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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통만화연구실, 『계간 문화다양성 추천만화 Vol.1 성소수자_LGBTQIA+』를 읽고

왕지윤 (인천보건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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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연구자, 평론가, 칼럼니스트, 만화인들의 모임 ‘홈통만화연구실’이 기획하는 《계간 문화다양성 추천만화》가 2023년 6월 14일 자로 첫 온라인 책자를 냈다. 1)서울시 금천구 독산로에 위치한 ‘홈통’은, 2020년 12월 31일 문화기획자인 김성진 사람잇 대표와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의 송하원 대표가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독산로 보행환경개선사업 임대 4호점으로 만화도서관이자 북카페, 주민들의 마을 사랑방으로 역할을 도모한 이곳은 “만화에서 칸과 칸 사이의 빈 공간”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홈통처럼 사람, 마을, 문화를 잇는 휴식과 매개의 공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과 몸이 잔뜩 움츠러든 시기에 진행된 다양한 시도가 지속되어, 만화가 활용될 수 있는 역할과 방법을 모색한 ‘문화 다양성 추천 만화’ 큐레이션 프로젝트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작업에 참여한 분들의 진정성이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1) 홈통만화연구실 블로그, 《계간 문화다양성 추천만화 Vol.1 성소수자_LGBTQIA+》 공개 (2023.06.14)

“영상은 경험하게 하지만, 문학은 이해하게 한다.” 영상 시대의 문학의 쓸모를 주제로 진행된 강연회에서 기억에 남은 말이다. 자신은 영화로 경험하고 문학으로 이해한다는 강사는 ‘인간의 내면을 재현하는 최고의 매체는 언어’라는 관점에서 문학의 고유성을, 인생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장의 힘에서 찾았다. 영화와 만화를 동일한 선상에서 치환할 수 없겠지만, 시각적인 재현과 문학이 지닌 언어적 속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만화 매체의 복합적 특성은, 정서적인 감동과 인지적인 깨달음을 동시에 안겨준다. 한때 문해력이 떨어진 어린이들의 소비적 독서로 지탄받기도 했던 만화는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매혹적인 미디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홈통만화연구실 모임에서 첫 번째로 선정한 테마인 ‘성소수자(LGBTQIA+)’는 진입장벽이 있는 주제지만, 만화의 매체적 특성을 활용해 함께 사는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공공성을 회복한, 의미 있고 희귀한 시도로 여겨진다.

복합문화공간 홈통

복합문화공강 홈통. 판매용과 열람용으로 구분되어 전시되어 있다. ⓒ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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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면서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담을 수 있도록”한다는 세부 선정기준은, 독자들이 다양한 층위의 목소리를 경험하며 작품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흥미롭게 경청하게 만든다. 본인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는 논바이너리의 자아탐색과정을 담은 『젠더 퀴어』의 마이아, 레즈비언 동성부부의 일상과 가족구성권에 대한 질문을 던진 『레생보』의 파랑과 까망, 클로짓 게이였던 아버지의 죽음과, 딸이 레즈비언임을 인정하기 힘들어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독특하고 심오한 문학적 인용으로 묘사한 『펀홈』, 『당신 엄마 맞아?』의 앨리슨 벡델. 각각의 작품들이 가진 메시지의 개별성과 더불어 ‘논바이너리-트랜스젠더-(모라토리엄)-레즈비언-게이’의 성별 정체성, ‘한국-미국-일본-스웨덴-프랑스’의 지역성, ‘자아-친구-가족-연인-부부’의 관계성 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돋보인다.

젠더퀴어 표지

ⓒ 2023. 마이아 코베이브 지음, 이현 옮김, 학이시습
(출처: 계간 문화다양성 추천만화)

ⓒ 2017. 앨리슨 벡델 지음, 이현 옮김, 도서출판 움직씨
(출처: 인터넷서점 알라딘)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자기 규정은 생애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고민이지만, 특히 청소년기에 두드러진다. 특히 성소수자는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규정할 지시대명사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탐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는 글에 이어지는 ‘성소수자 관련 용어’는 건조하지만 눈여겨볼 만하다. 이분법적 지정 성별에 바탕을 둔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기준선을 제시하며 외연을 확장해 온 용어의 역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큐라토의 책 제목인 ‘플래이머(flamer)’는 본래 불길, 불꽃을 뜻하지만 속어로는 얼뜨기, 남색이라는 혐오적인 호칭을 뜻한다. 동일한 단어가 상반된 맥락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건 씁쓸한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그러나 고통의 목소리가 가득한 괴로운 책 읽기에도 불구하고 선정된 목록들의 결말은 자신의 존재와 선택을 긍정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이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도서관 큐레이션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서가를 마련해주는 일과 같다. 주인공들이 자아를 탐색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은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이된다. 현실을 닮은 가해자들의 시선으로 인해 혼란과 좌절을 겪는다는 건 고통스럽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에서, 다정한 목소리를 가진 주변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프로젝트 후기에서 서은영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젠더 퀴어』의 마이아 코베이브가 지역도서관에서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다수의 책을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은 인상적이고 고무적이다.

ⓒ2023. 김성진 문종필 서은영 서찬휘 송하원 최기현 지음.
계간 문화다양성 추천만화 Vol. 1 성소수자 LGBTQAIA+. 홈통만화연구실
(출처: 홈통만화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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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 당신들이 말하는 모든 것일 테고,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어떤 이름이든 자유롭게 붙여도 좋다. 당신들이 내가 무엇이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 다음 순간, 나는 더 이상 그것이 아닐 테니까.” 2)

때론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도 다수 보인다. 『우리 아들은 아마도 게이』에서 아들 히로키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들킨 순간마다 시치미 떼고 지켜보는 엄마 토모코의 지속적인 격려나, 『어제 뭐 먹었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요리를 함께 먹는 게이 커플의 동거, 『햇살을 타고』에서 성 정체성 고민이 탈색된 캐릭터의 등장은 성소수자들의 일상을 평범하게 묘사하며, 상쾌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무지개 독서클럽>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홈통’의 인스타그램을 접했다. 이번에 소개한 스물한 편의 작품 중 네 편을 선정하여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출판 만화를 발굴하고 소개하기 위해 온라인 배포를 통해 접근성을 높인 점, 자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을 갖게 될 청소년들이나 자아 탐색을 치열하게 겪어 온 이들의 서사가 담겨 있다는 점, 함께 읽을 만한 인문 서적이나 문학 작품으로의 가교 역할을 해준다는 점 등 볼수록 매력적인 선정 목록이 후속 작업에 대한 기대감도 높여준다.
오랫동안 성 정체성의 혼란을 질병으로 인식하며 사회적 젠더 규범을 강요해 온 사회 속에서, 일반 사람들은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커버링을 한다. 3)
차별과 혐오가 공공연하게 표명되는 사회는 생산적이며 발전적인 토론으로 표면화되지 못한다. 홈통만화연구실이 제시한 프로젝트는 실천적 운동으로써의 모범 사례이자 단초가 되어 줄 것이다.
2) 이반지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문학동네, 2021), 19쪽
3) 켄지 요시노, 《커버링》 (민음사, 2017), 9쪽

왕지윤

왕지윤 (王知允 Wang Ji-Yun)

인천보건고등학교 국어교사
학교도서관저널 추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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