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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나는 마당극으로 즐기는 베트남판 콩쥐팥쥐
마당예술동아리 ‘클로벌’
박수희
우리의 ‘마당’은 독특한 장소다. 개인의 집 안에 놓인 공간이란 점에서 서양 주택의 ‘정원’과 비슷하지만, 공동체적 삶을 담아내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오히려 서양의 ‘광장’과 유사하다. 마당은 비워짐으로써 채워지는 실용적인 공간이다. 햇빛과 바람을 품는 건축적 기능 외에, 크고 작은 잔치를 벌이는 행사의 공간, 농작물을 타작하거나 말리는 작업의 공간, 세수나 빨래를 하는 일상의 공간, 이동이 가능한 평상을 두어 여럿이 함께 먹고 마시는 놀이의 공간 등으로 사용되는 그야말로 다목적 공간이다. 그래서 ‘마당’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란 관용적 의미로 확장되어 “이 마당에 너는~” 같은 일상적인 표현에도 쓰인다.
‘무대와 관객의 적극적인 소통과 시공간의 유연한 운용’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전통 연희극인 ‘마당극’도 물리적 공간인 ‘마당’에서 행해져 지어진 이름이지만, 모든 형태의 놀이가 가능한 포용성이 큰 형태의 극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다양한 마당예술동아리 ©미추홀학산문화원
‘미추홀학산문화원’은 다양한 문화예술 창작과 표현을 위해 열려있는 미추홀구의 ‘마당’이다. 학산문화원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지역의 문제를 문화예술로 풀어내고 신명 나게 즐기는 시민참여형 축제인 <학산마당극놀래>를 해마다 진행하고 있다, 미추홀구의 마을공동체,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복지관 등 지역 단체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마당예술동아리는 예술강사와 함께 무대를 준비한다. 매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주제를 정하고, 대본을 쓰고, 춤·노래·풍물·난타·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더해 극을 완성한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지역과 이웃을 돌아보고 나를 발견하며, 더 단단한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과정을 배운다.
마당예술동아리 ‘클로벌’ 단원들 ©미추홀학산문화원
마당예술동아리 ‘클로벌’은 결혼이주여성으로 구성된 동아리로, 학산문화원과 미추홀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함께 지원하고 있다. ‘클로벌’은 ‘글로벌(Global)’과 행운을 상징하는 ‘네 잎 클로버’를 합성해서 단원들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자신이 속해있던 사회와 한국 사회의 차이를 극복하고, 새로 결합한 가족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단일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긴장은 개인과 가정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경우가 많아,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생활 안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사회적 지지를 제공하고, 같은 국적의 친구와 선후배 결혼이주여성들이 만나 어려움을 나누고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동아리 ‘클로벌’은 2019년부터 매해 <학산마당극놀래> 축제에 참여해서 다문화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첫해에는 중국, 필리핀 등 2~3개 국적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참여해서 미추홀에 모여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가는 내용을 담은 연극 <그렇게 며느리가 된다>를 무대에 올렸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부터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이 모여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팬데믹 시대의 외로움과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차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은 연극 <우리의 오작교는?>(2020),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덩어리와 그 치유 과정을 꿈과 여행에 담아낸 마임과 인터뷰 영상 <마음속에 담아둔 여행>(2021), 여전히 낯선 땅에서 꿋꿋하게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음악극 <베트남 파일럿>(2022)을 무대에 올렸다.
2022년 제9회 <학산마당극놀래> ‘클로벌’ 무대 ©미추홀학산문화원
올해는 베트남 전래동화 <탐캄(TamCam)>을 각색하여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민족마다 구전되는 신화나 설화가 있고,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이야기 구조가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베트남의 <탐캄>은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서양의 <신데렐라>와 이야기 구조가 거의 같다. 지구촌 어디나 사람 사는 것은 다 같은 모양이다.
“축제에 어린이 관객이 참 많아요. 단원들 자녀들도 다 어리고요. 그래서 제가 어린이를 위한 동화 연극을 하자고 제안했고, 단원들이 협의해서 <탐캄>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로 했지요.” 작년에 이어 동아리 ‘클로벌’의 연극 지도를 맡고 있는 한지은 예술강사(32세)가 동화를 각색해서 한글로 대본을 썼다. 가장 예민한 배역은 단원들끼리 협의해서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화의 특성을 활용해서 작품 속 인물들의 대사를 모두 베트남말로 하기로 했어요.” 각자 맡은 배역의 대사를 단원들이 직접 베트남어로 번역하기로 했다. 연극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대본은 이중 프레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말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내레이터 역을 전민경 씨(31세)와 그녀의 첫째 딸인 김윤하 학생(10세)이 맡기로 했다. 김윤하 학생은 여름방학 때부터 연습에 합류할 예정이다.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무대를 준비하는 ‘클로벌’ ©미추홀학산문화원
8명의 동아리 단원은 한국에 머문 시간이나 한국어 실력이 다 다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원혜진, 전민경, 한리아 씨는 새로 지은 한국 이름을 사용하고, 국적 취득을 준비 중인 티프엉린, 쭉미, 마이, 젬피, 옥한 씨는 베트남 본명을 사용한다. 한국말이 아직 서투른 단원들을 위해 서로서로 베트남어로 보충 설명을 해서 모두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서로 시간을 맞추는 거예요. 저희 모두 어린 자녀가 있어서 육아나 직장 일로 바쁘지만, 참여율이 높은 편이에요.” 우리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원혜진(31세) 마당지기는 7살 쌍둥이의 엄마고, 오후에는 파트타임으로 제조와 포장 일을 한다. 작년까지 동아리 마당지기를 맡았던 한리아 씨(30세)는 인하대 이민다문화정책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최근 떡볶이 가게 문을 열어 정말 바쁘지만, 연습에 빠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단원들은 연습 시간 외에도 자주 모여 음식을 해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놀러 가고, 베트남어로 말하고 서로를 보듬는다.
‘클로벌’ 단원들은 베트남 남부 ‘달랏’에서부터 북부 ‘하롱베이’까지 고향도 다양하다. 베트남말은 6개의 성조가 있어 그 자체로 노래처럼 들리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으니 다채로운 음색에 사투리까지 섞여 여러 성부가 부르는 아카펠라 노래 같다.
세계화와 급속한 사회변화로 국가 간 이동이 일상화되면서 국제결혼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국제결혼은 1만 7천 건으로 전체 결혼의 약 8.7%에 해당한다. 인천의 다문화가족은 2만 7천여 가구로 전체 가구의 2.2%를 차지하며, 초·중·고 다문화 학생 수는 약 1만 명이다.
올해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축제는 9월 9일 토요일 수봉공원 인공폭포 앞마당에서 펼쳐진다. ‘클로벌’이 무대에 올릴 연극 <탐캄>은 베트남말과 베트남 전통의상, 베트남 국민가요 BGM으로 한층 다채롭게 다문화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박수희 (SuHi Park, 朴秀姬)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지금은 문화대학원에서 지역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다채롭고 평범한 사람들의 공간과 일상을 시속 4km의 속도로 걷고, 보고, 말하고, 읽고, 쓰고, 노래한다. 특히 오랜 시간과 성실한 손길이 담긴 것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