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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구현으로 완성한 가족극 <설아, 어디가>

전강희

극단 수지바트는 수집(Susib)과 아트(Art)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뮤지컬, 연극, 영화, 축제 등 장르의 경계 없이 창작 활동을 하는 이 단체는 극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듯 자신들의 공연명 앞에 하이브리드라는 명칭을 붙인다. <설아, 어디가?>는 수지바트의 작품답게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공연이다. 어린이의 그림을 이용한 프로젝션 맵핑, 악당을 물리치는 어른들의 액션활극, 연극과 뮤지컬이 함께 있는 공연이다.

등장인물은 다섯이다. 시계의 시침, 분침, 초침, 엄마 영희, 아빠 철수이다. 그리고 실제 배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이 설이가 있다. 설이가 사는 세상은 시계의 침들이 돌아가는 본래 속도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 곳이다. 시침과 분침은 자신들을 시간의 요정이라고 소개하는 노래 ‘시침 분침 송’을 부르며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을 관객에게 알린다.

“사람들은 우~리를. 기억하려 하지 않아. 우~리가 돌고 돌아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 대신 열~심히. 돌고 돌아 멈추지 않지.
우린 필요 없대. 사람들은 우릴 잊어. 그럼 우린 어떻게 하지?
이제 예전처럼. 천천히 지~겹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지.”

24년 6월 리뷰1 이미지

시침 분침 송 가이드 음원 ©수지바트 유튜브 페이지

추상적인 시간 개념을 구체적인 인물로 구현하면서 이들의 외모는 익살스러운 요정처럼 표현되어 있다.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구원해 줄 것으로 예상하며 극을 보게 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이 요정들이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집 안 곳곳의 물건을 통해 가족의 추억을 들여다보고, 그 추억을 먹어 삼킨다. 이들이 추억을 앗아갈수록 부모들은 아이를 잊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아이들이 점차 사라져간다.

시계 요정들은 본래 인간에게 우호적인 존재였다. 이들이 전과 다르게 악당이 되었다는 사실은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초침의 행동으로 알게 된다. 모든 침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초침은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인다. 설이를 점점 잊어가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깨달은 엄마, 아빠가 설이를 찾아 차원 이동을 하여 마수들과 싸울 때, 초침은 시침, 분침과 대립하며 엄마, 아빠를 돕는다. 이들이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공연은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떠나고, 위기를 맞지만 결국은 답을 찾아내는 기승전결의 서사로 구성되었다. 이 공연의 서사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극처럼 치밀한 설명이 수반되지 않아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을 구현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시간을 인물로 형상화하면서, 바쁜 일상, 서로에게서 소외되는 가족, 아이의 외로움 등을 인물의 대사나 구체적인 행동으로 축약하여 보여준다. 가족의 행복한 시간은 그 시간 속에 있었던 물건에 쌓이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물건 속에 쌓인 시간을 시계의 침들이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먹어버림으로써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기억의 한 조각이라도 빼앗기지 않고자 고군분투했던 초침은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설이가 된다. 아이의 노력이 부모의 후회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궁극적으로 가족을 구한 것은 아이가 되었다.

©수지바트

©수지바트

©수지바트

©수지바트

<설아, 어디가>는 간단한 사건 중심으로 플롯이 구성되어 있지만, 극한 경쟁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한 현대인의 삶을 객석에 있는 다양한 연령의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인물들의 심리를 단순화하다 보면 이야기의 깊이를 놓칠 수도 있지만, 이들의 대사와 행동을 적절하게 치환하고, 압축하여 드러냄으로써 극의 깊이를 놓치지 않았다. 인물을 해석하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극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5월 4일 토요일 11시. 이른 시간이지만 학산소극장에는 어린이부터 청년, 흰 머리의 어르신들까지 많은 관객이 있었다. <설아, 어디가>가 이들 모두에게 감동적인 시간을 선물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강희

전강희(全康希, Jeon Kanghee)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현장에서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축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winnie3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