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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서식지, 예술의 서식지

2024 도화가압장 ‘웰컴 서식지’ 결과발표 공유회

김민관

서식지라는 메타포

2024 도화가압장: 웰컴 서식지 참여예술인 모집 포스터 ⓒ인천문화재단, 출처: 인천문화재단.

2024 도화가압장: 웰컴 서식지 참여예술인 모집 포스터
ⓒ인천문화재단, 출처: 인천문화재단

‘웰컴 서식지’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2024 도화가압장 결과발표 공유회가 지난 11월 9일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에서 열렸다. 지난 8월 초부터 15명의 예술가들이 네 팀을 이뤄 진행한 작업의 최종 결과를 공유하는 이번 자리는, 공간 안팎을 오가며 관객을 이끌고 또 함께 이동하며 관객을 맞이했다. 다양한 공간 활용법과 함께 극 형식을 띤 네 개의 작업을 통해 ‘서식지’ 관련한 네 팀의 각기 다른 생각과 관점을 비교하며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네 팀 모두 첫발을 내디딘 셈이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조합의 팀들과 그 데뷔작 네 편을 선보이는 특별한 자리였다. 이는 임시적이고도 일회적인 팀 조합을 통해 협업 과정 자체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가져가는 도화가압장만의 독특한 색깔이 반영된 결과이다. 여기서, 협업은 타 장르 및 매체를 다루는 예술가와 교류하며 서로의 작업을 이해하는 한편, 기존의 고립된 생태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네트워크의 창발을 도모하기 위한 매개의 특성을 지향한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태 환경과 연관되는 ‘서식지’라는 개념이 예술가를 향함으로써 불안정한 환경과 이동하고 모험하는 삶의 유동성을 지닌 존재인 예술가를 표상하는 메타포로 전이된다. 여기에  ‘웰컴’이라는 인사말과 함께 기존 서식지가 가진 개체적 경계와 질서로부터 나아가 타자의 난입과 섞임을 요청하고 유도하는 개방적 성격이 덧대어진다고 볼 수 있다. 도화가압장의 기획위원(권근영·김민관·김준수·함도윤)의 한 명으로 참여하면서 제목과 주제를 같이 공유하고 풀었던 과정을 돌이켜 볼 때 그렇다.

비록 ‘기획’의 역할이었지만, 네 팀의 공연은 기획 바깥의 영역, 즉 블랙박스 안에 있었다. 8월 21일에서 23일, 3일간의 워케이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3일간 진행된 워케이션1)의 만남을 끝으로, 새롭게 결성된 팀들의 과정은 오롯이 그들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블랙박스가 열렸을 때 나 역시 한 명의 순수한 관객의 입장으로 공연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15명의 예술가들은 인천을 돌아다니고 리서치하며 서식지라는 개념을 반추하고자 했었고, 그 과정에서 아마도 인천이라는 하나의 지역에 한발을 담그고, 서로와의 긴장과 서로에 대한 흥미를 겪으면서도 치열하게 각자의 몫에 정진하는 시간을 보냈으리라.

1)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3일간 진행된 워케이션―Worcation,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업무와 휴가를 편한 장소에서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스템―은 기획의 초기에 세팅된 외부 초청 강연 및 워크숍과 내부에서 참여자가 자발적으로 진행한 BYOW―bring your own workshop(‘각자의 워크숍을 가지고 참석할 것!’)―로 나뉜다. 8월 21일, 전체 워케이션의 시작은 기획 프로그램의 하나로 기획위원인 음악가 몬구(김준수)의 워크숍 <서식지에서 발견한 음악상자>가 알렸고, 8월 23일, 진나래 작가의 워크숍 <너와 나의 장막>이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운데, 그 중간 일자인 8월 22일, 박경태 사회학자의 강연 <서식지의 다양성 읽기: 해외의 문화다양성과 한국 다문화의 미래>, 장영 극작가의 글쓰기 워크숍 <내면과의 연결을 위한 글쓰기>가 연이어 열렸다. 3일간, 그 사이사이를 내부 프로그램, 곧 15명의 참가자들의 고안한 14개의 BYOW가 30분가량씩 진행되며 메웠고, 결과적으로 숨 가쁘게 그 3일이 지나갔다.

인천줌인, <내가 만약 올가드쥬파트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이주민을 향한 경계 넘기

‘인천줌인’, 〈내가 만약 올가드쥬파트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리허설 영상 캡처본. 이상훈 무용가가 미얀마 라이브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이야기, 출처: 인천문화재단.

