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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525(CCS525)’의 <꾸물꾸물문화학교 커뮤니티 판화>는 2023 인천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예술가와 비예술가(시민) 모두가 함께 만드는 커뮤니티 판화 작업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보존하며 일상적 예술 체험을 만들어 간다.
거대한 나무에 함께 새긴 그림
<꾸물꾸물문화학교 커뮤니티 판화> 참여자 인터뷰
이재은 (소설가)
<꾸물꾸물문화학교 커뮤니티 판화> 참여자 주희 님
<꾸물꾸물문화학교 커뮤니티 판화> 참여자 주희 님
ⓒ인천문화재단
2018년에 <꾸물꾸물문화학교>를 알게 됐고 그때 처음 판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이후에도 꾸준히 했으니까 올해로 6년째네요. 코로나 시기에는 사람도 적고 아무래도 조금 다운된 기분이었는데 올해는 구성원도 많고 분위기도 정말 좋아요. 에너지 넘치는 분들 덕분에 매번 밝은 기운을 느끼고 있어요.
커뮤니티 판화는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에요. 크기부터 압도적이잖아요. 가로세로 길이가 2.4미터, 1.2미터거든요. 담당 구역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앉은 순서대로, 파고 싶은 대로 파요. 느낌을 살려야 하는 부분도 있고, 정확하게 파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나뭇결의 방향을 잘 보고 나무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해요. 망치로 홈을 내거나 이미지 옆면을 따주기도 하고요. 판화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지만 일단 도구가 좋아야 해서 도착하면 모두 칼을 갑니다. (웃음)
커뮤니티 판화 목판 완성작
ⓒ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525(CCS525)
함께 개척하고 도전하는 기쁨
교장 선생님이 올해 판화를 ‘시즌 3(쓰리)’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아이디어 발상부터 이미지 추출까지 모여서 한 건 처음이었어요. 예전에는 목판에 그림이 그려져 있고 우리는 파기만 하면 됐거든요. 이번 주제가 ‘강화도’여서 연상되는 단어를 찾고, 역사적 지형지물을 스크랩하고 선별한 뒤에 단순 이미지 작업까지 우리가 했어요. 전체 그림을 빔프로젝터에 쏴서 목판에 옮기는 것도요. 작년까지는 완성작에 내 노동력이 조금 들어간 정도였다면 올해는 남극대륙을 발굴하는 탐험가처럼 새롭게 개척하고 도전하는 기쁨이 있어요.
결혼 후에 인천에 왔어요. 1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인천에 대해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인천의 행정구역을 목판에서 다루거나 백령도 같은 섬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인천을 많이 알게 됐어요. 연령대와 성별이 다르고, 하는 일이나 경험이 다른 분들의 목소리로 인천의 기록을 나누고, 역사를 들여다보는 과정도 흥미로웠고요. 강화도만 해도 어렸을 때 몇 번 가본 게 전부이고 거기에 뭐가 있는지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고인돌이나 돈대, 궁과 강화 해변을 판화의 방식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사실 저처럼 가정이 있는 사람이 일요일에 바깥 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아이들은 남편과 어머니가 봐주는데 모두 저의 외출에 익숙해져서 일요일은 ‘엄마가 배우러 가는 날’이에요. 작년까지는 제가 말이 별로 없었대요. 맨날 구석에서 혼자 작업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그랬나? 기억이 안 나요. 이렇게 신나는데? 아무튼 요즘은 판화 제작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요. 나무도 파고, 수다도 떨고, 잠깐 쉬면서 차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더없는 힐링의 시간이에요.
<꾸물꾸물문화학교 커뮤니티 판화> 작업 과정
ⓒ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525(CCS525)
학생의 자리에서 나를 채우는 시간
디자인을 전공한 뒤 그 분야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학생들과 수업하면 저도 모르게 소진되는 느낌을 받거든요. 나를 채우고 싶다, 뭔가 문화예술적 영향을 받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게 돼요. 동료 선생님이 <꾸물꾸물문화학교>를 추천해 줬는데 일정 맞는 시간이 일요일밖에 없었고 그때 판화를 한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죠. 학부 때 해보긴 했어요. 지금처럼 ‘함께’가 아닌 성적을 받기 위한 고독한 개인 작업이었죠. 처음엔 목판화보다 실크스크린에 욕심이 있었어요. 수작업으로 찍어내는 거라 아날로그적인 운치도 있고 활용범위가 넓거든요. 학생들한테 주는 교구재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어요.
<꾸물꾸물문화학교 커뮤니티 판화> 수업 현장
ⓒ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525(CCS525)
지난 5년 동안 할 기회가 있었는데 못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꼭 실크스크린을 시도해 보려고요. 해마다 교장 선생님이나 반장님이 하는 걸 봐서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는데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똑똑하게 미리 계획해서 어떤 판이 나올지 예상하고 스케치부터 해야 하는데 제가 철저하게 계산하고 준비하는 걸 잘 못 하는 성격이어서……. 찍혀나온 걸 보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놀람도 크겠죠? 의도치 않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 뜻밖의 만족감도 있을 것 같아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어요. 초중고 수업에 도서관, 지역아동센터에 더해 인하대 문화예술교육원에서도 강의하거든요. 반대로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면서 제가 강사가 아닌 학생으로 보내는 시간이 꽤 소중해요. 사색의 여유를 마련하고, 그렇게 침잠하면서 학생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발전적인 고민을 해요. 토요일 밤이면 예외 없이 버튼이 딸깍! 하고 꺼지는데 일요일에 판화 하면서 텐션이 조금 올라가고, 월요일 아침이 되면 사라락 살아나는 거죠. 그렇게 새로운 한 주를 맞아요. 안정적인 사이클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가족 전시회
우리 아이들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고 언니도 디자인 전공, 어머니도 미술 쪽에 재능이 넘치세요. 섬유공예랑 염색도 배우셨고요. 한번은 지나가는 말로 “언젠가 가족 전시회를 하면 어떨까?” 했는데 남편이 “오, 좋네. 대관할 수 있는 곳 알아보자.” 하면서 지지해 주더라고요. 회화, 일러스트, 시각 디자인, 공예, 판화 등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정말 해볼까 싶어요.
가족과 더불어 있을 때 가장 행복해요. 평범한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요일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누리기 때문에 더욱더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것 아닐까요?
예전에는 <꾸물꾸물문화학교>에서 도자기, 일상 드로잉, 요리, 차(茶) 수업도 했다는데 그런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문화학교가 저에게 무척 위안이 되거든요. 가족이나 제가 만나는 학생들, 동료 선생님이 가까이 있는 것도 좋지만 커뮤니티 판화 같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다정한 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인천의 모습을 보게 되어 진짜 흐뭇합니다.
이재은 (李在恩 Lee Jae Eun)
소설가. 소설집 『비 인터뷰』, 『1인가구 특별동거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