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진심에 담긴 악의 가능성
이경재 (숭실대학교 교수)
안보윤은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집과 장편소설이 10여 권에 이르는 중량감 있는 작가이다. 한국문단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현대문학상(2023년)과 자음과모음문학상(2009년)의 수상자로서, 안보윤처럼 성실하고도 끈질기게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지속성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녀의 작품이 시간과 더불어 점점 깊어지고 예리해진다는 점이다.
다작에 걸맞게 다양한 삶의 문제를 탐구해오고 있는 안보윤이, 최근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선과 악의 심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악의 뫼비우스적 뒤얽힘에 대한 탐구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전에 발표한 「밤은 내가 가질게」(2020년)에서도 이미 다루어진 테마였다. 「어떤 진심」은 두부 자르듯이 재단하기 어려운 선악(善惡)의 문제를 파헤친 작품으로서, 충분히 사유되지 않은 선이 가져올 ‘선량한 악’의 세계를 유려한 필력으로 펼쳐 보인 문제작이다.
「어떤 진심」표지
(사진 제공: 현대문학)
202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어떤 진심」은 한번 자리 잡은 악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차분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어떤 진심」은 사이비 종교단체를 무대로 하여 악이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과정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이 작품의 초점 화자인 유란은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재혼한 엄마를 따라 황목사의 교회에서 성장한다. 그녀는 황목사가 우리를 이끌어주실 분이라는 “진심”을 바탕으로 황목사의 요구에 순종한다. 그러한 순종의 과정은 가족을 잃고, 친구들로부터 소외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황목사는 특이한 방식으로 선량한 자들을 조종하고 이용한다. 사이비 종교단체의 지도자인 황목사는 “사과받는 이가 진저리를 칠 때까지, 더 이상 사과받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실행하고 말 때까지 집요하게 반복되는 사과”를, “더 이상 사과받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실행하고 말 때까지 집요하게 반복되는 사과”를 한다. 이런 방식으로 황목사는 사람들을 자신의 단체에 끌어들이고, 그들을 괴롭히며 착취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단체에 들어오게 된 피해자들은 ‘열매’로 불린다. 열매들은 밤낮없는 노동을 해야만 하고, 숙박비는 필요치 않지만 학교나 직장에 머무는 때 외의 모든 시간을 오직 교회를 위해서만 써야 한다. 유란이 무엇보다 불편해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황목사의 사과”였다.
여기까지 읽는다면, 유란은 사이비 종교단체의 전형적인 피해자이고, 「어떤 진심」은 이에 대한 고발의 서사로만 읽힐 가능성이 충분하다. 소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어떤 진심」이 진정으로 문제 삼는 것은 피해자이기도 한 유란이 오히려 그러한 범죄를 당연시하고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문제는 유란이 어느 순간부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변한다는 점이다. 특히 유란이 힘쓰는 일은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전도를 하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유란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은, 자신이 가장 불편해하던 ‘황목사의 사과 방식’이다. 유란은 상대방의 선을 자극하여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악의 작동 방식, 즉 황목사의 방식을 피해자들에게 그대로 적용한다. 유란은 이서를 자신의 단체에 끌어들이기 위해 무료로 과외를 하면서, “내가 그 정도로 최악인가.”나 “나한테는 절대로, 절대로 배우기 싫어?” 혹은 “전부 다 엉망진창이 돼버리는 게 네가 바라는 거니?”처럼 이서의 선량한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건넨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부당한 “부채감”을 안겨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채감은 오히려 선량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일수록 더욱 강하게 느낀다. 유란에 의해 단체에 오게 된 이서는 친구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도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선량할수록 악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 이 불편한 아이러니의 선명한 형상화야말로 「어떤 진심」이 선보이는 득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유란은 자신이 왕따를 당할 때 자신을 이해해주던 유일한 친구인 민주를 황목사의 방식으로 사이비 종교단체로 끌어들인다. 선량하기에 악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면에서는 민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란이 자신이 지닌 ‘진심’으로 인해 학교에서 왕따가 되어 있을 때, 유일하게 유란 옆에 있어 주었던 친구가 바로 민주였다. 유란이 구원자 이야기를 하여 반 아이들 모두의 놀림거리가 되었을 때, 민주는 유란의 곁으로 와서 말벗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처럼 신실하고 모든 일에 진심인 열매는 더더욱 복잡하게 착취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처럼, 바로 그 선량함과 섬세함으로 인해 민주는 열매가 되어 누구보다 심하게 착취당할 뿐이다. 유란은 한결같이 유능해서, 그녀가 끌어들인 자들은 이탈률이 적고 충성도가 높아 금세 교회의 핵심 전력이 되었다. 유란은 “혹독한 노동”과 “가혹한 수금”이 기다리는 수련원 생활로, 고지식하고 소심한 이서를 끌어들이는데도 성공한다.
한번 뿌리내린 악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물네 살의 유란은 과거의 “진심”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도 “어떤 진심은 왜 그렇게 빨리 변질될까”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이젠 누구도 진심이 아닌 곳에 왜 열매들만이, 오직 열매들만이 진심인 채로 남아 있을까.”라는 유란의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열매들은 ‘어떤 진심’에 여전히 강박 되어 있다. 지금 민주는 예전의 유란이 그러했듯이, “진심”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진심이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를 깨달은 유란은 새로운 ‘열매’를 끌어들이는 악한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유란은 지금 친구 민주를 사이비 교회에서 빼낸다는 새로운 진심에 들려 있기 때문이다. 황 목사가 더 이상 사과하지 않을 만큼 교회가 커지면, 모두가 만족할 만큼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되면 민주가 필요 없어질 거라 믿었던 것이다. 지금 유란은 선악의 경계에 놓여 있다. 이전의 ‘어떤 진심’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유란은 악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민주를 구한다는 ‘어떤 진심’은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번 형성된 악의 구조는 결코 개인의 진심에 의해 쉽사리 해체되어 버리지는 않는다. 결국 죄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순종하는 ‘어떤 진심’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본래 악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며 선이야말로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경재 (李京在, Lee Kyung jae)
세일고등학교 졸업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
젊은 평론가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
PMID 31423189 Free PMC article buy priligy online sa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