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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겨울 내복 같은 합창
하모나이즈 콘서트 <더 쇼콰이어>
안병진
합창의 도시 인천
몇 해 전 만난 송창식 선생은 대뜸 이렇게 말하셨다. “인천은 합창이 세지.” 학창 시절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송창식은 고향 인천의 음악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합창의 도시. 실제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합창 음악은 광복 이후 인천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 어렵다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전곡을 우리나라 최초로 공연한 이들이 1954년 내리교회 합창단이었다.
그 파장은 전국으로 번졌고 인천에서도 각종 합창단이 생겨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당시 서양음악을 한다는 것은 기독교 음악을 한다는 것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게 합창이었다. 인천이 낳은 합창의 대부, 윤학원 또한 내리교회에서 음악의 세례를 받은 이였다. 지휘자 윤학원을 중심으로 인천의 합창 그리고 우리나라 합창은 성장할 수 있었다.
합창의 도시, 합창의 DNA가 있는 걸까? 한겨울 같은 추위에도 남동소래아트홀은 하모나이즈의 <더 쇼 콰이어>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로 가득했다. 인천문화예술회관과 남동문화재단이 청소년을 위해 준비한 ‘얼리 윈터 페스티벌’ 시리즈 중 두 번째 공연이었다.
얼리 윈터 페스티벌 <더 쇼 콰이어>
쇼콰이어?
쇼콰이어는 기존의 전통적이고 정적인 합창단과 달리 합창(choir)에 볼거리(show)를 강조한 합창 그룹이다. 대중적인 노래를 합창하며 여기에 댄스 그룹처럼 역동적인 춤과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정적인 음악을 했던 송창식 선생이나 윤학원 지휘자가 보셨다면 아마 깜짝 놀라셨을 텐데, 북미와 유럽에서는 학생 동아리 형태로 이미 자리 잡은 새로운 합창 모델이다. 2010년 무렵부터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미국 틴에이지 뮤지컬 드라마 글리(Glee)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활동하는 이런 쇼콰이어 그룹은 20인조 남녀 4중창단 하모나이즈가 거의 유일하다. 2016년과 2018년 세계합창올림픽 쇼콰이어와 팝앙상블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국내 최초 쇼콰이어 그룹의 명성을 쌓아왔다.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으며 자신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노래여’라는 자작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얼리 윈터 페스티벌 <더 쇼 콰이어>
“정말이지 아무런 이유가 없었지. 이렇게 노래할 때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지. 노래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지친 너에게 날아가 끄덕이며 귀담아들어 주던 너를 보며 알았어.”(‘노래여’ 가사 중에서)
글리(Glee)의 주인공이 이제 모두 어른이 되었듯, 쇼콰이어 10년이란 세월이 그냥 흘러온 것이 아님을 이들은 공연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노래여’를 비롯해 ‘this is me’(위대한 쇼맨), ‘singin’ in the rain’(사랑은 비를 타고), ‘beauty and the beast’(미녀와 야수), ‘let it go’(겨울왕국), ‘lion king’(라이온킹) 주제곡 등 영화 히트곡을 공연했다. 또한 크리스마스 히트곡 메들리 등 스테이지마다 노래에 어울리는 안무와 의상을 연출하며 마치 짧은 뮤지컬을 보는 듯한 리듬감 있는 공연을 펼쳤다.
박효신의 ‘눈의 꽃’과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같은 가요 명곡들도 적절히 선곡하여 옆에 앉은 할머니와 앞에 앉은 꼬마 관객까지 남녀노소 누가 들어도 좋아할 노래들로 100분 공연을 채워갔다. 앙코르 무대에서는 공연자들이 객석으로 이동하여 관객까지 하모니의 일부로 만드는 등 공연에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얼리 윈터 페스티벌 <더 쇼 콰이어>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스테이지마다 멤버들이 각각 주연이 되었다가 서로의 조연이 되어주는 등 합창단 특유의 배려와 하모니는 이들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눈에 도드라지지 않게 조화를 이루며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공연 흐름은 하모나이즈가 보여준 가장 뛰어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테이지 전환 부분. 매번 이어지는 예술감독의 친절하고 장황한 설명은 너무 착한 ‘교회 오빠’ 같은 단조로움이 있었다. (아마도 청소년 관객들이 많아서 그랬으리라) 그리고 음향 탓인지 MR 문제였는지 사운드 음질에 거슬리는 노래들이 있었다. 합창단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대놓고 보여주기 위해 아카펠라로 부른 ‘눈의 꽃’에서는 오히려 파워 보컬의 부재가 느껴졌다. 이것은 이 팀이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리 윈터 페스티벌 <더 쇼 콰이어>
겨울엔 내복 같은 합창
서로의 목소리를 포개어 나누는 따뜻한 합창은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내복 같은 힘이 있다. 겨울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합창의 조합을 그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게다가 시각적인 요소를 가미한 쇼콰이어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연으로 보인다. 이날 공연을 본 학생 중 누군가는 ‘나도 한번 저렇게 노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공연을 보다 학창 시절 교회에서 중창단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를 준비하며 즐거웠던 시간. 화음이 잘 맞아떨어질 때의 그 짜릿한 기분. 평화롭고 따뜻했던 기억이 겨울 내복처럼 아직도 나를 감싸주고 있다는 것을, 하모나이즈의 합창 공연을 보며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얼리 윈터 페스티벌 <더 쇼 콰이어>
사진 제공_남동문화재단
안병진(安柄鎭, Ahn Byung Jin)
1976년 인천 출생.
경인방송 PD
前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Sound of Incheon](2017), [기타킹](2012) 등 앨범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