‘인천줌인’, <내가 만약 올가드쥬파트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리허설 영상 캡처본.
이상훈 무용가가 미얀마 라이브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이야기, 출처: 인천문화재단

첫 번째로 열린 ‘인천줌인(장승준·정현지·이상훈·조하연)’, <내가 만약 올가드쥬파트 사람으로 태어난다면?>(이하 <올가드쥬파트>, 공동창작: 장승준·정현지·이상훈·조하연/출연: 장승준·정현지·이상훈·조하연·띵테이아웅·헤인 띳 사·소피아·탄 트 진윈)의 경우, ‘올가드쥬파트’라는 가상의 국가를 세우고, 관객들을 공간 입구에서 맞이하며 시작되는데, 여기에는 어떤 말도 다 허용되고 통용되는 곳으로 소개된다. 그 통과의례적 관문은 관객 각자의 춤과 림보라는 표현 양식을 요구하며, 관객은 이를 수행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곳은 언어라는 경계를 임시적으로 지운 상상(계)적 영역이다.

극장에 들어서기 전, 조하연의 미얀마어라고 생각되는, 사실은 지블리쉬는 정현지에 의해 번역된다. 반면, 극장에 들어오고 나서 조하연이 한국어로 진행을 이어갈 때 정현지는 아마도 자신이 오랜 기간 살아왔던 프랑스의 언어로 이를 번역한다. 언어의 다름과 시차적 생산은 우스꽝스럽고도 기이한 느낌을 선사하는데, 두 사람의 한국어가 아닌 언어들은 인천줌인의 멤버 네 명 및 그와 함께한 미얀마인을 위해서도, 현장의 거의 모든 관객을 위해서도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생뚱맞은 듯한 언어의 도입이 사실 접근성을 위한 차원에서 번역의 필요성을 단지 형식적으로만 충족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번역이 지닌 윤리적인 차원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또한 이 공화국이 단순히 여러 언어가 통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언어의 도입 역시 필요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이 언어들이 결코 기존 자기 국가의 공고한 영역을, 또 모든 것이 나의 언어로 수렴하는 안온한 현실을 확인시켜 주지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실제, 출연한 미얀마 국적의 네 사람은 미얀마 전통춤과 노래, 술래잡기 놀이 등의 특정한 미얀마의 문화적 맥락을 제공하는데, 그중 독백을 하는 소피아의 장면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낸다. 그의 말은 같은 미얀마인 띵테이아웅이 한국어로 다시 옮긴다. 여기서 번역은 ‘인천줌인’이 아닌, 미얀마어와 함께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미얀마인이자 이주민인 존재들에게서 일어나며, 보다 확장된 세계를 만든다. 절박하고도 진지한 말, 군부독재 아래 놓인 미얀마의 어려움과 그에 대한 항거의 정신에서 나온 이 말은 첨예한 정치적 발화의 성격을 띤다. 이는 앞선 축제와 환대가 넘실대는 장소와 다르며, 이전의 장소를 홀연히 깨고 나온다, 이곳은 다른 이의 공간을 (물리적으로든 언어 차원에서든) 함부로 침범할 수 없으며, 그러한 조건 아래에서만 어떤 말이든 수용될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드러내면서.

따라서 이 말에 따르는 여타의 주석과 토론, 설명이 없었지만, 이러한 정치적 발화의 수용은 그 자체로 이주민의 서식지를 문화 관광의 영역으로 대상화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내적 심리가 개입되는 자신들만의 터전으로, 그리고 그들의 이상향적 터전에 대한 신념의 언어가 전개될 수 있는 곳으로 비로소 자리 잡게 만든다. 새삼스럽지만, ‘인천줌인’이란 팀명은 인천을 줌 인(zoom in)해서 들여다보는 동시에 인천주민의 발음적 유사성을 경유해 그 주민의 자격을 원주민만이 아닌 이주민으로도 확장하는 시선을 함의한다.

인천거주자없음, <인천입주청소>: 침투와 전투의 치열한 생존의 서식지

‘인천거주자없음’, 〈인천입주청소〉 리허설 영상 캡처본. 음악가 김진수가 무대 한편에서 모래성을 쌓는 모습. ⓒ이야기, 출처: 인천문화재단.

