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교육
거점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한번 물어봅시다
임재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지원이 다년간 이뤄졌지만, 참가자 수와 같은 관료적 요구가 아니더라도, 그 성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거나 뭔지 모르게 궁색하기만 하다. 특히 삶과 예술의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접촉점을 촘촘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적 지향을 거점이라는 개념을 통해 돌파하고자 하나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지원 기반은 마치 넉넉지 않은 집 쌀통을 긁는 형편이 아닌가. 한편,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약간의 지원금을 (협업이 아닌 심의를 통해) 선택적인 지급을 하는 상황에서, 연대, 관계,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예술과 배움 등 입체적인 과제로 봐야 하는 거점의 무게감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겨우 목을 축이고, 주섬주섬 밖에 나갈 채비를 하는 사람에게 쇼에 나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타박하는 형국과 다르지 않다.
개별 현장의 상황 역시 매년 단건으로 자신의 존재가 아닌 역량을 알리고 증명하는 지원사업의 구조에서 프로그램 이상의, 프로그램의 안과 밖, 전과 후를 고려하는 넓은 시야와 실천적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심지어 길들여진다. 와중에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지원사업(이하 거점사업)이 거점을 향한 공공과 민간의 욕망과 갈등, 그사이의 문화적 긴장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열쇠 구멍이 되어주고 있다. 투덜거림은 거점에 대한 질문을 통해 계속 좌절해왔던 지역 기반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현장, 민간주체들의 생각과 언어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따라가 보는 것으로.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리뷰 현장
인천 문화예술교육 기획 지원 ‘거점형’ 사업은 2023년 개편을 통해 단체가 직접 지역 민간 문화예술교육 거점 구축을 위한 활동을 기획하여 운영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작업장봄>, <푸른영상>,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3개 단체가 지역 문화예술교육 현안과 단체 철학을 바탕으로 거점의 상을 그리고 기반을 닦았습니다.
인천 거점지원 사업은 전문가 2인이 ‘읽는 사람’으로서 사업 운영기간 동안 3개 단체를 함께 관찰·인터뷰하여 단체 활동의 의미를 해석하고 비평하는 ‘리뷰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임재춘(커뮤니티스튜이도 104 공동운영자), 김혁진(모든체험학습연구소 연구위원)이 거점 리뷰어로 참여하여 읽고 보고 생각한 바를 기록하였습니다. (바로가기)
### 이 사업을 통해 다뤄보고자 했던
현장을 재차 돌아보고 짧지 않은 대화들을 나누게 되니, 사업계획서의 내용이 여러 측면에서 보이고 읽힌다. 현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미처 언어화되지 못한 맥락과 현장에서 목격하는 풍경 너머를 헤아림으로써 각 현장의 진심과 드러나지 않은 역량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광역재단의 입장에서 거점사업을 통해 시도하고 확인하고 싶었던 문제의식들이 있었을 텐데, 무엇보다 3개의 현장을 잘 이해하겠다, 그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지역문화예술교육 생태계나 현장의 두께들을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지의 선택지가 현장 곁에 ‘읽는 사람’을 둔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정해진 수준이나 기준을 두고, 그런지 아닌지를 변별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보려는 태도와 노력이다. 지역문화예술교육 활성화가 제도와 행정의 구호에 그치며 시간이 쌓여도 실패를 거듭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더 이상 부분적인 지원방식의 수정으로는 그게 무엇이든 추구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기의 목적은 현장마다 출발선을 찾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업장봄> 리뷰 현장
출발선을 다시 긋는 작업은 “자, 게임이 시작되니 모두 이리로 모이세요!”가 아니다. 각자의 출발선을 어디에 어떻게 그을지를 정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는 과정과 같다. 각자의 관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부족했던 질문과 방식을 보충하면서 근본적으로 다시 조율하고 재정비한다. 냉철하게 우리 스스로 경험의 위치, 역량의 위치, 가능성의 위치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역시 완전한 읽기는 불가능하다. 읽기의 가치만큼 읽기가 만들어내는 거리와 우연은 다 읽을 수 없다는 모순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다만 읽는 사람이 갖는 현장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이 질문으로 또는 제3의 시선으로서 현장과 대면함으로써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흔드는 상호작용이 일어났다면 뜻깊을 것 같다.
