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엄마가 수 놓은 일상 속 문화예술

프랑스자수 손현수 작가와의 만남

홍봄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하다’ 기자)

손현수

손현수

2018 한국문화센터연합회 공예(생활자수) 강사 자격증 취득

2018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동아리 ‘행복한 프랑스 자수’ 동아리 서담재 강의 및 전시회

2018 남동구 논현복지관 강의

2018 인천문화재단 동네방네 아지트 서담재 갤러리 ‘프랑스 문화를 만나는 저녁’ 강의

2018 서담재 갤러리 ‘행복한 프랑스 자수 & 퀼트’ 개인 전시회

2022 인천 생활 문화센터 칠동마당 H동 1층 프로젝트룸 개인 전시회

2023~ 원데이 클래스 및 그룹 강의중

엄마는 자신을 숨겼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을 뿐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끄럽다고 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들을 이야기가 있느냐”라며 자신을 낮추고 또 낮췄다. 그런 엄마가 이때만큼은 눈을 빛냈다. 오랜 시간 혼자서 묵묵히 수 놓은 작품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다.

손현수 개인전 ©손현수

손현수 씨는 두 자녀를 둔 엄마이자 프랑스자수 작가다. 20대에 결혼을 하고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평생을 살아왔다. 수십 년 바느질을 해온 그는 지난해 프랑스자수 컬렉션으로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우연히 접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취미로 만들어 온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였다.

바늘을 손에 잡은 계기는 육아였다. 서른하나에 딸을 낳았고, 그 아이가 유모차에 탈 때쯤 동네에서 퀼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아이들을 재운 뒤 날 새는지도 모르고 바느질을 했단다.

손 씨는 “애들을 씻겨서 재워놓고 그때부터 바느질을 했어요.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바늘과 실이 둥둥 떠다니는 듯 보일 정도였죠.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육아하면서 바느질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죠”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바느질을 잘하는 손 씨에게 주위 사람들은 “공방을 차려보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는 사람들의 말을 단순한 인사치레로 생각하고 넘겼다. 퀼트로 시작한 바느질이 프랑스자수로 넘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자수 학원에 다니며 강사 자격증 시험까지 합격했지만 그저 단순한 취미로 생각했다.

손현수 작품

손현수 작품 ©홍봄

수십 년 취미였던 바느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 것은 50대 들어서다. 갱년기를 심하게 앓으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답은 가까이 있었다.

그는 “갱년기를 유독 심하게 겪으면서 아내, 엄마, 며느리 이런 역할을 떠나서 이제 나에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가장 잘하는 일과 행복한 일을 떠올려 보니 바느질이더라고요. 바느질은 지적 능력이 유지만 된다면 병원에 앉아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설명했다.

특히 인생을 돌아보던 시기에 접한 문화예술교육은 그가 남은 인생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인천 중구 서담재에서 열린 프랑스문화 기획 프로그램과 연이 닿으면서 인천문화재단의 다양한 교육에 참여했다. 특히 지난해 진행된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가 첫 개인 전시회 개최까지 이어졌다.

인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는 두 번째 삶을 준비하는 신중년(만50~69세) 세대를 대상으로 한 학습플랫폼이다. 신중년이 전환의 관점에서 삶을 재해석하고 주체적으로 문화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손 씨는 프로그램 수료자에게 지원하는 지원금으로 지난 연말 전시회를 열었다. ‘일상을 수 놓다’라는 제목의 개인 전시회였다.

손현수 개인전

손현수 개인전 ©손현수

그는 “주위에서 워낙 작품이 아깝다고 이야기들 하니까. 환갑쯤에 가족들만 모여 작은 전시회를 해볼까 막연하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꿈이 이뤄진 거죠. 덜컥 전시회를 하겠다고 해놓고도 겁이 났어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장소를 구하는 일부터 전시까지 막막하기만 했거든요. 그때 재단에서 대관도 도와주시고 퍼실리테이터 선생님도 연결해 주셔서 준비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손 씨에게 전시회는 지난 삶을 되돌아볼 기회이자 주도적인 삶을 찾는 큰 계기로 남았다. 그의 딸이 엄마를 위해 만든 전시회 팸플릿에 손 씨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누군가의 앞에 나서서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사는 게 편안하고 익숙한 나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한 것임을 안다. 쑥스럽지만 나의 젊음의 열정과 일상의 추억과 흔적, 발자국을 남길 전시회를 열면서 내 안에 숨겨진 역량을 발취하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경험들은 나의 내면에 근육을 키워 성숙하고 멋진 노년의 삶을 마무리하는 잔잔한 삶을 살도록 지탱해 주는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자존감도 높아졌다. 아내이자 엄마가 집 한 편에서 취미로 만든 작품들이 전시장에 걸리자 가족들이 박수를 보냈다. 주변 사람과 관객들도 오랜 세월 같은 일을 해 온 그의 끈기와 실력을 인정하고 응원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전시회를 열 수 있다는 생각이 바뀌었다. ‘소시민인 내가 이런 전시를 해도 되나?’하고 의심했지만 누구든 할 수 있었다.

손현수 작품 ©홍봄

손 씨는 “여섯 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충분히 못 했던 것이 알게 모르게 제 안의 결핍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녀 때도 늘 책을 가까이했고 지금까지 살면서 성장을 위해 뭔가를 계속해 왔어요. 바느질도 그랬고요. 전시회를 하면서 주변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고 스스로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큰 힘과 용기가 됐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라고 돌아봤다.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우선한다는 그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작품 활동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다고 했다. 노년까지 그저 바느질을 꾸준히 하면서 품위 있고 귀여운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강의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손 씨는 “저는 적극적으로 끌고 가는 성격은 아니지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해요. 제가 가진 것을 소소하게 공유하고 나누는 이런 일들이 행복하더라고요. 누구한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누구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봉사도 하면서 지금처럼 소소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요”라고 바랐다.

홍봄

인터뷰 진행/글 홍봄 (Hong Bom)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하다’ 기자. 인천경기탐사저널리즘센터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