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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래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
윤세형
봄의 개항장은 산책하듯 천천히 거닐기 좋은 계절이다. 4월의 자유공원 일대에는 벚꽃이 흐드러진다. 인천에 처음 오는 친구를 데려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단연 개항장이다. 다른 지역의 전문가들이나 학생들에게 인천을 소개할 때 현장 방문을 추천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제까지 많은 손님들을 모시고 개항장 곳곳을 누비며 즐거운 마음으로 인천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해 왔다.
반가운 사람과 함께하는 개항장 산책의 시작은 인천아트플랫폼 앞마당이다.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이었던 붉은 벽돌창고 건물군은 때마다 흥미로운 전시들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자 시민들을 위한 생활문화센터로 재탄생했다. 일본영사관이었던 중구청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지금은 개항박물관과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 일본제1은행과 제18은행 인천지점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청국영사관지에 세워진 화교중산학교를 지나 차이나타운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중국 노포의 청요리로 점심을 먹고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눈앞에 펼쳐진 인천 앞바다와 내항을 드나드는 거대한 배들과 석양에 물든 월미도를 바라보며 풍경 속에 담긴 개항기의 이야기와 사라진 건물들,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자유공원 바로 아래, 사람들이 잘 들르지 않는 조용한 골목으로 내려간다. “송학동 역사산책길”이라 이름 붙여진 이 길에는 1900년대 개항기 서양인들의 사교클럽이었던 목조건물 제물포구락부와 광복 때까지 일본인 기업가의 별장이었다가 1960년대 인천시장 관사로 쓰였던 ‘인천 시민愛집’, 그리고 1890년대 독일인 사업가가 살았던 석조주택 터에 한국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 건축가가 1970년대 설계한 검은벽돌 주택인 ‘이음1977’이 함께 모여 있다. 마침 봄 소풍 나온 어린이들이 100년이 넘는 세월의 역사를 품고 있는 건물들을 자유롭게 구경하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봄날, 한나절의 산책을 마무리한다. 아직 소개하지 못한 옛 건물과 길이 많이 남아있는데 하루가 아쉽기만 하다.
인천항에서 바라본 개항장 전경 ©iH
자유공원아래 송학동 역사산책길 ©iH
“인천”하면 으레 황금색과 빨간색의 화려한 페루와 차이나타운을 떠올린다. 하지만 인천에, 하필 중구에 차이나타운이 왜 자리 잡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 이유는 인천이 1883년 대한제국이 처음 외국에 문호를 개방했던 항구도시이기 때문이다. 140년 전 인천을 통해 미국과 유럽, 일본으로 오가는 국제무역이 성장하면서 조선의 금융과 산업이 빠르게 변화되었다.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세계 각국의 신문물과 문화 취향은 모두 개항장을 통해 국내로 전해졌다. 전등, 전화, 우편, 전차, 커피 등 새로운 근대기술은 물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교육, 신문 등 근대사상이 유입되면서 사회적 변화까지 촉발시켰다. 당시 개항장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일하기 위해 번화한 국제도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산업과 문화, 생활양식을 대표하는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땅과 길은 정직하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의 흔적은 어떤 방식으로든 도시에 남는다. 더불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차이나타운은 중국인들이 모여 살며 치외법권을 인정받았던 청국 조계지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중구청 일대의 가로가 반듯한 직사각형이고 석조건물과 1층 상가, 2층 주택 형태의 목조건물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일본 조계지로 일본식 도시계획을 했기 때문이고, 자유공원 아래 가장 전망 좋은 비탈면은 미국‧프랑스‧독일 등 서양인들이 모여 살던 각국 조계지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필지의 독특한 서양풍 건물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2019년 「인천시 건축자산 기초조사 및 진흥시행계획」에 따르면 중구에 남아있는 건축물과 공간환경, 기반시설 등 근대건축자산은 인천 전체의 40%에 이른다.
1920년대 중반 인천항 파노라마 ©인천광역시 교육청 화도진도서관
(2020년 인천도시공사 다시보는개항장 Re-port 전시자료 중)
1933년 인천부사전경 ©개항장연구소
(2020년 인천도시공사 다시보는개항장 Re-port 전시자료 중)
개항 이후 140년, 오래된 건축물처럼 인천 역시 나이를 먹었다. 사람의 일생처럼 도시 역시 생애주기가 있다. 모든 도시는 태어나고, 사람이 모여들면서 성장하고, 시간에 지남에 따라 쇠퇴한다.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쇠퇴한 지역의 활기를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면서 “도시재생”이란 단어는 국민들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 제정 이후 10년, 이제는 인천만의 도시재생, 특별히 현재를 위한 도시재생과 미래를 위한 도시재생을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이제까지의 도시재생이 당장 시급한 전자에 집중했다면 앞으로의 도시재생은 가치와 시간투입이 필수적인 후자로 관심을 확대할 때이다. 법에 따르면 “도시재생”이란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ㆍ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ㆍ사회적ㆍ물리적ㆍ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역량과 지역자산이란 그곳의 자연환경일 수도, 살고 있는 사람일 수도, 기쁘고 슬픈 역사일 수도, 과거부터 있던 건축물이나 길, 혹은 지역의 공동체나 문화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결국 ‘도시재생’이란 시간과 세대를 아울러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 지역을 운영하는 시스템이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재해석하여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재창조를 통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그곳에 살 수 있고, 앞으로 계속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문제이다.
미래의 인천을 생각할 때 인천이 가진 가장 독특한 재산은 은 바로 “개항”이라는 역사를 경험했고, 다양하고 선진적인 문화를 처음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필연적으로 늙어가는 인천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 쌓인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140년 전 개항장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지금 2024년의 우리가 보고 있듯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중 앞으로 100년 후 인천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에게 남겨 줄 것과 현재를 위해 고쳐 쓸 것을 분별하고 합의하는 것이 앞으로의 인천 도시재생의 방향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윤세형 (尹世亨 , Yun, Sae-Hyoung)
1999 ~ 2007: ㈜ 정림건축(건축설계/단지계획)
2007~ 2021: 인천도시공사, 재생기획팀장 등(건축/도시계획, 도시재생)
2021~ 현재: 인천도시공사 iH도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