### 3개 현장을 들여다보며 되짚어보자 제안했던 것
공통적으로 각 단체가 추구하는 예술언어가 무엇이고 프로그램을 통해 다뤄지는 과정의 풍부함이 아쉽다. 보지 못한 것인지, 풍부하게 다뤄지지 못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고, 단체마다, 활동의 흐름상 굴곡이 있는 상황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각자가 주목하는 지역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 컸던 탓일까. 그 관심만큼 지역과 주민들이 대상화되는 함정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내내 생각이 들었다.
주민, 시민, 협력주체의 참여 방식이 참가자로서의 문법을 넘어서지 못한 경우가 자주 목격되었다는 점도 함께 다뤄볼 주제이다.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교류라기보다 운영자들이 끌어내야 하는 일종의 채굴자의 욕구가 작용한다. 참가자가 (말)한다는 자체에 의미를 크게 두다 보니 이야기의 밀도가 높지 않고, 때로는 자기의 이야기에 아예 도달하지 못하고 동네의 이슈를 대변하는 것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3개 현장 모두 이미 기존의 경험에서 이런 방식과 거리를 두는 태도들을 견지해왔음을 알고 있는데, 방식(문화예술적 장치)이 관점을 반영하거나 못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실행 형식이 프로그램 중심의 전형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점도 짚어보았으면 한다. 연구와 네트워킹, 특별 프로그램이라는 형식과 구조가 대동소이하다. 하면서 구상하거나, 조금 더 낯설게 만날 수 있는 시공간의 기획적 고려, 또는 주체들의 개별적 호기심이나 관심을 중심으로 다양함의 경로를 만드는 등 다른 형식적 상상이 아쉽다.
<푸른영상> 리뷰 현장
### 거점을 질문과 가설로 보자
거점이 무엇인가? 명료하게 답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질문으로서 거점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3개 현장 모두 확실한 거점의 상을 토대로 활동을 했다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거점의 상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이 부분은 정책과 제도가 그 쓰임을 정보와 역할을 집중하여 기능의 효율을 높이고 주민을 대상으로 서비스(제공)하는 것으로 거점의 개념을 선점하여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항하는 의미가 있기도 하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기존에 알고 있는, 학습된 거점의 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보자. 거점의 역할을 미리 정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식으로, 무엇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 주체로서의 ‘두께’를 만들어갈지 가설을 설정해보자. 익숙하고 잘하는 것을 반복하기보다 여력이 없어 미처 손대지 못한 것, 막연했던 것 등을 과감히 시도해보고 실험하면서 그 경험이 토대가 되어 귀납적으로 거점을 말해보자.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 지원 거점형 12월 과정공유회
### 조금 더 가볍고 허황되면 어떨지
최소 2년 이상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활동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 실험될 수 있도록 기간의 보장이 필요하다. 단체의 경험, 상황의 다름이 결함이기보다 특성으로서 기존의 것에서 아주 조금 더 연결되고, 넓어지며 깊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북돋아야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거점이라는 주제가 무겁고, 뭔가 아울러야 한다는 압박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인상이 있어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엄두를 내지 못할 수 있다. 활동 연차가 많아야지만 거점을 사유하거나 실험하며 나아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관성과 문턱으로 작용한다. 거점의 기본적이면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이나 메시지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가볍게 거점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지원의 트랙을 여는 것도 해볼 만하다. 옳고 그르다는 판단 이전에 때로는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이야기가 들끓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 어쩌면 거점이라는 게 별 시답잖은, 허풍쟁이들의 떠벌림의 난장이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임재춘(林在春, Yim jaechoon)
독립문화기획자, 행정적인 필요로 만든 ‘커뮤니티 스튜디오104’의 대표로 편의상 쓰고 있다.
‘대표’라고 표현해야 만족해하는 어떤 체계와 기준들과 소통하는데 쓸모있는 옷이다.
연구, 컨설팅, 기록, 문화기획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모두 의미 있는 일이지만 특히 마음을 쓰는 일 중 하나가 ‘사람을 남기는’ 의도와 관련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