맞이하며, 감상하며 살고 싶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풍경이 밀려오는 그런 상황이 아닌 풍경이 몰려오는 시대를 힘차게 맞이하고 싶다.” – 이부안 <풍경이 몰려온다> 작가노트 중
전시 전경
ⓒ작가 제공
바다꽃, 캔버스에 유채, 91x116cm, 2021
ⓒ작가 제공
2023 트라이보울 초이스 선정작 이부안의 개인전 <풍경이 몰려온다>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 너머의 무언가에 집중하며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독려한다. 바다 위에 스스로를 띄어놓고 오감을 가동시켜 숨을 가다듬고 작고 섬세한 풍경에 집중하도록 한다. 정지된 화면 안에서 고통을 넘어 피어난 찰나의 아름다운 바다꽃을 바라볼 수 있는 감각 또한 이끌어 낸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검푸른 바다, 곧 베일 것 같은 날 선 파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 오랜 시간 응시할 용기조차 없는 풍경들이 밀려오는 지금, 여기, 이 시간을 살아내는 우리들에게… 작가의 말처럼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풍경이 밀려오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스스로 겸허히 풍경이 몰려오는 시대를 맞이하고, 작품 속으로 더욱 깊이 있게 들어가 그 너머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전시는 끝이 났지만, 그가 선사하여 함께 했던 경험들로 고통으로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바다꽃을 가슴에 안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우사라 (禹思羅 Sarah Woo)
부평구문화재단 예술교육팀 팀장. 큐레이터.
한국화와 예술경영을 공부하였다. 커머셜 화랑, 옥션하우스, 비엔날레, 기업 메세나 갤러리의 경험을 밑천으로 부평구문화재단에서 전시와 예술교육 총괄을 맡고 있다. 지역미술시장과 지역 여성 노동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탐닉하며 즐겁게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끝은 절대 쓰지 않을 달고도 흡족한 결과물로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며… woocu17@bpc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