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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중개하는 강화 그 역사적 실재
<유리건판 사진으로 만나는 강화>
이병국 (시인)
강화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생 때는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소풍을 갔고 학교 뒤에 있는 고려궁지 터에서 뛰어놀았다. 중학생 때는 덕진진, 초지진, 전등사 등에 놀러 다녔고 고등학생 때는 ‘연무당 옛터’ 비석을 보면서 등하교했다. 그렇지만 장소와 관련된 역사적 내용은 교과서에서 슬쩍 언급된 범위를 넘지 못했고 그나마도 주입식 설명에 그쳐 머릿속에 잠시 머물렀다 이내 잊혔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된 이후로, 아니 스물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강화는 프로필의 한 줄과 일 년에 한 번 들르는 곳으로 제한되었다.
이번 강화 방문 역시 아버지 23주기 기일 즈음이라 겸사겸사 맞춰 가게 됐다. 버스를 타고 강화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다시 28번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터미널에서 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강화고인돌체육관이 있다. 강화고인돌체육관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태권도 경기를 위해 강화읍 국화리에 지어졌으며 2013년 공식 개관하였다.
그곳에서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가 기획 전시한 <유리건판 사진으로 만나는 강화>(09.15~12.31) 사진전이 개최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리건판은 사진 초기 사진술을 지배했던 은판을 대신해 1871년 영국인 매독스(Richad Leach Maddox)가 만든 것으로, 브롬화은 젤라틴 유제를 유리판에 도포한 건판이다. 20세기 초반 많이 활용되었으나 부피가 크고 무거우며 파손의 위험이 컸다. 전시된 사진은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화 전역에 있는 각종 유적과 유물, 민속, 자연환경 등을 촬영한 것으로 강화의 옛 모습과 역사, 문화를 잘 보여준다.
전시장 전경
(사진 제공: 이병국)
사진의 역할은 무엇인가
주지하듯 사진 이미지는 선행된 어떤 물리적 현상, 혹은 사건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특정한 시선을 견지하며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언급한 것처럼 이데올로기적이고 기호학적인 효용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는 당시 일제의 시선과 목적이 엿보이는 사진들이 꽤 많다. 특히 ‘강화도조약 협상 장소’인 열무당이 눈에 띈다. 중앙에 연무당을 거느린 강화유수부 진무영 영내의 사열대인 열무당을 당시 일본인 수행원 사진사 가와다 기이치((河田紀一)가 찍은 사진을 보면 열무당 안에서 일제는 미국제 개틀링 기관총 4대를 설치해 놓고 무력을 과시하고 있다. 회담 기간 내내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은 열무당이 우리나라 군사 훈련장임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무력화함으로써 조선 정부를 위협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약을 체결케 하고 한반도 진출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는 ‘강화유수부로 향하는 일본군 행렬’ 사진과 맞물려 일제의 강압적 행위가 당시 강화도 주민에게 어떠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강화 열무당 사진
(사진 제공: 이병국)
강화 열무당 사진
(사진 제공: 이병국)
강화 열무당 사진
(사진 제공: 이병국)
이를 잘 보여주는 사진이 ‘강화외성 진해루’와 ‘강화산성 남문’이다. 사진 설명을 참조하자면, 강화외성 진해루는 6개의 문루 중 하나로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다고 한다. 1876년 양력 2월 10일 일본 측 구로다 일행이 갑곶 해안에 상륙하여 진해루를 통해 강화 읍내로 들어왔다. 사진 오른편에는 상륙용 배를 지키고 있는 병사가 있고 왼쪽에는 주민들이 대치하듯 서 있다. 일본의 침탈을 걱정하듯 바라보는 주민들의 모습은 강화산성 남문 밖에서 조선과 일본의 조약 체결에 대한 경위를 알기 위해 모여 있는 주민들의 모습과 더불어 불안정한 시대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일제강점기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강화외성 진해루
(사진 제공: 이병국)
강화외성 남문
(사진 제공: 이병국)
나는 강화읍 남산리에 살았다. 그곳에서 초중고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문을 통과해야 했다. 성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왕래가 자유로웠던 만큼 그 문을 통과하면서 과거를 인식한 적이 드물었다. 그곳을 통해 드나들었던 이들은 언제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안과 밖을 왕복하면서 나는 다른 길을 떠올렸으며 강화 읍내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나아가고만 싶었다. 강화는 내 삶의 토대이지만 그보다 서울 혹은 인천 시내를 향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교두보일 따름이었다.(지금은 시외버스터미널이 성 밖이었으나 당시에는 성안에 있었다.)
