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더 “낯선”예술을 기다리며.
연수문화재단 <2022 송도 아트위크> (2022.9.29.~10.16)
정은영 (미술작가)
인천에서 태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이주와 정주에 얽힌 다양한 모습의 희노애락을 겪으며 “고향”이라는 통념이 불필요한 시대를 살아간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아득한 고향이라는 이미지를 더듬으면 신기하게도 내게 어떤 희미한 기억들이 느슨히 잡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름이면 포도나무 넝쿨아래 짙은 그늘이 생기던 부평시장 근처의 허름한 양옥집 마당, 모친의 뒷꽁무니를 쫓던 연안부두 어판장의 비릿한 냄새, 늘 설레였던 송도 유원지에서의 화창한 일요일, 자유공원에서 내려다 보이던 먼 바다의 반짝거림, 배다리나 제물포 어딘가 스산한 골목의 매정한 겨울바람 따위가 어떤 밀쳐낼 수 없는 감각과 장면이 되어 지금도 머릿속을 유영한다. 지치도록 뛰어다니던 동네가 하루가 다르게 유흥가로 변해가고 어떻게든 제대로 땅값을 받고 더 나은 환경으로 이주해야한다는 어른들의 욕망에 떠밀려 다니던 그 시절을 뛰어넘어, 이제 그 어른들보다 훌쩍 더 나이를 먹어버린 내가, 경인대로 인천방향 끄트막에서 만나는 저 멀리 ‘인천항’ 표지판은 왜인지 매번 고향으로 ‘돌아옴’의 감각을 불러내기도 하니 참으로 이상하다. 돌아올 자리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지난 10월, 경인대로를 달려 방문한 미술전시 <낯설고 낯선 (2022.9.29-10.16, 2022 송도아트위크 송도 국제도시 곳곳)>은 나에게 전술한 모호한 감각과 이미지들을 천천히 하나씩 소환해주었고, 우리가 어떤 장소의 성원권을 가지고 어떤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지를 되묻게 했다. 나아가 한 장소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것은 오직 ‘인간’의 의지와 능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비인간 존재들과의 상호적이고 혼종적인 수행들 속에서 찾아낸 이 전시의 ‘낯선 아름다움’을 통해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 전시는 ‘송도 국제도시’라는 자본의 욕망이 메워낸 땅과 그 풍경을 조금 다른 눈으로 들여다 보게 한다. 부동산 가치나 경제적 이익, 그 실체조차 모호한 ‘국제성’등이 경합하는 매몰찬 자본의 땅, 매끈한 고층건물로 채워진 비싸고 차가운 땅, 원주민도 귀신도 없는 인공의 땅. 위로, 더 위로 오르고자 하는 초과된 욕망의 땅. 그것이 대개 송도국제도시를 규정하는 세속의 표현들이었다면, 이 전시는 그 땅 위에도 거스를 수 없는 생동하는 삶과 생태, 그리고 그와 교차하고 혼재하는 정서적 관계들이 늘 존재해왔음, 그 상호적 관계들을 예술의 문법으로 복원하고 독해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인천 도시역사관’의 외벽에 붙은 김보경의 시트지 작업, <보이는 짜깁기-연흔장면>(2022)은 도시의 환경과 건축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기존의 익숙한 풍경을 바꾸어 냈다. 투명시트지 위에 인쇄된 이미지들은 뜨개질을 위한 코를 이어가는 기호들, 그리고 실재로 그 코와 코를 이어 구축된 포근한 털실의 교차와 연속이다. 형상은 분명히 실과 패브릭의 표면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낯선 사이즈와 프레임으로 조정되어, 언뜻 먼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이나 깊은 숲속에 바스락대는 무수한 나뭇잎들 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 이미지는 미끈하고 무뚝뚝한 건물이 보드랍고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있는듯한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빛의 색깔을 시시각각 바꾸는 촉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에 상상력을 덧대어 다만 잠시간이라도 하나의 장소성을 구축하는 시간적, 역사적, 서사적 맥락들에 접속해보기를 제안한다.