‘인천거주자없음’, <인천입주청소> 리허설 영상 캡처본.
음악가 김진수가 무대 한편에서 모래성을 쌓는 모습.
ⓒ이야기, 출처: 인천문화재단

‘인천거주자없음(김진수·김영미·양재원·임태웅)’은 인천에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이 팀 내 한 명도 없음에서 착안해 만든 팀명으로, 이들의 <인천입주청소>는 인천에 입주하는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영역 다툼을 우화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모래성을 쌓고 또 쌓고 그 모래성이 합해지고 또 새로운 모래성이 불쑥 그사이를 비집고 나타나는 등의 놀이가 그 옆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캐리어를 끌고 등장해 캐리어의 소지품들을 사방에 널브러뜨린 채 유유하게 피서를 즐기는 임태웅과 그와는 상반되는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어둡고도 고독하게 등장한 양재원은 각각 아쉬탕가 요가와 비보잉으로 이곳을 자신만의 영역으로 삼고자 한다.

이들의 갈등이 한층 더 격해져 가며 본격적으로 2차전을 맞이하기 전에, 김영미와 함께 모래성을 쌓던 김진수는 임태웅이 사방에 어질러 놓은 옷가지들을 한 차례 빗자루로 쓸어 공간을 정돈하는데, 이는 두 사람의 신분 격차 또는 여행자와 노동자의 다른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사스럽고 화려한 피서 복장을 한 임태웅의 이주가 온전한 정착을 향한 이주의 목적성을 띠기보다는 일시적인 바캉스에 가까운 것임을 보여주는 단서로 볼 수 있다. 그와 비교해 수중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비보잉을 행하는 양재원은 뒷골목이나 거리를 배회하는 가난한 토착민에 가깝고, 나아가 그의 춤은 생존의 터전을 빼앗긴 그의 현실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임태웅과 양재원 모두에게서, 이곳을 터전으로 두어야 하는 명확한 근거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인천입주청소>는 그 둘을 물리적 차원에서 축소하며 다른 매체로 변환되는 모래성 놀이라는 시각적 재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게 하는 데 그친다. 물론 그 반대 역시 성립한다. 결과적으로, 모래성 놀이는 현실의 장면들을 물리적인 부피와 이전(이주)의 양상으로 단순하고도 뚜렷하게 수렴시킨다. 
따라서 두 사람은 주인공의 목소리, 주체의 위치를 점유하는 대신에, 교체되고 교환될 수 있는 구조(주의)적 기호로 자리한다. 이주는 뺏고 뺏기는 경쟁의 영역을 동반하며, 누군가의 기쁨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더 넓게 확장해 보자면, 이는 재개발과 쫓겨나는 이주민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우화적으로 담아낸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4f, <우린 서로의 망명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라는 대안의 장소

‘4f’, 〈우린 서로의 망명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리허설 영상 캡처본. (사진 왼쪽부터) 윤가연, 김채원, 고헌이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바깥 공간에서 랜턴을 들고 있는 모습. ⓒ이야기, 출처: 인천문화재단.

‘4f’, <우린 서로의 망명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리허설 영상 캡처본. (사진 왼쪽부터) 윤가연, 김채원, 고헌이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바깥 공간에서 랜턴을 들고 있는 모습.
ⓒ이야기, 출처: 인천문화재단

‘4f(고헌·김채원·류소연·윤가연)’의 <우린 서로의 망명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이하 <망명지>, 공동창작: 고헌·김채원·류소연·윤가연, 음향 오퍼레이터: 정승원)는 끊임없이 이주하는 인간의 존재 양식을 근 과거부터 원시 시대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다룬다. 그 기착지는 특정한 지역의 장소가 아닌, “서로”라는 유대 혹은 연대의 몸으로 향한다, 이들이 이승희 시인의 동명의 시 구절을 읊조리는 것과 같이, ‘망명’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대한 내기의 차원에서.

4f는 인천에서 여러 장소를 헤매고 더듬고 하던 경험을 가지고, 특정 장소에 연착할 수 없는 존재, 어떤 장소와도 직접적으로 결부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를 하나의 특정한 정체성으로 표상하기에 이른다. 결국, 소문과 추억이 결부된 희미한 장소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곁에 있던 동료들의 존재만은 희미해지지 않았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관객석을 인천 답사에서 찍은 사진들이 프로젝션 되는 무대로 바꾸고, 관객 의자를 무질서하게 무대 중앙에 쌓아 놓는 것으로 바꾼 채 공연은, 관객 역시도 이주‘하는’ 자의 지위에 놓으며 시작되었다.

