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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 ‘김찬삼’을 아세요?
영종역사관 특별기획전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김래영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KBS에서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TV 애니메이션을 방영해 준 적이 있다. 쥘 베른의 원작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의인화된 동물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건을 해결하고 모험을 펼치는 내용에 매료되어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빨리 어른이 되어 그들처럼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었다. 밤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노란 불빛만 봐도 가슴 두근거리던 시절이었다. 어느새 훌쩍 커버려 어른이 되고, 클릭 하나만으로 전 세계의 항공권과 호텔을 예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 당장 떠나도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는 「여행의 비결」에서 “목표도 없이 떠도는 것은 젊은 날의 즐거움이다. 젊은 날과 함께 그 즐거움도 나에게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목표나 의지를 의식하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목표만을 좇는 눈은 떠도는 재미를 알지 못하고, 여로마다 기다리고 있는 숲과 강과 갖가지 장관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헤르만 헤세처럼 시간, 직장, 돈이라는 핑곗거리를 끊임없이 만들며, 현실적인 굴레에 갇혀 나의 꿈도 멀어지고 말았다.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특별기획전 포스터
Ⓒ 인천중구문화재단
쉽게 여행이 허락되지 않던 1950년대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지리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 1남 3녀를 둔 가족의 가장,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1958년 한국 최초로 세계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40여 년 동안 20여 차례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160개의 나라를 방문한 세계 여행가, 바로 그가 김찬삼이다. 김찬삼은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인천으로 이주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고등학교에서 지리 과목으로 교편을 잡았다. 그는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과 지리 교사로서 세계 구석구석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세계여행을 준비하였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현지에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느낀 것을 일기, 사진, 영상 등의 기록물로 남겼다. 1983년에는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라는 10권짜리 전집이 출간되어 100만 권이 넘게 판매되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김찬삼의 삶과 여행의 족적이 영종역사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2023.7.27.~12.31.> 특별기획전에 담겨있다. 전시는 1부 <세계를 꿈꾸다>, 2부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 3부 <만인의 스승 김찬삼>의 총 3부로 구성되었으며, ‘김찬삼’과 ‘세계 여행’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여행을 결심하고 준비하기까지의 과정, 세계 일주 경로와 여행 중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 여행을 다녀온 후의 행적 등을 그가 남긴 소지품, 사진, 일기, 저서, 영상 등을 통해 충실하고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부에서는 항구도시 인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여행가의 꿈을 키우던 김찬삼과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준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타지로 여행을 떠나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편지였다. 화려하고 찬란한 그의 여행 연대기에 숨어서 보이지 않았던 가족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연출이었다. 2부는 3회의 세계 일주와 17회의 배낭 여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행 중에 작성한 방대한 양의 기록물을 통해 그가 품었던 여행에 대한 열정과 철학, 경험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던 노력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3부는 세계 여행을 다니며 직접 보고 느낀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힘썼던 그의 행적과 말년의 안식처가 되어준 영종도와의 인연을 보여준다.
1부 세계를 꿈꾸다
Ⓒ 김래영
아버지의 편지
Ⓒ 김래영
2부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
Ⓒ 김래영
김찬삼의 자필 기록
Ⓒ 김래영
영종도는 세계로 떠나는 길목인 인천국제공항이 인근에 있고, 김찬삼이 세계여행문화원을 운영하며 그가 남긴 기록을 보존하고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의 사후인 2013년 11월에 세계여행문화원은 폐관되었고 그 부지에 현재 영종역사관이 들어섰다. 코로나19의 종식과 함께 하늘길이 다시 열린 시점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여행을 떠난 김찬삼을 조명하는 전시가 그가 말년을 보냈던 그 자리, 영종역사관에서 개최된 점은 시기적으로나 장소성으로나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올해는 김찬삼이 작고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세계여행박물관’을 건립하기를 바랐던 그의 마지막 꿈이 영종역사관의 특별전시를 통해 실현된 것은 아닐까.
김찬삼에게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처럼 다양한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 ‘만인의 스승’, ‘세계의 나그네’, ‘동양의 마르코 폴로’, ‘바이크 여행자들의 선구자’ 그를 지칭하는 화려한 수식어들이 그의 인생 여정을 다 대변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전시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편지,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작성한 유서, 그의 소박한 성품을 보여주는 소지품, 세계 곳곳을 그와 함께 누볐을 낡은 신발, 고단한 여로 속에서도 꾸준히 기록했던 일기장에는 빛나는 타이틀에 가려진 김찬삼이라는 한 인간의 고뇌와 번민이 담겨있었다.
“순전히 나의 인생은 여행을 위한 생애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며 미친 듯이 여행만을 꿈꾸다가 마침내 기회를 붙든 것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꿈을 꿨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으며, 결국에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던 그를 오롯이 느껴보길 바란다.
김래영 (金來永, Kim Raeyoung)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인하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인천 짠물에 대한 해명>, <Coffee, 양탕국에서 커피믹스까지>, <구름나무와 친구들>, <안녕하세요, 배다리>, <52년 인천생 곰표>, <큐레이터의 선택> 등 다수의 전시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