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사유진 영화감독 인터뷰

문화의 힘은 작지만 함께하는 여럿에서 나온다

홍봄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하다’ 기자)

사유진

필모그래피

‘폭낭의 아이들’ (예술영화 2022. HD, 78분, 2023. 하반기 개봉 추진)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위령제’ (다큐멘타리 2018. 11. HD, 70분)

‘어느 한베평화재단 활동가의 평화기원 노래’ (다큐멘타리 & 뮤직비디오, 2018. HD, 4분 40초)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2017, 미디어 아트 시네마, 87분, HD, 기획/편집/감독, 2019 개봉 예정)

‘미디어 파사드_ 광주5·18 전야제’ (2017, 12분, HD, 기획/제작/총감독)

‘오페라_ 돈 파스콸레’ (2017, 3.24-26일, 서울 문래예술공장, 연출)

‘제주 4.3 미술제_ 제주: 년의 춤 영상 전시’ (2017, 4. 1~4.30. 유성식품)

‘제주: 년의 춤’ (2016, 시네댄스, 94분, HD, 기획/편집/감독, 2010 개봉 예정)

‘피스 인 티베트: 눈물의 춤’ (2013, 시네댄스, 85분, HD, 기획/촬영/편집/감독)

‘햇살댄스프로젝트 Ver 광주’ (2012, 시네댄스, 95분, 기획/편집/감독)

* 그 외 ‘영화 인문학 강의’, ‘영화와 춤 인문학 강의’, ‘영화, 철학으로 보기 강의’

사유진은 24년 차 영화감독이다.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충무로에서 약 5년 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이후에는 춤과 영화가 융합된 ‘시네-댄스’ 영화 만들고 있다. 이력을 놓고 봤을 때 그의 정체성은 분명 감독이 맞다. 그런데 기자와 마주 앉자마자 그가 꺼낸 첫마디가 이랬다. “사전에 주신 질문이 다 영화 관련이던데 제가 하는 일이 꽤 많아요.”

‘영화감독과 영화 얘기 말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뜻을 이해했다. ‘하는 일이 많다’라는 감독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예술영화감독이자 춤영화 인문학 강사, 문화예술기획자, 칼럼니스트, 힐링커뮤니티댄스 지도자로 소개했다. 다채로웠다.

하반기 개봉을 준비 중인 영화 ‘폭낭의 아이들’로 물꼬를 튼 대화는 과거와 현재, 영화와 영화 밖을 자유롭게 오갔다. 폭낭의 아이들은 4·3 당시 사망한 제주도 내 10세 미만 영유아 희생자 818여 명을 조명한 첫 아이들 소재 예술영화다. 4·3평화공원 내 각명비에서 10살 미만의 어린이 희생자 이름을 무명천(위패)에 일일이 적고, 평화의 숲의 폭낭에서 차례로 한 명씩 불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폭낭의 아이들 ©사유진

사 감독은 영화 제작 취지를 간단히 설명하고는 ‘예술경영’이라는 말을 꺼냈다. 영화 제작과 함께 그가 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활동들이다. 세계 모든 어린이의 평화를 기원하며 제주 어린이평화순례길을 진행했고(6회), 지난 4월 처음으로 ‘제주 4·3 어린이평화음악회’를 열었다. 나아가 대마도의 제주 4·3 희생자 공양탑을 이야기하며 제주도 내 입도한 예멘 난민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영화가 주된 작업이라면 동시에 예술경영을 하면서 문화기획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데서 나아가 좀 더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 하죠. 제가 하는 일에는 보이지 않는 연대가 있어요. 영화도 그렇고 다른 활동들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현지인들과 동화되어 함께 굴러가는 방식이죠. 같이 참여하고 공감하다 보면 기적 같은 일이 생기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기적 같은 일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광주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작품을 제작한 그는 지난 5월 ‘제1회 들불열사 7인 추모 예술제 : 박기순 열사’를 기획·제작·총감독했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들어냈다. 이들은 5·18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들불열사를 추모하는 예술제를 8년 동안 개최할 예정이다. 그리고 8년 동안 청소년 아이들 80명에게 30만 원씩 총 2천 4백만 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기도 한다. 또 같은 달 제주에서는 ‘제주4·3에서 광주5·18을 부르다’라는 유의미한 행사를 진행했고 이 행사는 제주MBC, 광주MBC에서 동시에 저녁 뉴스로 송출되기도 했다. 이 행사를 총감독한 사 감독은 “제주4·3.와 광주5·18은 평화와 인권, 생명의 소중함이 같다면 연도와 지역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제1회 들불열사 추모 예술제: 박기순 열사 장학금 전달 후 기념촬영 ©사유진