초반에, 이들이 경유했던 인천의 지역들은 하나의 연속되는 이름으로 호명되는데, 이는 인천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과 같이 익숙한 표상도, 사동 30번지와 같이 지도에 없는 사라진 장소도 포함한다. 이 호명의 방식은 각 장소가 품은 역사적 기억, 개인의 내밀한 기억 들을 단지 막연하게 상기하게 하는데, 곧 이 기억들이 불러오는 그리고 향하는 갖가지 정념의 ‘사태’를 끌어안으면서도 이를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어 해소할 수 없음에서 오는 또 다른 정념을 향한다. 복잡한 실타래처럼 엮이는 이 이름들의 계열체는 실제 중앙의 의자들이 이룬 기념비 혹은 탑에 포스트잇으로 군데군데 붙어 있고 또 돌돌 말아놓은 하나의 긴 천 안에 기입되어 있다.

윤가연은 그 천을 자신의 정강이 아래쪽에 묶고 바닥을 굴러가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그 끝없이 나열된 이름들을 무겁게 자신의 몸으로 기념비에, 그리고 자신의 몸에 기입한다. 곧 기입된 언어와 맞닿은 신체로부터 그 언어를 풀어헤치며 장소와 언어를 연결하거나, 장소에 그 언어를 기입한다. 그렇게 언어를 장소로 다시금 해방시킨다. 표면적으로는 이 천이 기념비와 그 바깥과의 경계 영역을 지정한다면, 이를 한 명씩 읽어나가며 조금씩 풀려나가는 행위는 임시적이고도 불완전한 역사의 지시물로서 그 기념비의 실체를 드러낸다.

기념비를 해체하고 각자가 지닌 고유한 기억의 장소들로 전환하는 이 작업들은 기억의 근거가 되는 장소 역시 사라지는 또는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이름 역시 임시적이라는 어떤 진리에 근접해 간다. 맥아더 동상이 상징하듯 전쟁의 흔적을 증언하는 기념비의 주요한 속성으로부터 국가 이데올로기와 군대의 명령과 위계의 체제, 군인의 남성성과 같은 특징들이 풀려나온다. 기 언급된 사동 30번지나 동춘동 롯데아파트 같은 장소와 같이 개인과 맺어진 장소로부터 나오는 미시사적이고 개인적인 기억과 달리, 이 같은 기념비는 역사의 어떤 형상을 굳건하게 지지해 내는 듯 보인다.

고헌은 아버지의 이름이 주는 중압감을 무의식의 흐름으로 풀어내는 내레이션의 녹음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기념비 가를 돌면서 군대의 제식을 반복한다. 뒤이어 사진상에서 등장하는 인천 곳곳에 자리하는 고인돌은 또 다른 인류의 기념비이며 그 사라짐을 증언한다. 그렇게 근 과거의 역사를 훌쩍 건너뛴, 현대 도시 문명이 자리 잡기 훨씬 이전, 문자가 없던(따라서 읽기의 행위 역시 없던) 선사시대의 인천으로의 도약을 경유해, 그 바깥으로 사라진 인류의 삶과 궤적, 장소들이 스쳐 지나간다.

홋홋홋, <더러운 옷을 입은 파란색 기차들>: 유동하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

‘홋홋홋’, 〈더러운 옷을 입은 파란색 기차들〉 리허설 영상 캡처본. 이권형이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 ⓒ이야기, 출처: 인천문화재단.

‘홋홋홋’, <더러운 옷을 입은 파란색 기차들> 리허설 영상 캡처본.
이권형이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
ⓒ이야기, 출처: 인천문화재단

‘홋홋홋’의 <더러운 옷을 입은 파란색 기차들>(이하 <파란색 기차들>, 구성: 박은호·이권형·한아름/출연·내레이션: 박은호/작곡·노래·사운드 디자인: 이권형 작·연출: 한아름)은 홋홋홋의 멤버인 박은호, 이권형, 한아름 모두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에 거주하고 있고, 인천과 ‘나’의 오래된 관계를 새삼스럽게 또 새롭게 상기하거나 환기하며 인천에 접근해 간다. 수질이 좋지 않은 인천 앞바다와 인천을 향하는 파란색 기차라는 도상의 언저리에는 “더러운 옷을 입은” 바다나 “기차”가 아닌 바로 ‘나’가 떠 있다.

인천에서 탄생한 사이다라는 대상은 인천을 수식하는 고유명사인 셈인데, 그와 결부되는 ‘인천 앞바다의 사이다’라는 수사는 둥둥 떠다니는 병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면서 그 바다를 유리병에 든 액체 공간으로 수렴, 대체한다. 그렇게 사라진 바다라는 기호를 향해 경기도 연천에서부터(그전에는 소요산으로부터) 파란색의 1호선 전철이 달려 나온다. 실제 배우로 출연하는 박은호가 화려한 파란색 스팽글 옷을 입고 등장함으로써 그 기차라는 신체를 환유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더러움과 파란색, 그리고 인천과 ‘나’가 하나의 기호 계열체로 구성된다.