김보경, <보이는 짜깁기-연흔장면>, 2022, 윈도우 필름 설치, 투명 시트지 프린트, 308*966cm
(사진 제공: 필자)
조성연, <still alive_songdo 6area> 202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점
(사진 제공: 필자)
조성연, <still alive_songdo 8area> 202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2점
(사진 제공: 필자)
주변환경 자체를 바꾸어내는 김보경의 작업과 달리, 조성연의 작업<Still alive_songdo 6area / 8area>(2022)는 여러점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해찬솔공원 작은도서관’에 원래 존재했던 것 마냥, 조용히, 비교적 은밀하게 걸려있었다. 작가는 쓰레기에 가까운 버려진 사물과 스스로 존재하는 땅의 사물, 생명을 다한 마른 나뭇가지, 육지와 바다의 경계 어디쯤에 자생하는 식물의 이파리등을 발견해 사진에 담거나, 때론 그러모아 조합된 형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특히 작가의 섬세한 미감으로 정교하게 조형된 조합적 정물은, 자연과 인공, 육지와 바다, 효용과 비효용의 이분법을 지우고 서로에게 기대어 존재하는 혼성의 새로운 ‘종’으로 재탄생한다. 자본의 가차없는 속도가 장악한 도시와 사물의 단일한 효능과 가치를 무화하고, 뒤섞여 살아가는 것의 마땅함과 혼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하는 조성연의 작품들은, 빽빽한 공동주거의 밀도속에 초연히 자리한 작은 도서관이라는 매우 낯설고도 다정한 장소에 전시됨으로써, 도시의 속도를 모른채하고 느리게 몰입가능한 관람환경을 자아낸다.
안유리의 <포촘킨 스터디> (2017/2019) 시리즈 두 점이 순차 상영되는 ‘송도 더 제니스’의 빈 상가는 대부분의 신도시에 흔히 존재하는, 임대를 기다리는 공실상가다. 대형 거주단지를 채우는 아파트상가는 언제나 ‘몫’좋은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라는 철저한 자본논리를 따라 분양-미분양의 운명이 갈리지만, 인적이 잘 닿지 않는 사각에 위치한 불리한 상권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 한축을 기꺼이 받치고 있는 불가피한 ‘몫’이다. 오래간 임대되지 않은 채 비워진 한 상가의 투명한 유리벽을 통과해서만 감상할 수 있는 안유리의 작업은 서울의 종묘, 대림동, 중국의 도문과 독일의 베를린등을 속도감있게 종횡하는 이주의 서사를 품은 개인과 국가간의 요동치는 역사적 관계와 충돌을 담아낸다. 스크린 삼은 빈 상가의 노출된 시멘트 벽에 맺히는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들은 환하고 시끄러운 낮시간엔 희미하고 어둡고 조용해지는 밤시간엔 선명해지면서, 또한 유리벽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가주변의 모습을 또 다시 반영하면서, 송도와 타도시들의 시간과 공간을 포개고 또 포갠다.
안유리 <포촘킨 스터디1. 서울:침묵의 탑, 불의 집> 2017, 단채널 영상, 7분 35초
(사진 제공: 필자)
전시 <낯설고 낯선,> 은 동시대 우리 삶의 장소성 위에 역사성과 정치성을 재차 소환한다. 예술작업이 지니는 조형적 논리와 아름다움은 물론, 그 배면에 새겨진 정서적 기억과 미세하지만 소거될 수 없는 감각을 또한 이끌어낸다. 나아가 모든 작품은 생태적이고 젠더적인 감수성을 발휘해 매우 구체적인 위상과 실천으로서의 ‘국제적 기준’을 놓치지 않으며, 적재적소에 자리함으로써 지역연구의 측면에서나 시민의 문화적권리의 측면에서도 탁월한 공공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훌륭한 예술적 가치들이 여전히 너무 낮게 평가되고, 너무 적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지방정부와 지역문화재단이 반성적으로 고찰해야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 전시가 수행한 예술적 개입을 따라, 환대와 희망의 장소로서의 송도를 긍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곳을 “낯선-고향”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곳에 돌아와 더 낯선 존재의 목소리를, 더 낯선 삶을, 더 낯선 예술을 기다리고 싶다.
정은영 鄭恩瑛 siren eun young jung 미술작가
주로 비디오, 퍼포먼스등의 형식을 통해 페미니스트-퀴어 미학, 정치학, 방법론을 타진한다. 성별규범에 불응하는 존재들을 작업안으로 불러 모으는 일에 관심이 있다. 대표작으로 <동두천 프로젝트> (2007~2009), <여성국극 프로젝트>(2009~현)가 있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