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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돌 맞은 시민창작예술축제 ‘학산마당극놀래’

박수희

지난 9월 둘째 주 토요일, 인천 미추홀구의 배꼽 수봉산 기슭에서 ‘학산마당극놀래’가 열렸다. 미추홀구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학산마당극놀래’는 올해로 10회를 맞이했다. 미추홀구 생활문화예술의 구심점인 ‘학산문화원’은 지역의 마을공동체,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복지관 등과 협업하여 수십 개의 마당예술동아리를 만들고 해마다 축제 마당을 펼쳐왔다. 어린이, 중장년, 노인, 직장인, 장애인, 이주민 등 다양한 이웃들이 모인 마당예술동아리는 매주 모여 마당극을 만들고 무대를 준비한다. ‘마당극’은 우리나라 전통연희와 연극이 결합하여 생겨난 마당놀이로, 무대와 관객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열린 형태의 공연 장르다. ‘학산마당극놀래’는 마당극으로 “하는 이와 보는 이의 경계 없이‘ 하나가 되어 울고 웃으며 신명 나게 즐기는 시민창작예술축제다.

2023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포스터

2023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포스터
©미추홀학산문화원

동아리 회원들과 예술 강사는 봄부터 머리를 맞대고 주제를 정하고 대본을 쓰며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대본을 외우고 동작을 익히며 뜨거운 여름을 나고, 가을에 들어서자마자 숨 가쁘게 막바지 준비를 하면서 축제를 맞이한다. 2014년부터 9년 동안 미추홀구의 이야기를 담은 138개의 창작마당극이 만들어졌고, 무대에 오른 주민은 2천 명, 참여한 관객은 3만 명이 넘는다.

미추홀구 시민창작예술축제 ‘학산마당극놀래’ 1~10회 포스터

미추홀구 시민창작예술축제 ‘학산마당극놀래’ 1~10회 포스터
©미추홀학산문화원

올해 10회 ‘학산마당극놀래’의 주제는 ‘동행 그리고 공감’이다. 주민들과 함께 걸어온 길을 되새기면서 그동안 무대에 올랐던 8편의 작품을 골라 리메이크하고, 2편의 신작을 마련했다. 다양한 동아리들은 춤, 노래, 풍물, 인형극, 난타, 영상을 더해 풍성한 마당을 준비했다.

축제에 앞서 학산문화원은 그동안 축제에 참여했던 동아리 회원들의 추억담을 영상에 담아 SNS에 공개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했던 학익2동 마당예술동아리 ‘개구쟁이 모난돌’의 초등학생 아이는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4년간 지속하던 동아리 활동은 중단됐지만, 회원들은 지금까지도 만남을 이어간다. 주안3동과 숭의2동의 어르신들은 이웃들과 모여 극을 준비하면서 “인생 사는 맛”을 느꼈고 “참 행복했다”며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10년은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성장하고 70대 어르신들이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80대”가 되는 그런 시간이다.

해마다 마당축제를 열어 10회를 맞이하기까지 모든 시간이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다. 2019년 ‘돼지 열병’, 2020년과 2021년 ‘코로나 팬데믹’은 3년 동안 열린 마당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학산문화원 실내와 온라인에 축제 마당을 열고 한해도 거르지 않고 축제를 이어갔다. 지역과 주민이 함께 만드는 축제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2023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축제 현장

2023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축제 현장
©미추홀학산문화원

올해는 수봉공원 인공폭포 앞 특설무대에서 축제가 펼쳐졌다. 유난했던 여름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축제 마당은 이웃을 만나러 온 주민들의 열기로 한껏 뜨거웠다. ‘풍물패 더늠’이 신명난 길놀이로 무대를 열고, 총 10개 동아리 128명의 배우가 깃발을 들고 무대에 올라 퍼레이드를 했다. 축제의 개막 선언과 함께 무대의 막이 올랐다.

어린 ‘마당깨비’들의 앙증맞은 탈춤극 ‘마당을 함께 열다’가 첫 무대를 장식했고, 평균연령 65세의 풍물단 ‘한결’은 코믹하고 신바람 나는 풍물극 ‘신 도깨비들의 난장’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인형을 머리에 쓰고 나온 ‘둥우리’는 인형극 ‘귀신씨나락까먹는 소리’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승기화장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시각장애인 동아리 ‘마냥’이 마련한 노래극 ‘두 개의 항아리’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채롭게 모인 ‘어벤져수봉’이 준비한 입체낭독극 ‘엄마의 의자’에 관객은 눈시울을 붉혔고, 장애와 비장애, 돌봄을 생각하며 가족에 관해 생각했다.

여는 마당 ‘동행, 시민과 열다’

여는 마당 ‘동행, 시민과 열다’
©미추홀학산문화원

햇빛 쨍쨍한 오후에 시작된 축제의 1부가 끝날 무렵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무대 위에 오색 조명이 켜지고, ‘인음청소년오케스트라’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학생연합 ‘자제밴드’의 K팝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2부는 무대를 꽉 채운 인천기계공고 관악부원들의 음악극 ‘슬기로운 관악부 생활’로 활기차게 시작됐다. 이어 ‘아름다운 비행’의 파란 보자기 무대 연출이 돋보였던 ‘비, 그리고 동양장 사거리’는 지금은 변해버린 옛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베트남 이주여성이 모인 ‘클로벌’은 베트남 전래동화 ‘탐캄(Tam Cam)’을 베트남어로 들려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도화동 주민으로 구성된 ‘어수선’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웃음보를 자아낸 판타지극 ‘호모코로나쿠스의 탄생’과 학익1동 ‘학나래두드림’의 스타워즈 패러디 영상으로 근사하게 시작된 난타극 ‘크게 숨쉬기 3’는 생태와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분위기는 점점 더 무르익고 시원한 바람까지 더해져 마당에 모인 주민들은 웃고 울면서 축제의 밤을 즐겼다. 어깨가 들썩들썩하는 풍물과 민요 한마당이 화려하게 이어지고 동아리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시상식을 끝으로 축제의 마당은 막을 내렸다.

2023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출연진 단체사진

2023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출연진 단체사진
©미추홀학산문화원

무대는 푸른 보자기 하나로 홍수 난 마을이 되기도 하고, 베트남으로 순간 이동하기도 하며, 탈이나 간단한 도구로 동물이나 귀신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도깨비 같은 공간이다. 그 안에 우리네 인생의 희노애락이 담긴다. 축제에 참여했던 주민들은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했다가도 그 속에 깃든 내용에 울컥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마당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선보여준 공연자들께 감사드립니다.”라는 후기를 남겼다. 전문가가 모든 것을 기획·연출하고 주민은 단순한 관람객에 머무는 여느 축제와 달리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모두 함께 만드는 ‘학산마당극놀래’는 “지역에 관한 대화를 가져오고, 시민적 자긍심을 높이고, 심리적인 행복을 높여 도시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왔다. 축제에 삶의 진정성을 담고 실천하는 장으로 다져온 미추홀구의 값진 10년의 발걸음이 더 단단해지고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박수희

박수희 (朴秀姬, SuHi Park)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지금은 문화대학원에서 지역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다채롭고 평범한 사람들의 공간과 일상을 시속 4km의 속도로 걷고, 보고, 말하고, 읽고, 쓰고, 노래한다. 특히 오랜 시간과 성실한 손길이 담긴 것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