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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음악 도시, 부평

<2024 ‘뮤직 플로우 페스티벌’>

이현파

최근 한국의 음악 팬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기후 위기를 잊은 듯 바쁜 여름을 보내야만 했다. 올해 7, 8월 내내 다양한 장르의 뮤직 페스티벌이 거의 매주 열리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분주한 여름의 문을 닫는 것은 의외로 인천 부평의 몫이었다.

2024년 8월 31일, ‘뮤직 플로우 페스티벌’이 열리는 부평아트센터를 찾았다. 매년 ‘뮤직 플로우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발표될 때마다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이 라인업이 무료일 수 있느냐”는 반응이 반복된다. 중량감 있는 뮤지션을 정성스럽게 모은 큐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높은 접근성은 이 페스티벌의 큰 메리트다. 물론 가격 이외에도 이야기할 것은 많았다.

이날 부평아트센터 야외광장에는 서로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다소 이질적인 관객이 공존했다. ‘지속 가능한 덕질’과 같은 깃발을 흔들며 국내외 록 페스티벌의 티셔츠를 입은 음악 마니아들, 팬데믹 이후 Z세대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밴드 붐’에 동참한 10대 음악 팬들, 그리고 돗자리를 깔고 음악 피크닉을 즐기러 나온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불고기디스코

불고기디스코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힙노시스테라피

힙노시스테라피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토요일의 라인업은 유독 풍성했다. 늦여름의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밴드 불고기디스코가 특유의 펑키한 음악으로 페스티벌의 문을 열었다. 래퍼 짱유와 프로듀서 제이플로우의 듀오 힙노시스 테라피는 자신들을 낯설어하는 관객들도 열광하게 했다. 다양한 관객이 모이는 페스티벌에서 이들을 섭외하는 것은 다소 도전적인 선택이다. 힙합과 전자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편린을 뒤섞은 그들의 독특한 문법은 낯선 것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낯가림이 없었다. 짱유는 관중들 사이로 내려가 몸을 부딪히는 것은 물론, 무대의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등 록스타스러운 기행을 선보였고, 관객과 아티스트 간의 경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CHS

CHS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바밍타이거

바밍타이거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이어 등장한 밴드 CHS는 (한국 밴드임에도) “헬로, 코리아”라는 멘트로 익살을 떨었다. 그리고 ‘트로피컬 싸이키델릭 그루브’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음악 세계에 집중했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8월 말, 이들의 사운드는 해변의 정취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밴드의 대표곡인 ‘Highway’에 이어진 슬램은 여름을 마무리하는 음악 팬들의 의식과 다름 없었다. 올해에만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프리마베라 사운드(Primavera Sound) 등 세계적인 페스티벌에 초대받은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 타이거는 그간 쌓인 공력을 펼쳤다. 키치한 안무로 유명한 ‘부리부리’를 부르는 동안에는, 이 페스티벌에서 가장 거대한 춤판이 펼쳐졌다.

장기하

장기하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장기하

장기하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마지막 공연자 장기하는 등장과 동시에 분위기를 장악했다. ‘별일 없이 산다’, ‘풍문으로 들었어’, ‘부럽지가 않어’, ‘그렇고 그런 사이’ 등 숱한 히트곡으로 무장한 인디 슈퍼스타다웠다. 대중과 인디를 모두 아우르는 멜로디, 그리고 절륜한 라이브 솜씨가 결합할 때의 파괴력은 압도적이었다. 이처럼 부평을 찾은 뮤지션의 장르와 스타일은 각기 달랐다. 그럼에도 주최 측이 추구하는 경향성은 뚜렷해 보였다. 라이브 공연을 잘할 줄 아는 퍼포머, 동시에 뚜렷한 창조성으로 무장한 아티스트들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많은 뮤지션이 연이어 공연을 펼쳤지만, 페스티벌은 ‘릴레이 공연’만은 아니다. 페스티벌은 공동체다. 같은 언어를 향유하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만나 소통하는 곳이다. 그 언어에는 지역 역시 포함된다. ‘뮤직 플로우 페스티벌’은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에게 부평을 각인시키고자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본 공연에 참여한 밴드 ‘더 웜스’ 역시 2023년 부평구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에 참여한 로컬 뮤지션이었다.

서브컬처 프로그램

서브컬처 프로그램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서브컬처 프로그램

서브컬처 프로그램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뮤직 플로우 페스티벌’은 기존에 열리던 부평의 서브컬쳐 사업 ‘언더시티 프로젝트’와 결합하면서 더 다층적인 콘텐츠를 확보했다. 그래피티, 디제잉, 스케이트 보더들의 서브컬쳐 프로그램 모두 인천, 부평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막걸리를 시음할 수 있는 부스 역시 부평을 기반으로 한 양조장의 것이었다.)

뮤직 플로우 포럼

뮤직 플로우 포럼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관객들

관객들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지난해까지 아티스트 공연이 열렸던 달누리극장은 산업 종사자들의 좌담 ‘뮤직 플로우 포럼’이 열리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한국 인디 뮤지션의 해외 진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두 번째 세션 ‘AI, 기회인가 위기인가’는 생성형 AI가 어느 때보다 일상에 밀접해진 지금, 유독 시의적절했다.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미국의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를 비롯한 해외 축제를 떠올리게 했다.

음악과 사람으로 북적거린 부평은 본디 어떤 공동체일까? 부평은 인천과 서울을 잇는 교차로이자, 오랜 공업 도시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나와 같은 타지인이 산업의 흐름과 지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부평은 재미있는 예술적 순간을 통해 또 다른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 고장이었다. 광장에 나부낀 깃발, 그리고 음악 팬들의 발걸음은 오히려 부평 미군 기지에서 수많은 뮤지션이 태동하던 20세기의 즐거움과 맞닿아 있었다. 행사장에 크게 내걸려있는 ‘음악이 흐르는 문화도시 부평’이라는 슬로건 역시 결코 낯간지럽지 않았다.

이현파

이현파 (李賢播, LEE HYUN PA)

음악 컨텐츠 크리에이터
유튜브 ‘왓더뮤직’을 운영하고 있다.
팟캐스트 ‘Amplified Podcast’에 고정 출연 및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에스콰이어’ 등에서 글을 썼다.
2hyunp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