그는 “80년대만 해도 타자에 대해 인식하는 일이 자연스러웠어요. 제가 국가폭력에 의한 집단죽음을 조명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웠죠.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4·3이나 5·18을 제대로 칭하지 못할 만큼 세대가 분리됐어요. 그 틈을 채울 수 있는 게 결국 문화예술 영역인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사 감독은 이런 메시지들을 ‘춤’으로 전한다. 직접 춤을 춘다는 그는 ‘달빛명상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리드도 하며 ‘춤영화 인문학’ 강의도 한다. 무엇보다 춤에 대한 철학은 작품에서 드러난다. 그의 ‘시네-댄스’ 영화는 미국의 전설적인 아방가르디스트인 마야 데렌 감독의 ‘댄스 필름Dance Film’ 정신을 이어받았다. 댄스 필름 영화는 사건을 수평적인 소설적 구조가 아닌 시적 구조로서 관객의 정서를 상승 혹은 하강 시키는 형식으로 관객 스스로가 영화 안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한다.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법한 형식이다.

제주 도두봉에서의 달빛명상춤

제주 도두봉에서의 달빛명상춤 ©사유진

그렇다 보니 영화 배급은 항상 고민해야 할 문제다. 시네-댄스로 지금까지 4편의 영화를 만들고 국내외 영화제에 출품했지만, 초청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주4·3사건 중 여성 희생자 이야기 ‘제주 : 년의 춤’은 60여 곳의 국내외 영화제에 출품했지만 2017년 천안춤영화제와 2018년 제주독립영화제인 ‘제주혼듸독립영화제’ 외에는 상영할 기회조차 없었다. 배급사들은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배급계약을 해주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배급사를 계속 알아보고, 영화제에도 출품하지만 둘 다 여의치만은 않습니다. 작품을 선보여야 하니 지금은 OTT 쪽도 생각해요. 이것마저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죠. 필름으로 영화를 전공해 아직도 극장에 대한 짙은 향수와 애정이 있지만, 관객들과 약속을 한 만큼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털어놨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지만 독립영화는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을 지키는 기반과 같은 존재다. 사 감독은 “이전보다 독립영화의 소재가 확장되긴 했지만, 아직도 다양성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아쉽다”라며 “관객 수와 수익, 즉 흥행에 몰입하다 보면 안정적인 영화를 추구하게 되고, 반대로 실험적인 영화는 시도할 수 없어 다양성이 훼손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예술인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사 감독은 “한류의 주된 배경으로 소위 잘나가는 몇 개의 영화들을 꼽기도 하죠. 하지만 그 결과물들은 동시대의 산물이지 특정 영화만 잘나서 얻은 결과는 아닙니다. 저변을 확보한 독립영화, 예술영화, 적은 제작비의 군소영화들, 이 모든 게 집약체가 되어 문화의 힘이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부분들을 쉽게 간과합니다”라고 짚어냈다.

그렇기에 사 감독은 다시 제작하고 기획하고 감독한다. 후속작으로 4·3의 상징적 인물인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1914~2004)의 삶을 다룰 예정이다. 또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제작비가 확보된다면 프랑스인, 미국인,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라이 따이한을 캐스팅한 후 미군에 의한 최대 학살지역인 베트남 미라이 지역에서 손을 맞잡고 대규모로 ‘평화의 춤’을 추는 장면을 찍는 계획을 하고 있다.

사 감독은 “관객 한 분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고 그로 인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면. 순수하고 따뜻한 영화, 그런 영화 만드는 것 자체가 최고의 성공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홍봄

인터뷰 진행/글 홍봄 (Hong Bom)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하다’ 기자. 인천경기탐사저널리즘센터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