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Boom, Crash, Thump, Wham …!

아트플러그 연수 기획전 《충돌: 포르쉐와 덤프트럭》

박이슬 (임시공간 큐레이터)

마스크를 벗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이 허용된 요즘 일련의 집회와 축제를 보며, 그러니까 더 자세히는 어떤 자리는 이미 선점한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어 주는 반면 어떤 자리는 묵살하고자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 하는 모습을 보며 가끔 도시가 우리에게 허락한 사항들을 떠올린다. 나아가 그 ‘어떤’을 가르는 ‘누군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가 나에게 허락한 유일한 것은…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에어컨 바람 아래 앉아 시간 보내기. 정해진 제한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 대화 나누기. 통제선 안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모이기.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게 원하는 바를 외치기. 혹은 외치지 않고 견뎌내기. 아예 소리를 내지 않기. 도시는 통제된 소음을 유지하고자 하면서도, 누군가는 그 조금의 잡음조차 제거하기 위한 시도를 반복한다. 잡음이 가장 가까이 들려야 하는 곳 주변은 종종 집회를 금지하는 구역으로 과대 설정되고, 자본 없이도 모여들 수 있는 그나마 남은 장소는 거리에 하나둘 자취를 감춘다. 허락된 가장 최선의 평화를 영위하며 살기. 살아남기. 이토록 낭만적인 장면 아래 여전히 남아있는 이질성과 부딪힘은 때로는 오랜 시간 드러나지 못한 채 도시의 염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소음이 사라진 도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혹은, 소음을 제거한 도시에서의 다음날을 그려볼 수 있을까? 2023년 7월 16일까지 아트플러그 연수에서 열린 전시 《충돌: 포르쉐와 덤프트럭》(후원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은 사이 공간을 의미하는 ‘In Between’이라는 주제 아래 ‘충돌’을 하나의 미학적 태도로 견지하고, 이를 거대서사에 대항하는 미시사의 충돌(기억)/아름다움이 아닌 불규칙의 조합을 실험하는 예술적 실천(미학)/관념을 허물고 반대에 위치한 서로 다른 기표를 엮는 질문(재구성)−3개의 장면을 차례로 전시장에 불러와 도시에 현재하는 마찰 그리고 그것의 ‘있음’ 자체를 전달하는 듯 보인다.

아트플러그연수ⓒ사진_정정호
아트플러그연수ⓒ사진_정정호

아트플러그연수 ⓒ사진 정정호

‘기억’이라는 주제 아래 놓인 임수진의 〈오일 페인팅〉(2017)과 안성석의 〈지금 기억-수원, 부산, 화성〉(2016, 2021, 2011) 시리즈는 차례대로 권력에 의해 묵살되고 잊힌 도시 그리고 그곳에 살아가던 우리의 시간을 상기시킨다. 욕망이 휩쓸고 간 자리에 오직 폐허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무너진 건물의 빈자리를 원유 물감으로 다시 채워나가는 〈오일 페인팅〉 퍼포먼스가 신체로 서사를 다시 세우려는 몸짓의 기록이라면, 방을 돌아나가 뮌(김민선, 최문선) 〈작동-13개의 검은 구슬〉(2010)에서 들려오는 불규칙한 부딪힘 소리는 그러한 몸짓이 또 다른 몸짓으로 옮겨가며 새로운 힘을 생성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미학’에서 보여주는 여러 실험은 예술 형식 안에서 일어나는 모순과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라는 요소를 정직하게 가져오고 있다.

아트플러그연수ⓒ사진_정정호
아트플러그연수ⓒ사진_정정호

아트플러그연수 ⓒ사진 정정호

그렇기에 충돌을 말하는 전시장은 역설적으로 적막하다. 수장고에서 비로소 나온 작품들은 각자가 배정받은 위치와 의미를 침범하지 않고 일정한 눈높이에 가지런히 놓여 관람객을 맞이한다. 세 개의 장면으로 전개되는 ‘In Between’을 지나 전시장 안쪽에는 아트플러그 연수가 위치한 인천시 연수구의 풍경을 충돌의 서사와 결합시킨 ‘Extra Contrast’가 전개된다. 포르쉐와 덤프트럭이라는 상징은 고작 몇 개의 다리로 위-아래가 연결된 연수구 지형도를 떠올리게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태롭게 지탱한다는 점에서 충돌의 지점과 만난다. 동시에, 전시가 눈앞에 전체적으로 펼쳐놓은 잡음은 아트플러그가 위치한 이곳과 그 맥락을 연결 지으려 시도하면서도 충돌의 인식 이후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은 온전히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처럼 보인다. 비로소 새롭게 부여받은 관계성이 작동하며 시의성 있는 논의를 만들어 내는 장소가 전시라면 이곳은 작품들 사이 어떠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가. ‘In Between’의 마지막 장에 자리한 오민의 〈Attendee〉(2019)과 박경률의 〈Picture 5〉(2020)는 이러한 적막함에 정형화된 청각에서 탈주한 리듬을 전시에 개입하고자 시도한다.

〈Attendee〉에 등장하는 각 수행자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과 쉼표의 연주는 곧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 관람객을 붙잡고 그를 ‘참석자(attendee)’로 전환시키기를 꾀한다.

아트플러그연수ⓒ사진_정정호
아트플러그연수ⓒ사진_정정호

아트플러그연수 ⓒ사진 정정호

문득 상상해 본다면, 결국 소음이 사라진 도시는 폐허에 가까울 것이다. 외침이 들리지 않는 광장은 그곳에 모인 움직이는 신체가 보이지 않거나 아예 지워진 채 읊조림만이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유령의 집이다. 불편하기에 다시 돌아보고/말하고/반복하는 시끄러운 소란을 이어갈 때 우리는 ‘우리’가, 마침내 도시의 시간이 살아있음을 알아차린다. 맞이해야만 할 변화의 국면을 당겨오는 상상된 충돌을 만들어 내는 일. 그렇게 모두가 한 명의 참석자가 되어 이 전시가 그토록 갈망했던 ‘사이 공간’, 텅 빈 공간이 아닌 다양한 참석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사회적 공간 안에서 오늘은 무언가가 깨지고 부딪히는 소리가 굉음처럼 울려 퍼질 수 있길 기대한다. 기존의 정치권력에 대항하여 만들어 낸, 이전까지 없었던 사이 공간의 출현은 마침내 부정당한 개개인의 신체를 회복시키고 침범당한 공간을 되찾아 올 것이다. Boom, Crash, Thump, Wham …!

박이슬

박이슬 (朴이슬, Yiseul Park)

임시공간 큐레이터. 곁길로 비켜난 것에 닿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서울과 인천, 인접한 두 도시의 경계를 오가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경계에 걸쳐진 존재와 그사이 유실된 빈틈을 들여다보고자 전시를 기획하고 가끔 글을 쓴다.
roseeul.dew@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