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욱 (시인 / 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지역의 문화 현장에 있다 보면 ‘아카이브’라는 말이 가깝고도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장과 활동이 그 대상이 되지만, 그것들을 ‘수집’하거나 ‘관리’하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에서 추진한 ‘대구예술 시간여행’이라는 프로젝트는 이 지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끌어낸 작업이기도 했다.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영화, 무용, 국악, 대중음악 그리고 이들과 함께 성장한 산업사까지, 지역의 총 여덟 개 분야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제작한 작업이었다. 대구의 문화예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연표화 한 셈인데, ‘아카이브’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국 무엇을 수집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근거를 제시한 셈이기도 하다.

물론 이전에도 대구 지역 내에서는 이미 그 역사가 일정 정도 정리됐다고 평가받는 예술 분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분야의 경우라도 대개 지역의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 힘든 방식으로 서술된 역사이거나, 혹은 개인의 기억이나 관점에 국한된 결과물로 정리된 경우가 많았다. 지역적 가치로 보자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의 숫자나 그에 따른 연구가 필연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이들 분야의 역사가 국내외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예술사와 비교해 확고한 보편성을 지니기 어려운 이유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구예술 시간여행’이 ‘연표’ 형식을 택한 것은 결국 이 ‘보편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연표는 이러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자, 또한 그것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다. 특히 여러 분야의 연표를 동시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 문화예술사의 전체적인 흐름과 함께 그 속에서 각 분야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게 한 것도 특징이었다. 물론 이 연표들만으로 당장 대구 지역 문화예술사의 보편성을 확립했다거나, 혹은 아카이브의 완벽한 근거를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의 추진 배경은 당시 분야별 연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나, 또 실제 분야별 아카이브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기준이 됐다.

기준을 정하는 일

이 프로젝트의 ‘문학’ 분야를 담당하면서 가장 고려했던 부분도 이러한 ‘보편성’의 측면이었다. 그것은 연표라는 형식이 지닌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했는데, 누구나 한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형식이지만, 자칫 그런 식으로 역사를 쉽게 규정짓거나 잘못 도식화시킬 위험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대구 문학계의 경우, 작가들에 의해 기록된 ‘지역 문단사’를 비롯해, 문인협회 주도로 발간된 『대구 문학사』, 그 외 몇몇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출간한 ‘백서’ 형식의 기록물, 그리고 지역 매체 등에 실린 문단 관련 기사 등의 참고 자료가 비교적 풍부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현재 문학 분야의 아카이빙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문학관’도 자리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이 문학관의 상주작가로 활동하면서 여러 자료들에 대한 접근이 용이했고, ‘아카이브’ 업무에 있어 대구시 아카이브팀과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문학관으로부터 전폭적인 업무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구 문학사’를 연표로 작성한다는 것은, 곧 지역 문학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준이 사실 연표가 가질 수 있는 가치나 설득력을 담보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그에 대한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것은 이 연표의 목적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근거였기 때문이다. 이 ‘누구나’의 범주를 넓힐수록 연표 역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우선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일찍부터 국내 문단에서 통용되고 있는 ‘한국 문학사’ 혹은 ‘문단사’의 관점이었다. 기존의 풍부한 자료들로부터 이 관점에서 통용될 수 있는 대구 문학계의 작가나 작품, 활동을 추려내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던 셈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 작업에 들어갔을 때 몇 가지 문제도 있었다. 우선 기존의 참고 자료들은 대부분 ‘대구 문학’의 범주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대구와 관계된 모든 작가나 문학적 활동’ 정도로 범주를 정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 기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데 있었다. 가령 출향 작가를 이야기하면서도 이름이 알려진 모든 출향 작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타향 출신의 작가들을 이야기할 때도 그 거론의 기준이 일정하지 않은 식이었다. 게다가 1981년 경북과 행정구역이 분리되기 전까지는 경북 지역의 문학사까지도 ‘대구 문학’의 범주로 차용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 문학사’ 혹은 ‘문단사’의 관점으로 접근했을 경우, 정작 지역에서 활동하지 않은 작가들로 연표가 채워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이른바 이름이 알려진 출향 작가들이 그 대상인데, 물론 그들 역시 넓은 의미에서 지역 문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될 수는 있지만, 지역의 ‘아카이브’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개 출향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진 그들의 문학 활동이 과연 우선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인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 연표의 목적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것은 지역 내의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근거이기도 했다. 그에 따라 작성의 기준 역시 좀 더 면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는 ‘한국 문학사’ 혹은 ‘문단사’의 관점에서 통용될 수 있는 작가나 작품, 활동을 추려낸다는 목표를 가지되, 그 추려낼 범주는 실제 아카이브가 추진되는 지역 내에서의 활동, 즉 행정구역 상 ‘대구’ 안에서 펼쳐진, 그리고 ‘대구’를 대상으로 한 문학적 활동으로만 국한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범주를 국한시키는 방식은 곧 연표에 표기될 ‘대구 문학’의 범주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물론 기존의 범주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더 축소된 면도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더 확장된 면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역 문학’의 새로운 범주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지역의 아카이브를 실질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연표 작업의 실질적인 문제

