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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의 독특한 음식, 그리고 특별한 맛은?

김윤식 (시인,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어느 지역을 가거나 대체로 그곳 고유, 특유의 토속 음식이 존재하거니와 유독 우리 인천에만은 그러한 음식이 없다. 비류(沸流)의 미추홀(彌鄒忽) 도읍부터라면 무려 2천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을 인천, 이 터전에 분명히 ‘인구(人口)’가 있어 왔는데 오늘에 이르러 내세울 음식 하나가 없다?

허나,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역사가 점지한 인천의 비극(?)이라 할밖에 없다면 어찌하랴. 실제로 인천에는 토속 음식에 관련해 과거로부터 전하는 기록은 물론 전언 한 마디가 없는 실정이다. 물론 인천광역시 일부 도서나 지역에 따라 특이한 식재료와 조리법이 전하기는 하나 그것이 말 그대로 일부 지역에 한했을 뿐이지 범인천적 음식에 이르지는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혀 인천 음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인천에 향토 음식이라 칭해지는 몇몇 음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개항과 더불어 1930년대 말에 이르는 시기, 인천항에 이주 유입된 인구, 곧 인천항 객주, 상인, 부두노동자들을 위해 외식업소에서 내놓던 냉면과 해장국, 추탕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과거 인천 언론계의 원로 고일(高逸) 선생과 의사이자 향토사가로서 저명하셨던 신태범(愼兌範) 박사, 이 두 분의 저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세 음식은 인천 땅에서 애초와는 달리 질적 변화를 일으킨 새로운 ‘인천식(인천적) 음식’으로 판매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음식들은 세월의 변천과 더불어 오늘날 거의 절멸하다시피 했다. 그와 함께 이들 세 음식의 역사도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하릴없이 적막 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음식은 퓨전화하고, 또 절멸과 생성의 과정을 겪는다 할지라도, 음식 문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필수인데 인천에서는 그것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차에 미추홀학산문화원에서 펴낸 두 권의 음식 관련 서적은 일단 인천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미추홀 살아지다 4권 및 5권

미추홀 살아지다 4권 및 5권
(사진제공: 미추홀학산문화원)

첫 번째 책 『미味추홀 : 바다를 담다』는 그 발간사를 통해 “미추홀구가 도시 개발로 매립이 되기 전 바다를 담고 있는 미추홀의 음식문화를 담”(7쪽)은 것이 이 책의 목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인천의 전통 바다 음식의 존재나 혹 변형, 발전한 바다 음식의 뿌리 확인, 혹은 해산물 등에 대한 전에 없던 민간 역사 기록 한 줄이나마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가지게 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그런 방향과는 달랐다. 바다 음식 13종류를 선정하고 현재 그 음식을 내는 업소를 찾아 주인의 삶, 개인사(個人史)나 경영 관련 구술을 들은 뒤 필자가 나름대로의 감상과 일화 따위를 붙이고, 어물 소개나 간략한 조리법 등을 기록하는 형식이었다.
바다 음식의 선정 원칙도 다소 막연하고 피상적이며 안이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여러 음식 중에서 특히 바다에서 나는 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음식점에 주목한 이유는 이러한 음식이 인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12쪽)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음식들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으로 ‘인천식’ 혹은 ‘인천적’인 특징을 드러내지도 않는 것들이었다. 홍어의 경우에도 전라도 영산포의 삭힌 홍어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분들도 유난히 전라도가 고향인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다. 그러니 이 삭힌 홍어의 독특한 냄새와 입안에 쨍하며 도는 맛을 찾는 일이란, 인천 살이 중에 잠시 놓고 있었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발로라고 볼 수 있다”(41쪽)는 정도로서 ‘미추홀에서 확인하는 남도의 정서’뿐이다. 근본적으로 인천 음식도, 미추홀구의 음식도 전혀 아닌 것이다.

결국 “미추홀구 사람들은 어떤 음식들을 즐겨 먹으며 살아왔는지 그 속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일상의 이야기를 두 가지 주제로, 두 권의 책으로 엮”(7쪽)으려는 취지와도 배치가 된다. 그러니 앞의 문장에 쓰인 ‘인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말은 차라리 전통 ‘인천 음식’이나 ‘미추홀 음식’은 전무하다는 의미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미味추홀 : 바다를 담다』/ 정형서/인천광역시 미추홀학산문화원/2021

『미味추홀 : 바다를 담다』/ 정형서/인천광역시
미추홀학산문화원/2021

『미추홀 사람들은 이 맛을 안다』/정형서/ 인천광역시 미추홀학산문화원/2021

『미추홀 사람들은 이 맛을 안다』/정형서/
인천광역시 미추홀학산문화원/2021

(사진제공: 미추홀학산문화원)

두 번째 책 『미추홀 사람들은 이 맛을 안다』 또한 미추홀 시민기록단이 선정한 테마 음식들을 판매하고 있는 업소들의 인터뷰 기록이다. 테마 음식은 ‘국수류’ 7종류, ‘밥과 반찬’ 14종류로 구별하고 있다.
이 음식들에 대해 “시민기록단이 기록한 음식들은 전국 어디서든 즐겨 먹는 서민 음식들이고 도시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대도시라고 하는 보편성 위에 바다의 어획물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는 미추홀의 지역적 특성이 녹취문 내용에 녹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9쪽)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음식들을 ‘미추홀의 지역적 특성’을 지닌 음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미추홀구와는 다른(불리한?) 지리적 조건의 어느 지역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일반적인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낙지 연포탕이 그렇고, 쌈밥이 그렇고, 생선조림이 그렇다. 가락국수가 미추홀의 지역 특성을 지녔다고 할 것인가, 밴댕이무침이 그렇다고 할 것인가.
차라리 이 책의 ‘들어가며(머리말)’에서 스스로 토로했듯이 “과거와 달라진 신속한 유통망이 재료의 국경을 없애면서 모두가 공유하는 음식이 되고 있다. 앞으로 음식에는 개인적 취향만이 남을지도 모르겠다.”(18쪽)는 말이 바르고 정직하다.

이 글의 서두에서 개항 후의 ‘인천식(인천적)’ 향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그 음식들이 생멸(生滅)한 역사를 일깨우면서 미추홀학산문화원의 이 기록화 사업이 3년이든, 5년이든 정기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생장, 소멸하는 음식, 업소들에 대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집적해 ‘미추홀 음식 문화 아카이빙’ 구축을 기대하는 뜻에서이다.
그런 견지에서 이 두 권의 책은 그 첫걸음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걸음이라면 벌써 반은 간 것이다. 인천 사람의 눈길이 이 책들에 갔던 것도 그리고 다소 냉정한 평을 하는 것도 다 그런 기대와 응원의 마음에서였다는 것!

김윤식

김윤식 (시인,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했다. 198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고래를 기다리며』 외 4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인천문인협회 인천시지회장과 인천문화재단 3기 이사, 그리고 인천문화재단 제4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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