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그 시절 인천의 활기찼던 골목의 현재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 전시

곽은비 (로컬 아키에이터)

전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준의 국제공항이 있고, 고층 빌딩으로 번화한 송도신도시로 인해 잊어버린 인천의 풍경이 있다. 1호선 끝 쪽, 용산 급행의 시작점이 있는 동인천역에서 내리면 잊혀진 옛 사진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북광장에서 화평동 냉면거리를 지나 들어오면 보이는 동네. 오래된 목욕탕 굴뚝과 여인숙, 가을이 되면 골목마다 고추 말리기에 누구보다 진심인 동네, 그곳이 바로 ‘화수‧화평동’이다.

화수‧화평동은 개항 후 부두에서 등짐을 나르던 노동자가 모여 살며 만들어졌다. 이후 바다를 매립하여 세워진 공장과 그들의 살림집으로 채워졌고, 사람들이 모여들며 시장과 옛 극장 등 공업지대 옆 동네로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며 자리 잡았던 곳이다.
화수동 초입을 알리는 송현초등학교 옆 오래된 세계목욕탕 굴뚝을 바라보면 그 앞으로 펼쳐진 골목길과 풍경이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번화했던 공장의 쇠퇴와 함께 화수‧화평동의 거리는 비어가기 시작했고, 현재는 재개발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곽은비

오래된 도심의 당연한 결과처럼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질 풍경들. 이를 인천시립박물관은 동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과 공동으로 함께 기획하여 특별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18일부터 10월 15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는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이 그 주인공이다.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곽은비

기획전시실에 들어서면 화수‧화평동의 거리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첫 번째 ‘무네미에서 벌말까지’는 화수‧화평동의 옛 지명을 통해 생성된 마을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특히 필자에게 인상 깊었던 부분은 ‘화수‧화평’에 ‘꽃 화(化)’가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수십 번 마을을 지나쳤을 때도 이름의 한문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전시를 통해 ‘곶’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던 ‘곶말’, ‘고잔리’를 거쳐 부르기 쉽게 ‘꽃마을’이 되어 꽃(化)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유래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곽은비

이어서 2부는 ‘공장이 들어서다’로, 해안가 매립지로 공장들이 들어서며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던 ‘화수‧화평동’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이 모여 살던 동구 일대의 각종 혐오시설과, 그 뒤를 이어 건설된 경공업 위주의 공장들. 인천의 굵직한 산업이었던 대형 공장들을 통해 공업도시로서의 동구 ‘화수‧화평동’ 일대를 볼 수 있다. 동양방적, 인천공착장, 한국유리 등 이제는 이름만으로 추억이 되어버린 공장들을 유물과 이야기로 한 자리에서 만난다.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곽은비

3부는 ‘노동자 수평씨의 하루’이다. 노동자의 마을이었던 화수‧화평동을 그들의 일기로 풀었다. 노동자의 월급날 장을 봤던 가게들과 외식을 했던 화평동 냉면집, 인천극장의 흔적까지 화수‧화평동의 풍경을 꼭 닮은 거리를 재현했다.
마지막 4부는 ‘화수‧화평동의 오늘’이다. 인천의 오래된 도시들이 재개발로 사라지는 요즘, 화수동의 오늘은 어떤지, 미래는 어떨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으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곽은비

이번 전시는 화수‧화평동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전시장 내부 풍경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을 닮기도 했으며, 거리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신진여인숙, 제일기름집 간판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향수와 풍경을 이제는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함께 느껴졌다. 이번 화수‧화평동 전시 또한 재개발로 사라질 동네의 풍경들을 담고 있다. 인천 여러 지역에서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오래된 동네들의 현주소를 이번 전시에서 화수‧화평동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화수동을 걷다 보면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제일기름집을 거쳐 화도고개 옆쪽까지 골목 사이로 굵직한 길이 보인다. 지금은 주민들만 지나는 길이지만, 과거에는 이 길목이 꽉 차서 사람이 다니기 힘들 정도로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제일기름집에서는 근처 애관, 오성, 미림극장의 영화 포스터를 간판 벽면에 홍보를 위해 부착했었다. 이는 전시에서도 사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전시 ⓒ곽은비

번화했던 거리가 한산해지고,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는 노후화와 함께 재개발이 찾아온다.
이제는 사라질 풍경과 내용들을 이번 <피고, 지고, 그리고… 화수‧화평동>에서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곽은비

곽은비 (郭,은비 Eunbee Kwak)

인천 스펙타클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동네 기록가 ‘학익동지킴이’. 나고자란 ‘미추홀구 학익동’을 위주로 인천의 사라져가는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Pos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