실제 작업에 있어서도 자료를 찾고 연표를 작성하는 시간만큼이나, 이 기준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애초부터 시, 시조, 소설, 아동문학, 수필 등 문학 내 각 분야별 자문 및 감수를 계획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것은 연표의 실제 작업과도 관련이 있는데, 문학의 특성상 여러 세부 장르가 존재하는 만큼 우선 각 장르별 연표를 작성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때 ‘한국 문학사’ 및 ‘문단사’에서 통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 역시 각 장르 내에서 통용되는 ‘문학사’ 및 ‘문단사’로 더 구체화 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경우, 시나 소설 같은 이른바 기존 문학계의 ‘주류’ 장르와 그 외 장르의 문학사를 파악하는 데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면에서도 자문 및 감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 연표 작업에 있어 가장 고충을 겪은 부분이기도 했다. 시, 소설 등 특정 장르가 중심이 된 기존 ‘한국 문학사’ 및 ‘문단사’와 그 외 장르에서 통용되는 장르별 ‘문학사’나 ‘문단사’를 같은 기준에서 판단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문학상’의 경우다.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진 권위 있는 문학상들이 대부분 ‘시’와 ‘소설’ 중심의 문학상이라면, 각 장르 별로도 그처럼 권위를 지닌 문학상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협회와 지자체 등까지 경쟁적으로 문학상을 제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권위의 기준마저 ‘각양각색’이 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후 시기의 연표 대부분이 문학상 수상자 명단으로만 채워질 우려도 있었다.

물론 ‘문학상’은 연표를 작성함에 있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근거임에 틀림없었다. 그에 따라 각 장르별 감수위원들 역시 연표 내에 빠져서는 안 될, 자기가 속한 장르의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너무 많은 문학상이 운영되는 경우라면 연표 내에서 그 모든 권위를 기록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우선 연표 상에 기록할 수밖에 없는 시와 소설 장르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먼저 선별하기로 했다. 이들을 감수위원들과의 협의 하에 서너 개 범위로만 압축한 뒤, 나머지 각 장르별 문학상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서너 개 범위 내에서 압축하여 표기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맺었다.

이것은 보기에 따라 상당히 기계적인 형태의 합의로도 볼 수 있지만, 실제로도 ‘문학상’뿐만 아니라 연표 상에서 거론될 대부분의 작가나 작품, 활동에 있어 이런 방식의 장르별 안배는 불가피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장르별 감수위원들과의 논의 또한 대부분 이 문제에 대한 논의였는데, 그것은 이 연표가 기준으로 삼았던 ‘한국 문학사’나 ‘문단사’가, 앞서 언급했듯 특정 장르 중심으로 기록된 까닭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 외 장르 입장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연표 작업이 자신들의 장르별 역사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투쟁의 장’처럼 비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지역의 문학사를 정리하는 이 연표 작업을 통해 확인한 것은 다름 아닌, 기존의 국내 문학사가 지니고 있던 특정 장르의 치중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 기준 자체의 문제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말해 지역의 아카이브 수집을 위한 문학사 정리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기계적인’ 형태의 합의는 지양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지역 문학사’ 내 각 장르별 문학사가 조금 더 보편적으로 정리된다면 이러한 조율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말하자면 그동안 ‘한국문학사’가 하지 못했던 작업을 ‘지역 문학사’ 차원에서 먼저 시도하는 셈인데, 이러한 지점 또한 오늘날 지역의 문화예술 아카이브가 지닐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카이브가 진행되는 한은 계속되는 작업

