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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화다양성 보호·증진에 관한 법률, 하루빨리 제정해야
박봉수 (디아스포라연구소 소장)
오늘날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문화’와 ‘문화다양성’에 관한 담론은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확대됨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총체적 생활양식으로 한 사회에서 개인별, 집단별 고유한 정체성의 바탕이 된다. 문화는 구성원들 공통의 사고방식과 공통의 생활양식을 갖게 되고, 이러한 생활양식은 생물학적 특성과 지역 및 자연환경에 따라 생성되고, 변형되며, 계승되는 특성이 있다. 문화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문화만을 강조하게 되면 문화 충돌이 발생하고, 이러한 문화충돌은 구성원 간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 사회 또는 국가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는 구성원들과 집단들의 심각한 갈등과 대립은 그 사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는 지역적 특수성과 상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종종 문화 간 심각한 갈등과 충돌을 경험한다. 이러한 갈등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한 개인과 사회가 만나서 교류하고, 차이를 어떻게 존중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 7월 9일 연수구 연수1동 함박마을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마리 어린이 공원에서 인천시장 유정복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고려인 문화주권 선언문’을 선포하고 동판 제막식을 개최했다. 인천 고려인 문화주권 선언문은 ‘이주의 관문 도시 인천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의 도시다. 독립운동과 국권 회복을 바라며 두만강을 건넜던 고려인은 이제 어머니 나라 인천에 깃들었다. 우리는 소중하고 명예로운 역사 인식을 보존하고, 상호존중과 이해로 평화와 화합의 문화를 만든다’고 명시되어 있다.
인천 고려인 문화주권 선언문 동판
이와 같은 배경은 재외동포청 인천 유치와 무관하지 않다. 재외동포청 인천 유치를 위해 인천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공이 컸다는 인천시의 판단이고, 이에 시는 인천 지역의 고려인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소외된 다문화가족, 외국인들을 위한 생활문화와 예술교육 사업 등 문화예술 지원 시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함박마을에 거주하는 이주민 중 다수가 구소련연합국에서 온 고려인 동포들로 면적대비 전국 최대 고려인 밀집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마리공원에 설치한 ‘고려인 문화주권’ 동판이 고려인이 아닌 타민족에게 어떻게 인식될지 염려된다. 실제로 연수구 함박마을은 전체 주민 1만 2천 명 중 약 8천 명이 이주민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 베트남, 파키스탄, 필리핀, 몽골, 예맨 등 약 15개 나라의 다양한 인종·민족들이 초국적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박마을은 마치 외국에 온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각양각색 다채롭다. 함박마을은 유라시아를 품은 문화다양성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크고 작은 식품점과 트럭에 채소를 싣고 다니면서 파는 노점상에서부터 300석 규모의 예식홀을 갖춘 대형 레스토랑까지 있어 한국어가 서툰 이주민들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특히 모든 정보를 자국의 상점가 등 인프라와 함께 네트워킹을 통한 정보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이들의 한국 사회 정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메카가 되었다.
그러나 이주민들의 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함박마을의 선주민과의 마찰과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언어 소통의 부재에서부터 문화차이에서 오는 갈등뿐만 아니라, 쓰레기 분리 배출 문제, 주차 문제, 한국 사회 기초 법질서 문제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산적해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인 상인과 이주민 상인 간 갈등, 이주민 상인 간 과열한 경쟁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지자체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갈등을 일시적 지원정책으로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상인은 오히려 국내 거주 지역민들에 대한 역차별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주민 상인이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이주민은 자국의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식품점, 노래방, 미용실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가는 죽어가고 있다고 지자체에 손해배상으로 요구하고 있다. 또한 같은 업종을 운영하는 이주민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할 뿐만 아니라 맞고발하는 사태가 벌어져 아찔한 상황까지 다다랐다. 일시적 지원 정책으로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되는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하고, 한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들로서 서로 존중하면서 지낼 수 있는 지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련 제도와 지원정책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의 실제적 삶의 소통과 직결되어야 한다.
어떤 도시에서 문화적 다양성의 효과는 단순히 구성 집단이나 문화의 수나 종류가 많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양한 집단들 간 접촉과 교류가 없다면 다양성은 아무런 효과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의 삶의 총체임을 인식하고 상호 문화에 대해 존중하고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세계적 수준에서 다양한 문화의 자유로운 교류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 집단 간 교차 접촉과 상호행동의 함양은 이들 간 신뢰와 사회적 결속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인천시는 아직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조례가 없다. 익히 알다시피 문화다양성이란 집단과 사회의 문화가 집단과 사회 간 그리고 집단과 사회 내에 전하여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일컫는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문화권을 특정 계층만이 아닌 모든 구성원이 공통으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이며,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이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이고 사회통합과 문화 창조의 초석이 됨을 강조한 것이다. 인천시에 거주하는 모든 이주민의 문화 정체성이, 인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인천시의 특성에 맞는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이 하루빨리 제정되길 기대한다.
박봉수 (디아스포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