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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푸근한, 배다리의 멕시코 백반집
‘마리 데 키친’에 다녀와서
강수연 (로컬 매거진 『스펙타클』 에디터)
지난 5월,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와 애관극장에서 <제1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열렸다. 수많은 사람과 문화가 밀물처럼 유입됨과 동시에 썰물처럼 전파되었던 시작의 장소이자, 120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자들을 태운 배가 닻을 올린 곳. 디아스포라의 도시라 자부할 수 있는 이곳에선 따사롭다 못해 이른 열기와 함께 활기가 가득했다.
행사를 즐기다 허기가 지기 시작할 무렵, 생각보다 많은 문화권의 식당이 인천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고려인들과 중앙아시아 출신의 외국인이 모인 함박마을의 러시아 식당, 부평 일대의 미얀마 음식점 거리,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포동의 할랄 음식 전문점까지. 낯선 한국 땅에 정착한 이들이 모인 곳에는 다양한 언어와 함께 식문화가 뿌리내렸다. 그중 배다리의 헌책방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낮은 건물의 2층이 오늘의 목적지. 바로 멕시코 출신의 셰프 마리가 운영하는 ‘마리 데 키친’이다.
올라! 마리의 부엌으로 놀러 오세요
사람과 공간이 주는 첫인상을 오래도록 믿는다. 특히 공간은 그곳을 채우는 색감, 채광, 온도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첫인상이 결정되는데, 그중 외관과 다르게 ‘뜨헉’ 할 만큼 반전된 내부 공간은 감각을 초월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코코>를 본 사람이라면 마리 데 키친의 문턱을 밟기도 전에 이렇게 외칠 것이다. “와! 완전 코코 같아!”. 물론 코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이렇게 감탄할지도 모른다. “오! 완전 멕시코에 온 것 같네!”
가게에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가랜드가 반긴다. 멕시코 대표 명절인 ‘죽은 자들의 날’에 멕시코 사람들은 색종이를 잘라 ‘파펠 피카도(papel picado)’를 만든다. 한국과 사후 세계관이 다른 이곳에서는 죽은 자들의 날을 축제처럼 준비하는데, 준비하는 이승의 이도 찾아오는 저승의 이도 즐거운 진정한 ‘환대의 나라’가 아닐까? 흘러나오는 라틴 음악을 느끼며 자리에 앉자, 주방장 마리가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
마리 데 키친 내부 / ⓒ인천 스펙타클(@incheon_spectacle)
낯설지만 푸근한,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마리 데 키친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타코나 케사디야 외에도 다양한 현지 음식을 판매한다. 메뉴판에는 멕시코 가정식이 생소할 손님을 위해 사진까지 달아두었는데, 천천히 상상하며 음식을 고를 수 있다. 고민 끝에 고른 메뉴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칵테일 새우, 토마토와 양상추 등 다양한 재료를 토르티야에 올려 먹는 ‘플라토 수르티도(Plato surtido)’와 멕시코의 대표 해장술 ‘미첼라다(Michelada)’. 유쾌한 기다림 끝에 메뉴가 나오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메뉴판의 사진보다 푸짐한 양에 또 한 번 반전을 느끼며 음식을 맛보았다. 몇 해 전 남미 여행을 다녀온 일행이 말했다. “현지에서 먹었던 그 맛이야.” 멕시코에 다녀온 적이 없지만, 조금은 알 법 싶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먹었던 미국식 멕시코 음식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니 말이다.
다양한 재료를 토르티야에 올려 먹는 플라토 수르티도
ⓒ인천 스펙타클(@incheon_spectacle)
멕시코의 해장술인 미첼라다
ⓒ인천 스펙타클(@incheon_spectacle)
함께 주문한 미첼라다 역시 새롭다. 맥주에 ‘클라마토’라는 토마토 칵테일과 고춧가루, 핫소스 등을 섞은 미첼라다는 멕시코 본토에서 종류만 수백 가지가 넘는 해장술이다. 마리 데 키친에서는 칵테일 새우가 올라간 버전의 미첼라다를 판매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맛에 첫입을 망설이지만, 뒤이어 올라오는 특유의 개운함과 매콤함에 입술이 먼저 마중을 나가게 된다. 매콤한 그린 살사까지 곁들이며 식사하다 보면 비로소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까마득해진다. 역시 감각을 초월하는 공간이구나!
인천 속 작은 세계
“멕시코의 백반집은 이런 느낌일까?”
마리 데 키친은 낯설지만 푸근한 매력이 있다. 이러한 매력은 셰프 마리와 직원들이 일구어 온 시간 속에 있을 터. 그들은 세계 각지의 다문화 강사와 사회복지사들이 모인 ‘협동조합 글로벌에듀’에서 공동체를 이루었고,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조합은 다문화 체험 행사와 강의를 통해 결혼이주여성의 자립을 지원했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타를 맞으며 위기에 처했다.
그러던 2021년, 인천 동구에서 지원하는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건물의 2, 3층과 옥상을 임대해 세 곳의 가게를 열었다. 조합원들이 직접 일군 건물의 2층에는‘마리 데 키친’이, 3층에는 ‘카페 인 모자이크’가, 옥상에는 베트남, 태국, 일본 전시관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소품을 전시하는 ‘세별스토리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다. 도로명 주소는 동구 금곡로 8-1로지만, 말 그대로 ‘인천 속 작은 세계’인 것이다.
“Hasta luego! (또 만나요)”
부엌의 마리를 만난 후 문을 나선다. 그리고 3층으로 난 계단을 오르며 외친다. “자, 다음 여행지로 가볼까?”
‘세별스토리하우스’에는 세계 각국의 소품이 전시되어 있다. / ⓒ인천 스펙타클(@incheon_spectacle)
<영업 정보>
• 주소: 인천 동구 금곡로 8-1 2층 (동인천역 1번 출구에서 670m)
• 영업일: 매일 11:30~20:30, 금·토 11:30~21:00 (브레이크 타임 15:00~16:30 / 매주 월 휴무)
강수연 (姜秀蓮, Kang Soo Yeon)
공간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점심 메뉴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영양소를 골고루 갖춰 식사하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하지만, 종종 잊고는 한다. 인천 로컬 매거진 『스펙타클』의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 ksu040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