여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대구예술 시간여행’의 문학 연표는 다소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실질적인 ‘아카이브’를 위한 근거라는 그 기준으로 인해, 기존의 인식되던 ‘대구 문학사’와는 다른 각도의 문학사를 선보이게 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인 예가 그동안 대구 문학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던 소설가 ‘현진건’의 활동이다. 그동안 대구 문학사에서는 현진건의 모든 활동을 대구의 문학사로 이야기해왔지만, 이 연표에서는 초창기 동인 활동 외에 현진건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표기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활동이 대구 지역 밖에서 펼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활동까지 연표에 기록하게 된다면 이후에 활동한 수많은 유명 작가들의 아카이브 또한 마찬가지로 그 기준에서 수집되고 관리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통영 출신의 시인 ‘김춘수’의 경우다. 문단 데뷔에서부터 「꽃」 등의 대표작 발표, 그리고 이후 ‘무의미시’ 작품과 시론 발표에 이르기까지 그의 주요 활동 대부분이 대구 지역 내에서 이루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이 연표 속에 상세히 표기되어 있다. 아울러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했던 ‘아동문학’과 ‘시조’ 등의 장르에서도 ‘대구’라는 지역과는 무관하게 언급되던 주요 작가나 작품들을 대구에서 벌어진 활동으로 명확하게 기록했다. 여기에 1950년대 전쟁을 전후해 대구로 피란 온 수많은 작가들이 이곳에서 펼친 주요 활동 또한 ‘대구 문학’의 기록으로서 최대한 상세히 표기했다.

물론 이들 중에는 다행히 실물로 아카이브된 자료도 있었지만, 기록으로만 남겨진 행적들도 있었다. 이를 증빙하고자 연표 작성에 참고가 된 서적과 논문 및 저술, 기사 등은 별도의 목록으로 표기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작업은 새로운 자료 수집이나 관리의 실질적인 근거가 되기도 했는데, 가령 기록으로만 남겨진 행적들에 대한 실물 자료 수집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아카이브된 기존 자료들과의 새로운 연계성을 밝히는 작업들도 이어질 수 있었다.

실제로 ‘대구문학관’이 이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업무 지원을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구문학관은 2014년 개관 이래 그동안 많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며 대구 문학계의 아카이브를 담당해왔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간 그 기준이 일정하지 않았던 ‘대구문학’의 범주와 그런 기준에 따른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다 보니, 이들의 수집과 관리에 있어서도 너무 폭넓은 기준이 작동한 것이 사실이었다. 연표 작업은 그 기준을 보다 보편화시키고 구체화함으로써, 대구문학관의 아카이브 방향을 보다 선명한 형태로 함께 정립해나가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아카이브’의 일차적인 목표는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것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아카이브’가 저절로 구축될 리는 없다. 특히 그 대상이 상대적으로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대구시에서 추진한 ‘대구예술 시간여행’ 프로젝트는 우리가 이러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반드시 어떤 지점을 연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비록 ‘문학’ 분야에 한정된 사례를 열거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 작업은 이후로도 계속 보완되고 진행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적어도 아카이브가 계속 진행되는 한은 그러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러한 작업 속에서도 지역의 문학사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를 바라보는 관점까지 결합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면, 지역의 문화예술 아카이브란 결국 단순히 지역의 이야기로만 한정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