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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보다 뜨거웠던 청춘의 해방구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리뷰

김성환 (음악 저널리스트)

2006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020년, 2021년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중계 무관중 공연을 포함해)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여름 야외 대중음악 페스티벌로서 꾸준히 한 길을 이어왔다. 인천광역시의 지원 속에서 ‘인천 펜타포트 음악 축제’의 일환으로서 인천광역시를 대표하는 문화 행사로 자리를 잡았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어도 한 번도 결행되는 일 없이 올해로 18번째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지자체의 범위를 넘어 대한민국 음악 페스티벌 역사에도 큰 의미를 지니는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펜타포트의 명성은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잘 알려졌으며, 해외 페스티벌 관련 매체에서도 우수한 페스티벌로 평가받아 왔다.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김성환

인천 지역에서의 락 페스티벌의 역사는 1999년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Triport Rock Festival)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당대의 해외 유명 락밴드들이 포함된 한국 최초의 국제 규모의 록 페스티벌이 송도유원지 근방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많은 음악팬이 인천으로 몰려왔지만, 공연 시점에 관측 사상 유례없는 집중 폭우 탓에 수해 경보가 내려졌다. 결국 첫날 공연은 ‘수중 공연’이라는 힘든 상황 속에 간신히 치러졌고, 관객들의 안전 때문에 다음날 공연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렇게 대형 록 페스티벌의 꿈은 몇 년을 더 미뤄져야 했다.

그 후 2006년부터 인천광역시의 지원 속에서 국제적 락 페스티벌의 꿈은 ‘펜타포트’라는 이름을 달고 새롭게 출발했다. 아직 한국 팬들에게는 낯설었던 일본, 대만의 록 밴드들이나 영-미, 유럽의 신진 인디 록 밴드들까지 빠르게 국내에 소개할 기회로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국내 음악 페스티벌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서구 드림파크에서의 시간을 거쳐, 2013년부터는 다시 송도(연수구)로 돌아와 송도 신도시 지역에 새롭게 마련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지금까지 펜타포트는 그 역사를 이어왔다. 이곳에선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상설 대형 무대를 건설하고 지하철과의 접근성, 그리고 방수 대비 시설 구축 등을 통해 최적의 페스티벌 진행 공간을 확보하며 지금까지 페스티벌 매니아들과 음악 매니아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행사를 계속 이어왔다.

작년에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하면서 팬데믹 기간에 쌓였던 음악 페스티벌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었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2023년은 작년보다, 아니, 이 페스티벌의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인 관객들의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 그간 이 페스티벌의 오랜 벗(?)이었던 ‘비’가 단 한 방울도 안 내리고 오히려 폭염이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 예보대로, 한낮에는 살이 익는다고 느껴질 만큼의 강렬한 햇살과 35도 이상의 고온과 습기가 페스티벌 현장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열정을 다해 연주하는 음악가들, 그리고 그 앞에서 열심히 젊음을 발산하는 소위 ‘MZ세대’ 관객들에게는 그런 상황이 음악을 즐기고 페스티벌을 즐기는 데 있어 그리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주최 측에서도 첫날 상황을 보면서 원래 구축한 5곳의 ‘쿨링존’ 외에도 10대의 ‘의료 쿨링 버스’를 동원해 페스티벌 장내 곳곳에 배치했다. 공연 경비를 서는 진행요원들도 혹시나 폭염 속에서 쓰러지는 관객들이 나올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김성환

개인적으로 더욱 놀라웠던 것은 작년보다도 관객들의 수가 더 늘어났고, 그 관객들이 낮에 무대에 서는 신진 밴드들의 음악에 맞춰 더 열심히 자신들의 열정을 발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페스티벌에 거의 빠짐없이 관람과 취재로 참여해 온 내 기억에 근거할 때, 오후 3~4시의 공연에서부터 메인 스테이지의 스탠딩 구역이 양쪽 가장자리까지 관객이 꽉 채워진 모습을 본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주최 측은 3일간 (경찰 추산) 총 15만의 인원이 펜타포트를 다녀갔다고 전했다.) 이렇게 엄청난 인원이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불미스러운 사고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아까 말했듯 폭염과 장내의 많은 인원 속에서도 관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질서를 잘 지키면서 자신들의 열정을 발산하고 음악을 즐기며 아티스트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주었다. 행사 운영 시스템도 관객의 편의를 꽤 열심히 제공하려 노력했다. 개막 전에는 불만이 많았던 푸드코트 내 사용할 음식 예약 앱 덕분에 음식 주문에 긴 줄을 설 필요가 없었고, 화장실도 다른 때보다 훨씬 더 깨끗했다.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김성환

한편, 전체적인 페스티벌 속 공연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고,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행사가 진행되기 전, 개인적으로는 올해 라인업을 생각 이상으로 잘 짰다고 생각했다. 비록 해외 아티스트들의 수는 많지 않았더라도 ‘락 페스티벌’에 맞는 아티스트들을 신인급들부터 중견, 고참들까지 다양하게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역시 현장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젊은 락 매니아들이 현장에서 음악과 함께 ‘뛰어놀기에’ 좋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게다가 강한 록 계열이 아닌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대체로 최근 유행하는 ‘시티 팝 리바이벌’이나 라운지, 훵키 소울, 퓨전 계열의 음악을 들려주는 팀들이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뛰어놀다 지친 심신을 달래주며 계속 그루브를 유지하며 행사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펜타포트를 보면서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느낀 부분은 이 페스티벌을 즐기는 세대가 드디어 ‘교체되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가급적 많이 보기 위해서 락 페스티벌 티켓을 예매했다면, 현재의 청춘들은 바로 이 ‘페스티벌의 분위기’ 그 자체를 확실히 즐기기 위해 이곳을 택한 것이다. 공연을 즐기는 그 문화의 형식은 선배들의 모습에서 배워왔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평소의 사회 속에서의 압박,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껏 청춘의 해방구로서 이 페스티벌을 자신들의 ‘여름 필수 코스’로 넣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대낮부터 그 고온의 열기 속에서도 열심히 깃발을 흔들고, 현장에서 만난 청춘들과 몸을 부딪치고, 맘껏 환호하고, 춤추고, 무대 위 뮤지션의 열정과 나를 일치시키며 음악을 즐겼다. 그리고 대낮부터 그 열정을 보여주는 많은 청춘들에게서 무대 위의 밴드와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다시 음악을 계속 이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김성환

3일간의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한국 록의 전설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은 그의 밴드와 함께 선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록 페스티벌은 청춘 시절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다는 건 젊은 날의 추억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에 찍는 청춘 인증의 소인이며 헌사입니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며, 이웃에게 전하는 사랑입니다. 청춘과 청춘이 어우러지고 세대와 세대, 이웃 나라와 더 먼 나라의 젊은이들이 하나가 되는 우정의 장입니다. 펜타포트 무대에 서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아티스트들에겐 꼭 서고 싶은 ‘꿈의 무대’로서, 음악과 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언제나 여름의 추억 한 페이지로 예약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페스티벌이 확실히 인천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페스티벌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고 말하는 근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성환

김성환 (金成煥, Kim Sung Hwan)
2000년 월간 음악매거진 GMV에 원고 기고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각종 음악 관련 매체 및 음반 해설지 작성 등의 활동을 해온 음악 저널리스트.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대중음악 매거진 [Paranoid] 부속 잡지 [Locomotion] 총괄에디터, 웹진 음악취향Y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