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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가 좋아진 이유 ‘영화공간주안’

김자영

지난해, 인천 주안역 근처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한 지인에게 전하니 “거기 험한 동네 아니에요?”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이사 당사자인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기에 오기 전 지레 겁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살던 집 바로 앞에는 천이 흐르고 있어 밤에도 하염없이 강가를 따라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안역 근처로 이사 온 뒤엔 길을 걷다 보면 상점에 달린 네온사인 간판 불빛과 취기로 들떠있는 사람들을 마주하기 일쑤였다. 그 앞에서 괜스레 움츠러드는 마음에 발걸음을 집으로 되돌리는 일을 반복했다.

한동안 이사 온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하던 중, 주안에 대한 애정을 높여준 특별한 공간을 만났다. 인천은 물론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예술영화 전용관, ‘영화공간주안’(이하 영공주)이다! 처음엔 의아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싶은, 뜬금없는 곳에 있어서다. 미추홀대로의 많은 중·고층 건물들 사이, 고개를 들어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법한, 다소 투박한 간판이 걸린 주안 메인프라자 건물 7층에 ‘영공주’가 있다. 외관은 투박하지만 영화관 내부는 다른 시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게 쾌적하다. 입장 전 머물 수 있도록 마련된 대기 공간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이 마음이 고요해진다.

2007년 4월 30일 설립돼, 어느덧 개관 20주년을 앞둔 영공주는 이젠 명실상부 인천인의 문화복지를 책임지는 미추홀구 대표 시설로 자리매김했다. 멤버십 회원 수만 약 1만8,000명. 17년 동안 영공주에서 상영된 작품 수가 약 3,000개에 달하고, 상영 횟수는 6만 회가 넘는다. 4개 상영관과 1개 다목적 소공연장을 갖춘 영공주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전 상영관을 예술영화관으로 지정받았다. 여느 영화관과 달리 독립·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성 영화만을 상영하고 있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 다른 지역 시민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흔히 예술영화, 독립영화라 불리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에 영화관 시간표와 자신의 스케줄을 맞춰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멀티플렉스 3사의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의 압도적인 스크린 점유율 차이를. 해외에서 유수의 상을 받았다는 감독의 영화도 해외 블록버스터·상업영화에 밀려 얼마 못 가 극장에서 내려간다. 관객들의 선택지가 결국 멀티플렉스가 밀어주는 얼마 안 되는 주요 흥행작 몇 편으로 좁혀지는 현실이다. 인천 한가운데 꿋꿋하게 서서, 예술영화‘만’ 가져와 선보이는 영공주는 참 보기 드문 공간이다. 드물기에 귀하고 또 소중하다.

영공주는 일반 상영관에서 만나기 어려운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취지로 시네마 차이나, 스웨덴 영화제, 영공주 인생영화, 시네마토크 등 여러 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 티켓값이 일반 멀티플렉스의 절반 가까운 가격으로 책정된 데다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한 매주 수요일이면 더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

필자는 조조시간대 영화값이 5,000원에서 10,000원으로 오르기까지 과정을 지켜보며 자랐다. 티켓값은 나날이 인상하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차고 넘칠 때면, 볼 영화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했다, 경제적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영화 보고 싶은 욕망을 참아야 했었던, 아주 평범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공간주안의 운영방침에서 여타 이유로 문화생활에 소외되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서울 공화국’이라 부른대도 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영화공간주안’이 갖는 문화적 상징성은 더욱 특별하다. 미디어에선 너나 할 것 없이 ‘지역균형’을 말하지만, 일자리·교육·교통 등 사회 인프라 대부분이 서울에 쏠려있다. 그중에서 서울과 비(比)서울 간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지점이 문화 인프라의 접근성일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국 영화관 615개 중 256곳은 서울·경기에 위치해 있다. 인천 소재 영화상영관 수는 29개에 불과하다. 영화가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품 전시, 연극 등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 친화적인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별 차이를 보인다.

2020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코로나 이후 많은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전국민적 거리두기로 운영에 큰 타격을 입은 예술영화관의 경우 그 여파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대한극장도 올해 9월 영업을 종료했다. 주안동에 온 지 1년 겨우 넘은 내가 대한극장 소식을 들으며 마음 한 켠이 씁쓸하다가, 영공주를 떠올리고, 영공주의 미래를 걱정하고, 영공주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로봇드림> <사랑은 낙엽을 타고> <퍼펙트데이즈> 같이 좋은 영화를 현실적인 이유로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지 않나.

삶이 팍팍해도 지켜내야 할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대대로 전해 내려갈 것, 고전, 클래식, 아날로그, 원형을 지키는 사람, 그것이 지켜지는 장소가 좋다”고 적은 적 있다. 영공주가 오래도록 살아남아 인천의 오아시스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비슷한 마음이 인천 곳곳에 흩뿌려져 있을 거라 확신한다.

영화공간주안 건물 외관

영화공간주안 건물 외관

영화공간주안 입구

영화공간주안 입구

영화공간주안 4관

2023 예술영화 비평학교 강의

2023 예술영화 비평학교 강의

김자영 (金子永, Kim JaYoung)

1997년 4월 16일생. 현재 인천에 살고 영화공간주안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