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관성’과 ‘타성’ 그리고 ‘쓸모없는 일’
신운섭
오래 지속하다 보면 ‘관성’이 생기고, 일이 꽤 효율적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관성’이 ‘타성’(매너리즘)이 되어 틀에 박힌 버릇, 생각이 되어 새로움을 꾀하지 않게 되면서 답보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을 깨닫지 못할 때 예술(예술교육)가로서는 치명적이겠죠. 멈출 것이냐? 지속할 것이냐? 지속하려면?
2020년 <청소년작업장> ©신운섭
2022년 <마을극장 ‘봄’ > ©신운섭
2015년 <청소년작업장>을 시작으로 <인천어르신이들려주는이야기>(2017), <노동하는이웃, 소금꽃!>(2017) 그리고 2020년 <마을극장‘봄’>(마을극장’이웃사이’)까지 인천독립영화협회와 함께 작업장‘봄’에서 진행해온 프로젝트입니다. <마을극장‘봄’>은 인천의 어르신과 청소년이 예술활동을 통해 만난 것(2018~19)을 계기로 2020년부터 인천시민영화제 <마을극장’봄’;OO이네 놀러가자!>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다소 길고, 복잡한 이름입니다. ‘영화제’라고 했지만, 시민들의 ‘문화예술잔치’가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OO이네 놀러가자!’는 매년 함께할 이웃의 이름을 명시하는 것으로 함께 잔치를 준비하려 했습니다. 예술활동을 매개로 ‘이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작업장‘봄’ 단체의 자체 발표회지 무슨 인천시민영화제냐!’라고 타박하십니다. 맞습니다. 시작은 시민문화예술교육 씬의 좋은 작품(활동)을 찾아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여력이 없고, 현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벅찹니다. 솔직히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2022년 <노동하는이웃, 소금꽃> ©신운섭
2022년 <인천어르신이야기> ©신운섭
2023년 기획지원사업으로 지역의 단체(개인)들을 만났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을까? 지역사회에 어떤 단체(개인)들이 있는지, 어떤 활동을 해오고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지향하고 있는지, 이상과 현실 속에서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 예술교육활동과 창작활동은 어떤 연결점이 있을지, 지역사회 단체(개인)와 작업장‘봄’ 상호 연대 가능성과 연대의 범위는 얼마큼 할 수 있을지, 어떤 ‘예술교육’ 활동이 필요한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일로 만나왔던 개별 단체(개인)들에 대한 이해와 작업장‘봄’ 작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은 이유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코로나와 지원사업 탈락으로 멈춰버린 <청소년작업장>을 재개할 ‘협력단체’(청소년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줄)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지역사회 단체(개인)과의 만남 덕분에 단체와 활동가, 창작자 등이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단한 회원구조로 정부지원금 없이 운영되는 단체도 있었고, 회원들의 회비와 프로젝트 지원을 통해 부족한 상근활동비를 충원하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체, 개인 활동가들은 ‘최저임금’은 꿈도 꿀 수 없는 조건입니다. 단체라고 하지만 대표 1인 혹은 사무국장 홀로 운영되는 예도 있고, 처음 활동하고자 했던 방향에서 ‘생존’ 자체가 목표가 되어 투잡, 쓰리잡 소위 N잡러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왕성한 활동으로 단단해 보이는 단체(개인)조차도 최저임금 수준의 상근활동비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정체성’을 다잡으려는 활동가의 노력에 탄복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 새로운 사람들로 활동이 이어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청년일자리 지원을 활용해 젊은 상근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지원이 사라지면 그 또한 기약할 수 없게 됩니다. 일할 사람이 없으면 문을 닫을 수도 있지, 꼭 ‘세대교체’를 해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작업장‘봄’은 지난 2년간 <청소년작업장>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지원사업에서 탈락한 이유도 있고, ‘비정규인력구성’과 코로나로 인한 ‘비일상’적인 운영을 헤쳐 나갈 힘이 없기도 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활동’을 통해 ‘함께’라는 가치를 실천해 보려 했습니다. 지역사회 단체(개인)들과 만남을 통해 작업장‘봄’이 ‘함께’ 할 줄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생존’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사회 속에 살다 보니 ‘스펙’으로 내 몸을 무장하는 것에 집중하고, ‘각자도생’이란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됩니다. ‘공공성’ ‘연대’를 실천하려는 단체(개인)들은 더 이상 연명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단체(개인)의 상황을 알아갈수록,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함께’ ‘공동체’ ‘공공성’ ‘우정’과 ‘연대’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경제적 가치에 종속되지 아니하고 쓸모없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 상상하고 실험하며 끊임없는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그런 예술 활동을 하면 좋겠습니다. 모두 그런 예술가가 되면 좋겠습니다.”
– 김규항 선생님 글 인용
단체의 활동을 소개할 때 윗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귀에 박히도록 듣고 자라왔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요? 어떤 ‘쓸모’를 말하는 것일까요? <마을극장‘봄’>은 예술활동을 통해 만난 시민과 예술가들의 잔치입니다. 요즘에는 ‘쓸모’ 대신 ‘스펙’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스펙!’이란 상품의 사양, 품질, 성능) 예술활동에 대한 예산삭감 소식이 들립니다. 여전히 쓸모없는 일에 ‘열정’을 쏟는 예술가들, 활동가들 ‘작고, 단단하게!’ 으라차차!
신운섭 (申雲燮, Shin Woonseop)
영화 <휴가>(이란희 감독) 등 영화 제작과 배우의 일을 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배우/연출/작가들과 함께 <별이 빛나는 밤에 책읽기>를 하고 있다.(이때 머릿속이 제일 맑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청소년작업장>(2015), <인천 어르신이 들려주는 이야기>(2017), <노동하는 이웃, 소금꽃>(2017), <별이 빛나는 밤의 낭만수다>(2023), <마을극장‘봄’>(2020) 등 문화예술교육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