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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쟁이RPG”
시장의 문화력을 찾아서
김종현
예산시장이 떴다. 신포청년몰이 졌다. 그 이야기 속에는 한 인물이 있다.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 인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 정도로 운을 떼고자 하는 것 뿐이다.
시장을 사전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곳”으로만 인식한다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은 대형마트에 비해 물건의 다양성과 저렴함, 편리함에 밀려 쇠락해 갈 수밖에 없다. 특히 도시화 된 곳일수록 그 쇠락의 정도가 크다. 문화를 이야기하는데 시장경제라니 뜬금없이 들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잠시 100년 전 시장을 상상해 보자. 그때의 시장은 물건만을 사고파는 공간이었을까? 사극에서 가끔 등장하는 시장의 모습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이고 뭔가 계속 이루어지는 장소로 묘사된다. 이야기를 나누고 소식을 전하고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오가고 재미와 볼거리가 있고 가끔은 사건 사고가 있는 시장만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남도의 오일장에 가면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제끼는 소리가 정겹다. 삶은연극은 그런 쇠락해 가는 전통시장이 가지고 있었던 정서를 “시장의 문화력”이라 부르기로 했다.
2022년 삶은연극의 거점을 미추홀구의 용일시장으로 옮겼다. 비어있는 점포가 많고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것이 큰 메리트로 예전 롤러스케이트장이었다고 하는 제법 널찍한 공간을 지불 가능한 월세의 범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새 공간을 주변의 상인(엄밀히 본다면 점포가 거주지화 되었으니 주민이라 하는 게 옳겠다)들과 어떤 교류와 소통을 통해 장소화 해 갈지 궁리했다. 넓은 공간의 한쪽에 거주 공간을 만들었다. 시장의 일상과 함께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올해 “독쟁이RPG”를 기획하게 되었다. 독쟁이는 용일시장과 주변을 이르는 지명이다. 최근에는 독정이(선비들이 책을 읽던 정자가 있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로 정정하여 부르지만 독정이보다는 독쟁이가 더 친근하여 프로그램 이름을 “독쟁이RPG”로 명명했다.
용일시장의 삶은연극 거점공간으로 가는 6번출구 ⓒ김종현
시장의 존재는 시장 주변 지역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장이 흥하고 망하는 원인의 대부분이 주변 지역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본다. 한때는 앉을 자리가 없이 북적일 정도로 곱창으로 유명했던 시장이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은 현재로 이르는 과정은 고도성장기의 명멸과 함께 도시와 삶의 모습이 변해 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지역재생과 문화재생을 이야기할 때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쇠락한 시장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2년에 개장해 50년을 이어 지금도 숨 쉬고 있는 용일 시장의 이야기는 문화예술교육으로 돌아 보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시장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장소기반 문화예술교육을 꾸준히 이어왔던 삶은연극에게도 새로운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속가능한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20대의 청년문화예술교육사를 핵심 멤버로 두고 상인들과 주민들이 보조강사와 스토리텔러로 참여하는 형태의 운영을 계획했다. 그 활동을 “ROLE- PLAYING GAME”이라는 형태의 오프라인 버전으로 만들어 시장을 잘 모르는 초·중학교 학생은 물론 시민들이 지역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프로그램 개발 단계는 탐색, 워크숍, 파일럿, 실행, 평가의 5단계로 나누었다. 탐색은 리서치를 중심으로 독쟁이 지역을 발로 경험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이해하는 방식으로 시장과 주변 지역의 문화적인 장소를 체크하고 추후 프로그램의 소스가 될 것들을 추리는 아카이빙의 과정이었다.
워크숍은 청년운영자들의 시장과 지역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전체 운영진의 역량강화를 위해 설정한 단계다. 1차 워크숍은 지역의 이슈와 항상 함께해 온 전남 광주와 담양 일대의 전통시장을 찾았다. 설명이 필요 없이 예술시장이라고 명명하고 예술가와 상인의 협업을 통한 시장활성화 모델인 대인예술시장, 동네 안에 있는 작은 봉선시장활성화사업단. 도시재생의 롤모델로 유명했던 송정1913시장, 담양의 도시재생과 문화도시추진 현장 그리고 오일장을 찾아 관계자와 만나 학습하는 과정을 거쳤다. 2차 워크숍은 현재 전통시장 관련해 주목받는 공주산성시장과 예산시장을 찾아 시장활성화사업단장과 도시재생센터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공주시장 원도심 루치아의 뜰. 예산시장 ⓒ김종현
탐색과 워크숍을 통해 우선 운영진의 역량강화와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다양한 아카이브를 구축했고 다음 단계는 파일럿프로그램 단계였다. 필요성은 느끼지만 운영이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프로그램을 시험 가동해 보는 단계로 각각의 프로그램별로 체크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실패들이 있었다. RPG의 아이템을 시장화폐와 연동한 “용”을 만들기로 했는데 유튜브에서 페트병 뚜껑으로 성형하는 영상을 보고 페트병 뚜껑을 모아 만들어 본 결과 온도 유지가 어려워 실패한 경우. 지도를 기반으로 야심 차게 만든 한 코스가 실제 실행해 본 결과 다른 코스와의 시간적, 체력적 차이가 너무 커 조정해야 했던 경우. 사전에 체험 포스트로 염두에 두고 1차 섭외했던 카페가 돌연 폐점을 한 경우 등등 예상했던 실패와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경험했다. 그리고 11월 현재 실행단계에 접어들어 5명 이상의 그룹이 신청을 하면 운영하는 형태의 수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독쟁이RPG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린이들 ⓒ김종현
이제 평가 단계를 앞두고 있다. 애초에 시장을 너무 쉽게 보고 달려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가장 큰 소회다. 상점을 운영하다 그만둔 이유는 주변 상황의 변화라고 결론 내리기엔 상인 각각의 사정이 있었던 것을 간과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우리 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없는 사정. 저렴한 임대료라는 메리트로 삶은연극보다 먼저 들어와 있는 예술가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과의 협업. 시장을 둘러싼 다양한 지원사업과 그 결과에 대한 복기. 기존의 문화거점, 시설과의 긴밀한 연계(이 부분은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 절실히 느낀 부분인데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있는 곳이 많음)에 대한 구체적인 자체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독쟁이RPG”. 원도심을 둘러싼 다양한 연구와 정책 그리고 실행프로그램이 있었다. 문화예술관련 프로그램도 많았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많은 손님과 상인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망했다’라는 말로 어려워진 지금 상황을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기엔 용일시장에는 50여 년의 문화력이 잠재되어 있다. 이번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목적이었다. 내년엔 동네에서 만나는 다양한 장소와 사람을 통해 즐겁게 지역을 알아가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삶은연극은 RPG를 “ROLE_PLAYING GAME”과 함께 “RECREATE POWER GROW-UP”으로 의미 부여했다. 삶은연극은 시장의 문화력을 계속 탐구해 갈 것이다.
김종현(金宗炫. JONGHYUN KIJM)
사회적협동조합 삶은연극 이사장. 인하대학교문화예술교육원 강사. 인천 장수동, 숭의동, 덕적도, 문갑도 등에서 장소기반 창작 및 문화예술교육을 하며 사는 연극인.
316196@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