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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형’ 시민 축제가 온다

임승관(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며 뜨겁게 견딘 여름이 지나간다. 축제하는 가을이 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많았던 떠들썩한 축제들이 근래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축제들이 그 대신 많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 골목 공터에서, 실내 문화공간에서, 넓은 카페 안이나 마당에서 작지만 즐겁고 개성 있는 조용한 축제들이 예쁜 버섯처럼 여기저기 늘어나고 있다.

이 작은 축제들은 적은 예산이지만 생활문화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서로 알아가고 어느덧 신뢰하게 된 사람들끼리 함께 만든다. 축제를 처음 치르는 경우도 많다. 이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 업무를 반복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일은 좀 다르다.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다. 오랜만에 긴장도 되고 떨리지만, 신나는 경험이다. 그저 서로 믿고 눈빛으로 응원하며 계획한 것들을 챙긴다. 그렇다. 무사히 치르고 나면 함께 이룬 성취감에 이젠 뭐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들고 함께한 사람들은 이제, ‘우리’라고 부른다.

인천생활문화축제 사이

인천생활문화축제 사이:多 ©임승관

이 새로운 축제는 기존 일반적인 대형 축제들과 여러 요인과 요소가 다르다. 기존 축제들은 경험 있는 전문 기획자가 정해진 예산과 목적을 받아서 실행한다. 그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기 위한 전문팀을 투입하여 유행하는 콘텐츠를 가성비 고려해서 배치한다. 그리고 의뢰하며 예산을 준 곳의 만족스러운 평가를 결정하는 관객 유치를 위해 충분한 홍보와 경품에도 많은 예산을 사용한다.

축제는 하는 이유가 다르면 내용과 과정도 달라진다. 우린 지난 코로나 시기 익숙한 일상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다가 결국 멈춰버린 경험을 했다. 처음으로 나를 낯설게 느끼기도 하고 주변 관계와 이웃들도 새삼 소중하다는 생각도 드는 2년이었다. 그동안 아직 없는 그것을 가지려 했던 노력과 욕구는 이미 있던 것들에 대해 애정과 소중함을 발견하면서 좀 희미해졌다. 주민들에 의한 작은 축제들은 이런 경험을 품어 펼친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규모나 권위, 명성, 경쟁적 차별화나 유행을 기준으로 인정받는 축제와 다르다. 작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의미를 함께 만들고 즐기는 이런 자발적인 축제는 ‘생활문화’ 정책과 함께 유용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인천생활문화축제 사이
인천생활문화축제 사이

인천생활문화축제 사이:多 ©임승관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폭넓은 예술 활동인 ‘생활문화’는 벌써 10년의 숙성 기간을 넘겨 향기 좋은 주류 문화로 인정받고 있다. 생활문화는 낯선 이웃들과 같은 취향만으로 만나 기능을 배우고 익히면서 서로 익숙해지는 환경을 지원했다. 씨뿌리지 않아도 습도와 온도, 양분만 맞으면 여기저기 드러나는 버섯처럼, 그렇게 자라는 친밀한 유대감은 이젠 혼자가 아니라는 소속감을 준다. 이 느낌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을 이기는 데 효과가 있다. 이렇게 서로 응원하고 지지받으며 느끼는 안정감은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이렇게 지역 여기저기에서 그 어렵고 부럽다는 ‘사회적 자본’은 아래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처음 생활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대략 2~3년 즐거운 추억과 경험이 쌓이면 혼자는 할 수 없는, 그러나 누가 도와주면 못 할 것도 없는 희망을 공동의 목표로 삼아 즐겁게 논의할 수 있게 된다. 연습한 기능 발표를 공개하는 행사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 행사 등을 축제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자발적인 시민 축제는 무엇보다 왜? 하는지 그 의미가 중요하다. 예산이나 과업이 아니라 그런 의미가 축제를 수행하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 외국인 포용, 텃밭 숲 재활용으로 기후 위기 대응, 노인 돌봄과 음식 나눔 등의 사회적 가치를 숙련한 기능 발표와 함께 구성하여 축제를 기획하는 이유다. 하고 싶은 것 중 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하고 해야 하는 의미에 담아 축제를 펼치는 것이다.

자발적인 시민 축제는 예산을 준 곳보다는 함께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과의 만족이 중요하다. 보이는 결과에 대한 평가보다 과정에서 참여자들과 교감한 마음으로 성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참여한 모든 사람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으로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할 때 보람을 느낀다. 이런 집단적인 성취감과 성공에 대한 공통의 기억은 참여자들에게 ‘이제 이 세상과 맞설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일으킨다. 이런 축제들은 그 속성에 맞게 기획설계와 추진 과정도 다르다. 축제 기획과 실행, 평가를 모든 참여자를 포함하여 관객들도 처음부터 개입시킨다. ‘참여’를 적극적이고 주체적 관여로 종합적인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개입방식이라고 하고, ‘참가’를 약속이나 계약을 근거로 그 부분에만 책임감을 느끼고 수행하는 개입방식이라고 할 때 이 자발적인 시민 축제는 ‘참여형’ 축제로 부른다.

인천생활문화축제 사이

인천생활문화축제 사이:多 ©임승관

2014년 생활문화 지원정책 실행과 마을 만들기가 유행하면서 시민에 의한 마을 축제는 전국에서 많은 실험과 시도를 거쳤다.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기존 축제와 다른, 나름의 의미를 형식에 담아 ‘참여형’ 축제 흐름을 다듬어 왔다. 이 새로운 축제 방식은 규모가 작지 않아도 효과가 있다. 올해 7회를 맞이하는 인천 생활문화축제는 2017년 광역단체에서는 처음으로 [사이:多]라는 이름으로 시도한 첫 ‘참여형’ 축제다. 참여하는 모든 동아리가 축제 4~5개월 전부터 모여 축제 의미와 장소, 예산 사용과 운영 방식을 함께 논의했다. 무대나 전시 배치 순서도 모두 참여해 합의하고 부족한 것은 내년에 보완하여 적용했다. 작년 화성시에서도 어린이 축제를 ‘참여형’으로 처음 시도했다. 도시에 초·중·고등학생들이 5개월 전부터 여러 차례 모여 주제와 방향, 원하는 부스 내용과 꾸미기 아이디어를 놓고 자신들을 위한 축제를 즐겁게 논의하며 준비했다. 축제일에는 학부모들과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전날부터 스태프(staff)로 뛰어다니며 결국 ‘우리’ 축제로 만들었다.

시민 축제는 시민을 ‘참가’시킬 것인지 ‘참여’시킬 것인지에 따라 의미와 효과가 아주 다르다. 크고 작은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승리를 향한 경쟁에 지친, 시기와 혐오로 우울한 시대 시민들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쓸모 있는 축제를 다시 만들고 있다.

임승관

글/사진 임승관 (林承寬, SoungKwan Lim)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인천에서 20년 동안 생활문화 활동가로 지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생활예술과 지역 공동체 문화 강의를 하고 다른 지역을 다니며 컨설팅과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