강화도조약이 일본의 강압적 위협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것이 아무리 내 삶의 터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해도 역사 교과서에서나 접하는 문제였지 삶의 과정에서 질문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문 앞에 모인 주민들의 모습은 강화에서 살아가는, 더 나아가 조선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경험해야 했던 시대적 불안을 지금 내 앞에 펼쳐 놓았다.(‘강화산성 남문 내 파수병 모습’의 사진은 그 시대적 불안을 온전히 경험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의 군상처럼도 느껴진다.) 그것은 유리건판 사진이 흐릿하게 가시화한 것만큼이나 은폐된 비가시적 메시지를 또렷하게 경험케 한다. 마치 구두점이 찍힌 역사라고 단정 짓는 일제의 행위 너머, 재현된 의미 이후를 상상하고 분리된 과거가 아닌 현재로 이어진 증언을 듣는 듯하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
(사진 제공: 이병국)
고려시대 능
(사진 제공: 이병국)
물론 전시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불러오는 불안을 보여주는 데에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강화의 여러 장소를 찍은 사진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강화 부근리 지석묘’, 즉 고인돌 사진을 통해 지금과는 다른 지석묘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게 하며, ‘고려 고종 홍릉’과 ‘고려 회종 석릉’을 포함한 고려 시대 능의 과거 모습을 살필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전등사와 정수사 등을 찍은 사진 역시 현재와는 다른 당시의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흐름이 야기한 변화 양상을 비교할 수 있는 기록적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강화 정수사
(사진 제공: 이병국)
강화 정족산사고
(사진 제공: 이병국)
<유리건판 사진으로 만나는 강화> 사진전을 전부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강화고인돌체육관의 건물 크기에 비해 1층 로비에 설치된 전시물의 양은 아쉽게도 그다지 풍부하지 못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리건판 사진 중 강화의 옛 모습이 애초 많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인천아시안게임을 통해 인천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어떤 미래지향적인 공간에서 과거의 기록과 마주하는 일은 흥미롭기만 했다. 관리원과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와 돌아본 강화고인돌체육관의 위용은 강화의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 근교로 주목받아 도시화되고 있는 강화는 내가 살았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읍내는 여전히 읍이 지닌 정취를 뿜어내지만 강화고인돌체육관이 자리한 곳처럼 조금만 벗어나도 새롭고 낯선 건물들이 논과 밭, 산을 둘러싸고 어우러져 있다. 시간은 흐르고 과거는 현재로 이어져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강화가 아닐까 싶다.
강화고인돌체육관
(사진 제공: 이병국)
강화산성 남문 현대
(사진 제공: 이병국)
강화 방문의 또 다른 목적을 위해 버스를 타고 읍내로 들어간다. 서문을 지나 연무당 옛터를 스치듯 지나간다. 버스는 나를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 놓는다. 열무당이 있던 곳에서 내려 걷는다. 강화산성 남문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조금 전에 보았던 유리건판 사진이 기록한 것과 유사한 거리, 각도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와는 다른 삶이 이곳 강화에 펼쳐져 있다는 걸 감각하며 한컷 한컷 조심스레 오늘을 기록한다.
그런 연후에 아버지를 만난다. 소주 한 병, 황태포 하나, 담배 한 개비를 놓고 절을 한다. 부재한 존재와 그 곁에 흐르는 시간을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니 사진전에서 보았던 강화의 기록들이 어쩌면 푼크툼이 아니었을까 싶다. 각자가 경험한 시간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푼크툼. 그 우발성이 이 공간과 장소, 개인의 경험 세계의 역사적 맥락과 연결되어 모종의 의미를 생성하는 것일 테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실재를 경험케 하는 것이 시간을 기록한 사진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이 중개하는 개별적 삶과 그 삶의 역사적 실재에 관해 고민하며 강화에서의 하루를 닫는다.
이병국 (李秉國 Lee Byungkook)
시와 문학평론을 쓴다. 시집으로 『이곳의 안녕』과 『내일은 어디쯤인가요』가 있다. 늘 이곳과 내일의 안녕을 묻고 한국문학 안에서 그것들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했지만 언제나 오늘에 충실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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