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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구문화재단 <도시 음악을 기록하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언제부턴가 ‘애스컴시티’란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악도시 인천’, 혹은 ‘문화도시 부평’이란 말도 함께 들려왔다. 이런 수식어가 ‘애스컴시티’와 연관돼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음악에 관해 글을 쓰고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이는 일종의 직무유기일 수 있지만, ‘애스컴시티’가 특별하게 언급된 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미8군’ 무대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함께 포함돼있는 장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용산, 동두천 등과 함께 묶여 수많은 음악가들이 섰던 미8군 무대의 장소로 인식됐을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경북 칠곡의 왜관보다 언급이 덜 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보컬리스트 김태화가 몸담았던 라스트 찬스가 왜관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부평은 그런 서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령 윤항기는 애스컴시티에서 공연했겠지만, 그는 부평 말고도 용산에서도 공연했고 동두천에서도 공연했다. 이런 ‘원 오브 뎀(One of Them)’에 속한 장소를 가지고 지금처럼 애스컴시티란 장소를 새롭게 환기시킨 데는 인천시와 부평구의 지속적인 역할이 있었다.

애스컴시티 당시의 전경

애스컴시티 당시의 전경
(사진 출처: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부평구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음악살롱 <도시, 음악을 기록하다>’ 역시 그 지속성의 연장에 있는 기획이었다. ‘도시’와 ‘음악’, 그리고 ‘토크 콘서트’라는 제목에 맞게 부평이란 도시 안에 깃든 음악을 ‘토크’와 ‘콘서트’로 풀어낸 형식이었다. 이를 위해서 ‘토크’를 해줄 수 있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와 문화평론가 최규성, 인천 토박이로 국내 최장수 밴드 사랑과 평화를 이끌고 있는 보컬리스트 이철호, 인디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그리고 부평으로 이사와 살고 있는) 뷰렛의 문혜원이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했다. 또 감성골목, 서울전자음악단, 차승우x아톰 뮤직 하트가 무대에 서 음악을 들려주었다. 후술하겠지만 이들 모두 부평과 관련이 있는 음악가들이었다.

도시 음악을 기록하다 포스터
도시 음악을 기록하다 포스터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 김도헌의 사회로 진행된 이야기 시간에는 주로 애스컴시티의 과거를 돌아보는데 주력했다. 최규성은 쉽게 보기 어려운 사진으로 당시의 부평과 애스컴시티, 그곳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임진모는 편안하게 대화를 주도하며 객석의 호응을 이끌었다. 애스컴시티가 얼마나 번성했었고, 그곳에서 중요한 음악가들이 활동했었는지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임진모와 최규성이 연구하고 기록하는 입장에서 이야기했다면 이철호와 문혜원은 음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이철호는 한국 대중음악의 한 역사이자 인천 대중음악의 한 역사였다. 그의 입을 통해 김대환 같은 명인이 같은 인천 출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런 밴드맨들이 왜 유독 인천에 많았을까?’ 하는 질문을 떠올릴 수 있게 하였다. 문혜원은 현역 음악가의 입장에서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했다. 과거에 대한 되새김만이 아니라 현재의 지역 음악을 위한 고민과 제언을 던져주었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높은 수준의 음악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평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감성골목은 감성적이며 편한 노래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고, 서울전자음악단은 지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록 음악을 들려주었다. 서울전자음악단은 기타리스트 신윤철이 이끌고 있는 밴드로, 신윤철은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차남이다. 신중현이 애스컴시티 무대에 섰으니 긴 시간의 간격을 두고 2대가 함께 부평의 무대에 선 것이다.

신윤철도 행사의 의미를 알아서인지 서울전자음악단의 노래뿐 아니라 신중현의 곡까지 커버하며 공연을 진행했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신윤철을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라 말한다. 그런 영광스런 수식어에 맞게 신윤철은 기타로 들려줄 수 있는 미학을 부평아트센터 무대에서 보여줬다. 록 음악이 갖고 있는 에너지와 사이키델릭이 들려줄 수 있는 몽환을 한데 엮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한 차승우와 아톰 뮤직 하트의 합동 공연도 록의 에너지가 끓어 오른 건 마찬가지였다. 약 40여년 전 애스컴시티에서 많은 환호를 받았던 음악이 밴드 음악이었던 만큼 전체적인 공연은 그 흐름을 잇고 있었다. 기타리스트 차승우는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의 조카로, 그 역시 음악 가족의 일원이다. 차중락이 애스컴시티에서 노래한 건 물론이었다. 그런 역사적 배경과 함께 보컬리스트 훈조가 이끌고 있는 아톰 뮤직 하트와 차승우는 관객의 흥을 돋웠다.

차승우와 아톰뮤직하트 공연 모습

관객들의 모습

쇼는 성공적이었다. 전문가들이 들려준 옛 부평의 이야기도 관객의 자연스런 호응을 이끌어냈다. 애스컴시티가 부평 문화의 한 자산이었다는 걸 알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토크 콘서트를 보면서 이제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 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도중 최규성의 말이 그런 생각을 더 짙게 하였다. 최규성은 애스컴시티의 존재를 안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며 그동안 만난 음악가들이 애스컴시티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인천과 부평에게 던지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최규성의 말처럼 애스컴시티 무대에 서온 음악가들이 특별히 애스컴시티를 생각했던 건 아니다. 마치 투어를 돌 듯 음악가들은 용산과 동두천과 부평과 대구의 미군 부대를 돌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부평과 애스컴시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애스컴시티가 용산보다도 컸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음악도시 인천’과 ‘문화도시 부평’의 배경에 애스컴시티가 크게 작용한다면 더 정교하고 탄탄한 스토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 많은 자료를 찾고 근거를 찾고 연결고리를 찾아서 왜 애스컴시티가 특별한 곳이었는지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부평 무대에 섰던 음악가들은 용산 무대에도 섰다. 이제 그 이상의 것을 준비할 때가 됐다.

김학선

김학선 (金學宣, Kim Hak Seon)
2000년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 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 멜로 <트랙제로> 전문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밖에 여러 온라인·오프라인 매체에서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 <K·POP 세계를 홀리다>를 썼고, <한국 팝의 고고학>, <멜로우 시티, 멜로우 팝>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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