<파란색 기차들>은 이들이 동명의 희곡을 연습하는 과정을 하나의 연극으로 표현하는 형식을 택한다. 연습 과정에서 녹음된 희곡 읽기 혹은 연기 연습은 정착지가 없는 떠도는 말들로 나열된다. 희곡을 읽고 반복하면서 톤과 정서를 잡고 다듬어 가는 과정에서 머뭇거림, 의구심, 정체성에 대한 의심과 회의와 같은 여러 총체적 감정이 표출된다. 곧 이들은 인천과 나 사이에서 인천을 바라보는 뚜렷한 ‘나’의 언어를 ‘완성’하는 대신, 그 언어를 임시적인 것으로 두고, 인천을 바라보는 또 대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홋홋홋은 인천에 대해, 아니 인천을 보는 자신에 대해 말한다, 언어를 의심하는 나의 분열과 불안전함에 집중하는 것으로써. 아마도 ‘(이전의) 나’의 고향 인천과 그 바깥의 서울을 오가는 ‘(다른) 나’의 자기 존립의 과제 또는 새로운 정체화의 과정은 이 두 지역이 갖는 확연한 인식적 차이에 대한 거부나 저항의 영역으로 쉽사리 옮겨가지 않을 것이다.

서울을 지향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천은 잊히거나 지양되는 장소, 따라서 자신의 얼룩이 함께 드리워지는 마음의 장소가 된다. 이는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을 지향하다 인천으로 다시 돌아와 심기일전하는 한아름이나 인천을 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삼기도 하다 서울로 가서 인천과 뜸해졌음으로부터 이번에 인천을 다시 환기해보고자 하는 이권형의 현재 상황과 충분히 결부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더러움은 물리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심리적 차원의 ‘얼룩’으로 자리 잡는다.

서식지로부터 출발하여, 서식지를 경유하여, 서식지에 도착하기

네 팀의 서로 다른 서식지에 대한 관점, 인천을 바라보는 의식의 차이를 네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식지는 타자를 향한 틈을 여는 행위가 동반되는 곳―<올가드쥬파트>―이거나 어쩔 수 없이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고 훼손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인천입주청소>―이다.

다른 한편, 서식지는 물리적 영토(<인천입주청소>), 또는 그것을 가정한 일정 정도의 장소(<올가드쥬파트>)를 상정하는 대신에, 주체의 언어와 감각의 차원에서 환기되는 ‘자아’의 처소이기도 하다. 이는 다분히 문학적인 아이디어와 연결되는데, 곧 서식지는 영원하지 않은 정착지, 임시적으로 떠도는 이주민의 이주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해 서로가 서로에 대한 상호적 ‘안식처’―<망명지>―이거나 지난날들과 새롭게 마주한 ‘나’의 떨어져 나간 그리고 다시 환기되는 복합적이고 미묘한 ‘정동’―<파란색 기차들>―으로서, 어렴풋하고도 추상적인 형상으로 떠오른다.

도화가압장은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의 1년 단위의 기획 프로젝트로, 그동안 ‘수봉공원’(2020), ‘제물포 디아스포라’(2021), ‘들리는 소문’(2022), ‘반경 넘어 Q!’(2023)라는 각각의 주제와 제목과 함께 2020년부터 지속되어 왔다. 일시적인 협업과 주제 탐구 및 리서치, 지역 탐방 등을 통한 작품 개발의 프로젝트 성격은 다른 예술 지원 프로그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외적인 방식이다. 개별 작품의 예술적 성취와는 별개로, 서로 다른 창작자 간의 협업을 통한 창작 경험, 그리고 인천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예술적 참여의 발생이 이 프로그램의 미덕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이 결과 자체를 발표하는 극장이 아닌 만큼, 향후 결과발표공유회의 자리가 인천아트플랫폼이나 여타 극장 시설이 갖추어진 곳에서 해당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이뤄질 경우, 조금 더 원활하고 매끄러운 공연 진행 및 관람이 가능할 것이다. 곧 많은 인천 예술인들의 연습 공간이 되는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의 서식지로서 그 의미와 그것과는 또 다른 극장의 기능을 새삼 환기하면서 도화가압장의 풍부한 의미들이 응결되는 새로운 서식지를 꿈꿔 본다.

김민관

김민관 (金珉寬, Kim Min-kwan)

아트신(https://www.artscene.co.kr) 편집장, 공연 평론가, 예술 기획 및 출판.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관련한 아카이브에 관심을 두고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비평·기획·창작의 교환과 매개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작업을 병행 중이다.
mikw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