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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린 향교에서 선현의 삶을 만나다
전통문화 교감 가족캠프 <인천향교, the 다가감>
서정혜
인천 미추홀학산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4 향교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 <인천향교, the 다가감> 프로그램이 전통문화 교감 가족캠프를 시작으로 인천향교 인문살롱 ‘상생’ 및 달빛공감음악회와 인천향교, 미추홀 성년례까지 각 행사 일정에 맞춰 진행된다.
작년에 아이와 참가했던 <렛츠고 관아체험, 인천도호부가 살아있다!> 프로그램의 즐거웠던 경험으로, 올해는 향교 가족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보슬보슬 봄비를 맞으며 비석군(선정비)을 지나 홍살문을 통과해 계단을 오른다. 외삼문을 들어서는 순간 대성전 뒤로 승학산 나무숲이 한 폭의 그림처럼 운치 있게 반겨준다.
문화유산강사 향교 이야기 탐방 ⓒ서정혜
누여진 비석 ⓒ서정혜
입교식 후 33명 참여자를 기와팀, 단청팀으로 나누어 가족캠프의 문을 연다.
문화유산 강사님의 해설로 향교의 이야기 탐방이 시작되었다.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특히 인천향교 앞 비석군의 이야기에 두 귀가 쫑긋!
비석들은 조선시대 인천에 부임해 백성을 어질게 다스렸던 인천 부사 및 현감, 관찰사 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선정비이다.
여기에 특별히 누여진 비석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되며 비석이 철거되었지만,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의 일부로 반면교사의 교훈을 주고자 다시 이 자리에 눕혀 놓았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 자취를 남기고 가야 할 것인지…….
고유례.대성전 ⓒ서정혜
고유례 ⓒ미추홀학산문화원
제향의례 중 고유례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중요한 일을 공자에게 고하는 유교의식인 고유례 체험전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역할(축관, 헌관, 알자, 봉로, 봉향, 관세위)을 정했다.
경건한 마음과 공수 자세로 대성전 동쪽 계단을, 오른발을 먼저 올리고 왼발을 붙이며 천천히 올라간 후 대성전 안에서 고유례를 체험해 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서쪽 계단으로 내려올 때는 오를 때와 반대로 왼발을 먼저 내디딘다.
공수하고 예를 갖추어 고유례를 행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못 조선시대 선비 같다.
공평하지만 꽝을 뽑은 아이의 뽀로통한 얼굴과 삐죽 나온 입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내 다른 체험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팔짝팔짝 신나게 뛰고 웃는다. 아이를 따라다니던 나의 눈길과 걱정은 기우였다.
전통 다례·다식 체험 ⓒ미추홀학산문화원
전통 다례·다식 ⓒ서정혜
떡살을 이용해 다식 만들기 체험 시간이다. 시작도 전에 ‘꼬르륵’ 배고픔이 먼저 찾아온다.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물조물 다식도 만들고 녹차도 시음했다. 체험 후 아이들이 바둑알만 한 다식을 한가득 들고 온다.
색색의 다식 중 내 입맛을 사로잡은 건 황토색 다식.
콩가루가 들어가 고소한 맛과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전통 음식의 맥이 이어져 나가서 많은 이들이 맛보고 즐겼으면 좋겠다.
절하는 법 ⓒ서정혜
전통 예절교육 ⓒ서정혜
한 손 가득 다식을 들고 명륜당으로 이동하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전통 예절교육을 받기 위해 한복으로 차려입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단아한 자태에 ‘곱다 고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남자는 왼손이 위로,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올라오게 공수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하는 법을 배워본다. 손발 위치가 헷갈려 반대로 하기도 한다. 어려울 법도 한데 배운 대로 아이들이 곧잘 따라 한다.
팝업북 만들기 ⓒ미추홀학산문화원
전통음식 비빔밥 ⓒ미추홀학산문화원
팝업북으로 향교의 구조를 알아본다. 배고픔도 잊고 자르고 붙이고 가족 모두 분주히 손을 움직인다. 하나둘 붙이기 시작하니 제법 입체적인 팝업북이 완성되었다.
전통음식인 비빔밥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오전 활동을 마친다.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잠시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붓글씨도 연습하고 제기도 차고 던지고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한가득 피었다. 한편에선 팝업북을 마무리 짓는 가족들도 보인다.
천연염색 쪽물 들이기 ⓒ서정혜
쪽빛 손수건 ⓒ미추홀학산문화원
오후 활동이 시작되었다. 천연염색 쪽물 들이기 시간이다. 처마 끝 빨랫줄에 매달린 쪽빛 스카프가 바람에 살랑살랑 나풀거린다.
손수건에 다양한 재료를 덧대고 묶고 나만의 모양 만들기로 손길이 분주해진다. 차례차례 만들어진 손수건을 쪽물에 담근다. 쪽물에 담갔다 꺼내면 옅은 연두색을 띤다. 차츰 연두색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며 서서히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신묘하다.
쪽빛으로 물들어 가는 나만의 손수건이 탄생하는 순간 “와~ 예쁘다”라며 한껏 들뜬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바라보는 눈동자도 쪽빛으로 물들어 푸르디푸르다.
탈 만들기 ⓒ서정혜
은율탈춤 배우기 ⓒ미추홀학산문화원
은율탈춤 배우기가 오늘의 마지막 활동이다. 은율탈춤은 국가무형문화재로 현재 미추홀구 수봉공원 내 전수회관이 있으며, 활발한 전승과 공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자신만의 느낌을 살린 탈을 만든다. 완성된 탈을 가지고 명륜당으로 이동하여 은율탈춤 기본동작 중 떡메사위와 올림사위를 배워본다. 타령장단에 맞춰 팔도 올리고 다리도 들고 폴짝 뛰어도 보고 은율탈춤 배우기에 열심이다.
수료증 ⓒ미추홀학산문화원
단체사진 ⓒ미추홀학산문화원
비 내리고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열심히 활동하였다. 특히 긴 시간 동안 체험을 즐기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오늘 활동들이 다 기억에 남지만 그중 염색체험이 가장 재미있었고, 내년에도 다시 참여하겠다”는 참여자의 소감을 듣고 수료증과 기념품을 전달받고 대성전 앞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퇴교식을 마무리하였다.
문학경기장 인근에 오실 때 인천향교로 발걸음을 옮겨 전통문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4월 20일(토) 1차 가족캠프가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잘 마무리되었다. 또한 4월 27일(토), 5월 18일(토), 5월 25일(토)에도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어 많은 가족이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정혜(徐禎彗, Seo Junghye)
그림책으로 소통하는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활동가
jujupi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