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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콘텐츠로서 디아스포라의 가능성과 확장성에 대해
– 한국이민사 120년 기념 관련 두 개의 전시를 중심으로 –
김성배 (문화비평가)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인천광역시가 한국이민 120년을 기념해 펼쳐지고 있는 일련의 문화행사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이보다 더 적합한 게 있을까 싶다. 그중 두 개의 특별전시가 주목을 끌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이 기획한 「코리안 디아스포라 – 한지로 접은 비행기(2022,9.30~11.27)」와 한국이민사박물관의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2022.10.6.~11.20)」가 그렇다. 두 개의 전시 모두 부대행사까지 알차게 준비됐다.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 상영(10.6), 게리 박의 소설 ‘A Ricepaper Airplane(한지로 접은 비행기)’ 북콘서트(10.8), 차세대 재외동포 토크콘서트(10.25) 등이 하와이 이’민사를 중심으로 현세대의 삶까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다양한 디아스포라 예술을 논의했다. 마치 두 개의 전시가 본래 하나의 기획처럼 서로 교차하고 연결되었다.
한국이민사박물관 특별전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 전시장 전경
(사진 제공: 한국이민사박물관)
이제 앞서 언급한 두 전시를 염두에 두고 문화예술 콘텐츠로서 디아스포라의 가능성과 확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인천의 역사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스토리 텔링하는 대표 콘텐츠의 하나로 가져가기 위한 과제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나아가 디아스포라 콘텐츠에 대한 불편함과 우려스러움을 표하는 시선에 대해 그렇지 않은 면이 얼마든지 있음을 제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로써 2027년 5월 개관을 목표로 하는 인천시립미술관이 이미 앞서 개관한 타 국공립 미술관과 차별화 전략으로 디아스포라를 잡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하다. 발화자든 수용자든 다같이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각기 다른 개념에 묶여 있을 경우, 서로 다른 상상과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주지하듯이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의 삶과 문화를 일컬는 말이다. 이를 원뜻으로 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정치적 박해 등으로 타의에 의해 오랜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삶까지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대체로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여기까지 수용하는데는 익숙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8년 시립박물관의 분관으로 개관하여 이민의 역사를 연구하고 이를 전시를 통해 고증하고 있다. 상설전시는 대개 국내에서 하와이, 멕시코 등으로 이주한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현재 이민세대의 삶까지 묶어내고 있다. 5부로 구성된 이번 특별전시도 큰 틀에서는 상설전시의 연장선에서 진행되었다. 재외동포의 현황과 활동 그리고 조국을 위한 헌신, 고려인 등 우리 안으로 이주해 온 동포들의 삶을 조명하며 전시내용을 강화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역사박물관으로서 그리고 설립 취지에 맞게 이민의 역사를 맥락화하는 전시 컨셉을 잡았다.
다시 디아스포라의 개념으로 돌아가면, 최근엔 이를 좀 더 확장해 다양한 사회문화적 이유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자발적 이주까지 포함하고 있다. 자발적 선택과 기회로 해외에 거주하거나 국내외를 오가는 노마드적 삶을 통해 문화의 이종교배와 혼종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디어와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형태로도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한 지역을 중심에 놓고 볼 때 떠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외부에서 이주해 와 새롭게 정착하는 곳일수도 있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그리고 국내 타지역에서 전입한 이들이 다수의 원주민과 뒤섞이며 새로운 문화다양성과 역동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문화예술행사를 통해 다수인 원주민에게는 소수의 이주민과 교류로 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소수 이주민에게는 이주지역에서 주체적 삶과 당당한 구성원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 이렇게 디아스포라는 드러나는 현상과 이해의 층위가 다양하다. 그래서 유쾌하지 않은 과거지향적 서사를 지역의 대표 콘텐츠로 가져가려고 한다는 인식과 감성도 넘어설 수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 한지로 접은 비행기> 전시장 전경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운영팀)
「코리안 디아스포라 – 한지로 접은 비행기」 특별전은 해외에서 활동해온 18명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들의 각기 다른 배경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유로 한국인의 혈통과 정서를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전시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곧바로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전시가 한국이민 120년을 기념하는 하나의 행사로 진행되었다면 더욱 그렇다. 다만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이번 특별전시에서 참여작가와 전시작품이 하나의 주제로 일관성을 유지하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언어를 주제로 잡은 갈라 포라스 김의 ‘휘파람 불기, 그리고 언어의 변형’와 ‘G.M. 코완의 기록’이 4·3을 소재로한 이가경의 ‘남겨진 아이들’과 같은 전시에서 어느 지점에서 연결될 수 있을까. 이는 본 전시를 통해 던지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희미했고 참여작가의 작품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발표되었던 작품을 옮겨와 새로운 환경에서 전시되었을 때 작품 본래의 메시지가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도 보아야 한다. 가령 박이소가 1999년 뉴욕의 ‘공공의 거울 : 인종차별과 싸우는 예술가들’ 전시에 한글로 제목을 붙여 출품했다는 ‘이그조틱, 마이노리티, 오리엔탈’은 2022년 인천아트플랫폼을 찾은 관람객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작가가 당시 뉴욕 전시에서 던졌던 메시지가 지금도 전해질지 의문이다. 이는 관람객에게 이런저런 작가의 이력에 기대어 이번 전시도 그렇게 이해해 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전시는 이런 면에서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전시기획자와 참여작가들이 얼마나 이번 전시의 성격과 컨셉을 이해하고 공유한 후에 작업에 들어가고 그 작품들을 전시장에 배치되었는지 의문이다. 유명 작고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하더라도 그렇고 전시기획에 따른 물리적 시간과 예산의 부족이 있었다 해도 그렇다.
갈라 포라스-김의 <휘파람 불기, 그리고 언어의 변형>과
(사진 제공: 필자)
박이소의 <이그조틱, 마이노리티, 오리엔탈>
(사진 제공: 필자)
이상의 정리만으로도 중요한 시사점 하나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한 개별 프로그램에서는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설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디아스포라 예술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넓고 깊게 진행하면서 개별 프로그램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주제와 메시지 설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외연만 강조하게 되고 정작 중요한 내포를 놓치기 쉽다. 전시로 되돌아가면 한국인의 혈통이니 정서니 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작가와 작품을 그저 병렬적으로 나열했 뿐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함께 고민하고자 한 메시지가 부족했다. 이런 일은 이전에 ‘인천여성비엔날레’가 이 시대 젠더 이슈들을 드러내는 데는 소홀히 하면서 생물학적 여성 작가들로 전시를 꾸렸던 사례와 비슷하다. 그리고 지난 5월 개최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상영작으로 ‘범죄도시’를 포함하여 소수 이주자에 대한 부정성만 강조했던 사례와도 통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콘텐츠로서 디아스포라는 끊임없는 연구와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기획으로 그 가능성과 확장성을 열어야 한다.
김성배 (金聖培, Kim Sung Bae) / 문화비평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2002 석사), KDI공공정책대학원 공공정책학(2014 석사)을 공부함. 현재 시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굿모닝 인천에 ‘그림 읽기 생각 나누기’를 연재하고 있음. 지금까지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일간지 등에 기고 활동을 해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