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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마을, 국제도시 인천으로 가는 시발점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

함박마을은 연수구청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함 씨와 박 씨가 모여 살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같은 성씨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함가와 박가가 모여 사는 동네로 알려지면서 함박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엄밀한 고증에 바탕을 둔 건 아니다. 함박마을은 지명의 유래와는 달리 ‘함박’이라는 말이 함박꽃, 함박웃음, 함박눈 등의 함박과 겹치면서 복스럽고 여유 있는 이미지를 풍긴다. 함박마을은 인천 연수구 연수 1동의 일부로 문학산의 남동쪽 아래, 인천 생활과학고등학교와 가천대학교 메디컬 캠퍼스 북쪽에 위치한 빌라촌이다.

비류대로
함박마을

도시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연수구는 모든 주택 가운데에 89.6%가 아파트일 정도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두 번째로 아파트 비중이 높은 도시이다. 함박마을은 그런 가운데에 다세대 주택들이 모여 있는, 연수구 가운데에서는 예외적인 동네이다. 다세대 주택 중 보증금 없는 작은 월세들이 몰려 있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고려인 공동체에서 정착하기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최근 10년 사이에 고려인촌을 대표하는 동네로 알려졌다. 함박마을 인구만 놓고 보면 2023년 5월 기준, 외국인이 7,400명으로 4,717명인 내국인보다 많고, 이곳 소재 초등학교 역시 외국인 학생이 더 많을 정도로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려인 타운이 되어가고 있다.

고려인 타운
고려인 타운

고려인들은 중국 교포들과 달리 그 나름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박봉수, 「고려인, 그들이 귀환하다」, <인천문화통신 3.0> 2019년 6월) 이들은 혈통으로는 한국인과 함께 하지만 국적은 대부분 러시아나 구소련에 소속되었던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들이다. 이들 나라를 CIS(독립국가연합)로 칭하는데 여기에 소속된 곳이 러시아 외에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이고, 준회원국이 투르크메니스탄과 몽골,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다. 함박마을에는 CIS 출신 고려인 말고도 이들 나라의 원주민들도 적지 않다. 고려인들의 고조할아버지나 증조할머니 등이 먹고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나 만주나 간도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 등으로 이주했듯이 그들의 후손들이 이제는 반대로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해 조상의 나라로 되돌아오고 있다.

고려인 타운
고려인 타운

이곳 상점은 한글과 함께 러시아 문자가 병기되거나 아예 러시아 문자로만 된 곳도 있어 거리 풍경 자체가 낯설다. 인구 구성비가 그러하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CIS 나라들의 식료품들이나 주류를 파는 소규모 상점도 많고 빵집도 많다. 식당도 여러 곳인데 고려인이 주로 드나드는 곳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점들은 모두 이곳에서 살아가는 고려인이나 이주민들을 위한 것들이다. 그들에게 낯선 땅인 이곳에서 위안을 주는 것들일 터이다. 요컨대 적당히 외국 풍물을 내세운 한국인 대상의 상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어 소통도 예상과 달리 대부분 쉽지 않다. 이곳에서 파는 빵이나 식료품, 주류 역시 모두 낯설다. 흔히 한국식 제과점에서 만나는 부드럽고 달콤한 빵이 아니라 주식으로 먹는 밥과 같기에 담백하면서도 조금 거칠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도 어쩌면 이들 나라에서 평범하게 먹는 것들일 텐데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풍미를 갖고 있다.

고려인 타운 음식
고려인 타운 음식

2023년 6월 5일 인천에서 재외동포청 개청식이 열렸다. 재외동포청 개청을 계기로 인천이 재외동포 700만과 함께 인구 1,000만의 도시로 위상이 올라가게 되었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굳이 재외동포 여부를 떠나 문화의 다양성과 혼종성이 앞으로 새로운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시대가 될 텐데 함박마을은 그 존재 자체가 인천으로서는 귀한 곳이다. 여러 문화가 어울려 이곳에서 앞으로 어떤 새로운 것들이 탄생할지 그 누구도 모른다. 평범한 다세대 주택의 밀집 지역과는 다른,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라는 점은 이 길을 걷는 누구라도 금방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함박마을은 인천의 차이나타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너무 단순화시킨 감은 있겠지만, 함박마을은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과 오히려 비슷하다. 인천 차이나타운이 상품화되고 역사화된 중국문화와 음식이 있는 관광지라면 대림동은 오늘날 한국과 중국 교포들의 문화적 혼종을 느낄 수 있는 생활의 현장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곳은 사실 대림동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혼종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 함박마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곳이 더욱 번성하고 더 많은 이주민들이 모여들게 되기를 기대한다. 살아있는 문화들이 이곳에서 마구 뒤섞일 때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여러 우여곡절도 있겠지만 문화란 그런 것이고 인천이 정말 이름에 값하는 국제도시가 되려면 이런 곳이 도시 곳곳에 퍼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말로만 문화 다양성이 아니라 여러 문화가 다투고 경쟁하고 어울리면서 공존하고 포용하는 도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함박마을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장,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