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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미덕과 위험, 인천아트플랫폼의 오늘

공주형

예술창작공간으로 국내외 예술계의 주목을 받아 온 인천아트플랫폼이 시민과의 관계 확장, 지역과의 연계 심화를 위한 잰걸음을 걷고 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인천아트플랫폼의 이러한 행보는 사업 기조와 방향 변화로 주목할 만하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 중구 개항장 일대를 ‘예촌’(藝村)으로 조성하자는 의견과 ‘미술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지역적 차원의 논의를 거쳐 2009년 예술창작공간으로 개관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의 흔적이 깃든 건물과 창고는 예술창작공간에 맞춤한 창작작업실·게스트하우스·공연장·전시실·공방 등의 시설로 용도를 변경했다. 출범 배경과 건축 설계뿐 아니라 인천광역시가 제정한 ‘인천아트플랫폼 설치 및 운영 관련 조례’1)에서도 이곳은 ‘지역 창작 저변 확대를 위한 예술창작공간’으로 명시된 바 있다.
1) 2009년 2월 인천광역시가 제정한 ‘인천아트플랫폼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는 이곳을 인천광역시의 문화예술 창작 저변 확대를 위해 조성된 예술창작공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의 주요 사업을 1. 입주 작가 선정 및 각종 예술창작지원 2. 시민 예술교육프로그램 운영 및 예술창작·문화활동 지원 3. 국내외 문화예술 교류 및 상호 네트워크 구축 4. 인천아트플랫폼 시설 및 부속 시설물의 운영 5. 그 밖에 인천광역시(이하 “시”라 한다)의 문화예술 창작 저변 확대를 위하여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으로 정하고 있다.

개관 이래 인천아트플랫폼이 예술창작공간이라는 기관 정체성의 틀 안에서 주요 사업을 펼쳐오는 가운데 중앙 정부를 비롯한 인천광역시의 문화예술 정책과 국내외 문화예술 여건은 변화를 거듭했다. 이에 대내외 문화예술 환경 변화에 따른 운영 방향과 사업 전략에 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의 검토는 다각화하는 듯 보였다. 2019년 추진된 ‘인천아트플랫폼 운영 성과 및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도 문화예술 생태계의 변화를 염두에 둔 고심으로 생각된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인천아트플랫폼은 연구를 통해 사업 주요 성과를 분석하고, 몇 가지 개선점도 도출해 냈다. 해당 연구가 제안한 인천아트플랫폼의 향후 과제는 ‘국제교류 프로그램 활성화, 전문 인력 보강, 동시대 문화예술 담론 수집과 공유 기능 강화, 지역의 문화예술적 이슈에 관한 즉각적인 대응’ 이었다.2) 팬데믹 종식 이후 속도를 내기 시작한 인천아트플랫폼의 공간 활용과 사업 방향의 변화는 앞선 연구가 제안한 과제 중 지역 문화예술계의 현안 대응 관련 실천으로 이해된다.
2) 경희대학교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인천아트플랫폼 운영성과 및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 인천문화재단, 2019, pp. 181~182.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은 정기대관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인천시립미술관이 2027년을 목표로 개관 추진 중인 가운데 인천문화예술회관마저 리모델링을 시작하면서 지역 문화예술계는 전시 공간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관내 전시장(舊창고갤러리)과 중앙광장을 발표의 장으로 개방한 것은 지역 창작 여건 안정화에 이바지하고, 시민 문화예술 향유 기회 축소를 예방하기 위한 판단으로 생각된다. 한편 인천아트플랫폼은 과거 소규모 전시 공간을 시민을 위한 프로젝트룸으로 꾸며서 활용하고 있다. 건물·문화예술·입주 예술가 등 인천아트플랫폼의 특성이 담긴 삽화 콘셉트를 활용한 스티커·엽서·스탬프를 비치해 둔 프로젝트룸 <작가의 방>은 이곳이 다장르 예술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예술창작공간임을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과거 인천아트플랫폼의 교육 사업이 주로 예술가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면 <작가의 방>은 참가자가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환경으로 꾸려 체험자가 문화예술 생산의 자율적 주체임을 인지토록 한다. 특히 <작가의 방>은 팬데믹 시기, 인천아트플랫폼의 비대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문화예술 교육 전문가 자문을 거쳐 신설했다는 점에서 과정적 의미도 크다.

작가의 방
작가의 방

<작가의 방> ⓒ인천아트플랫폼

정기대관 사업과 상시 운영 교육프로그램이 인천아트플랫폼 공간의 다각적 활용을 통한 지역 문화예술계와 시민 사와의 접점 만들기 모색이라면 기획 전시 ≪황해어보≫展(2023.9.7~11.12)은 기존 사업의 심화로 이해된다. 조선 실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오마주해 창의적 지역 읽기를 시도한 ≪황해어보≫展은 지역문화 자산과 자원 발굴의 측면에서 한국 이민사 120년 기념전이었던 ≪코리안 디아스포라 한지로 접은 비행기≫展과 인천 연고 예술가·기획자·연구자 소개전이었던 ≪외연과 심연≫展과 기획 취지를 공유한다. 바다를 관조의 대상이 아닌 삶터, 소통 수단, 갈등과 위기 현장, 생명 탄생의 서식지, 지구 환경의 미래로 해석한 ≪황해어보≫展에서 기획 의도와 함께 참여 작가의 다양한 면면도 주목할 만하다. 20여 명의 참여 작가 중 다수는 레지던시, 기획 전시, 교육 사업을 통해 인천아트플랫폼과 꾸준히 인연을 맺어 온 예술가이며, 몇몇은 이번 기획전을 시작으로 지역 의제에 예술적으로 관심을 이어갈 이들이기 때문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이 구축해 온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의 지리적, 산업적, 환경적 이슈에 관한 미학적 상상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황해어보≫展 같은 지역 연계 기획 사업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황해어보

≪황해어보≫展 ⓒ공주형

황해어보

≪황해어보≫展 ⓒmuseum365

 

다층적 공간 활용과 다의적 콘텐츠 발굴 사업을 통해 시민과의 관계 확대, 지역과의 연계 심화를 모색 중인 인천아트플랫폼의 변화는 바람직해 보인다. 다만 변화의 과정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 중심으로 쌓아 온 인천아트플랫폼의 결실을 간과하거나 다른 과제를 외면하는 단순한 접근의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시민 참여 사업과 지역 협력 프로그램은 지난 운영 성과와 향후 과제‘들’의 유기적 고민과 신중한 실천이 전제될 때 전문성과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인천아트플랫폼의 운영 당위성 또한 다양한 층위에서 확인 가능할 것이다. 미래 못지않게 중요한 인천아트플랫폼의 역사가 오늘 당장 폐기해야 할 묵은 영수증 더미일 수 없는 이유는 여기 있다.

공주형 (孔周馨, Gong Juhyung)

예술학을 공부했다.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미술평론)를 통해 등단해 글을 써왔고, 학고재 갤러리에서 10년 넘게 전시를 기획했다. 2009년 인천아트플랫폼에 연구자로 입주하면서 해방기에서 동시대까지 인천 미술의 형성과 전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역문화 활성화와 지역문화 분권의 관점에서 예술창작공간의 역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적 의미를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