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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삶의 중간으로 슬쩍 빠져나오기

‘라이프 라이프’ 현장스케치

김민지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LIFE, LIFE

LIFE, LIFE ⓒ라이프 라이프

공간 아닌 시간

아끼는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면 실은 티를 낼 수 없는 소심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그 공간의 가치를 기쁘게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으면서도 어쩐지 나만 알고 있던 보물을 괜히 공개하나 싶은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더구나 그 공간이 고요가 어울리는 곳이라면 혹여나 찾는 사람이 없어 이곳이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한편 또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이 많아지면 어쩌나 옹졸한 걱정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간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권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내가 보낸 특별한 경험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는 절로 수다쟁이가 되고 얼마든지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부근의 지하철역 기준으로는 부평구청역과 굴포천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나, 아기자기한 카페와 공방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일명 ‘청리단길’로부터는 조금 외떨어진 곳에 자리 잡아 힙함보다는 고요함을 택한 ‘라이프 라이프’를 그리하여 나는 공간이 아닌 시간으로서 소개하고자 한다.

‘라이프 라이프’를 공간이 아닌 시간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러나 비단 그 공간을 독점하고자 하는 비좁은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곳을 정말 잘 소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간적인 특징보다도 그곳에서 보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공간의 정체성이 그곳에서 행하는 활동의 내용으로부터 정해진다면 (이를테면 밥을 먹는 곳은 식당,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카페 등) ‘라이프 라이프’는 거꾸로 공간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짐작건데 이 공간에 갔던 사람들은 자기 작업을 하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더라도 그와 더불어 오직 ‘라이프 라이프’에서만 할 수 있는 몇 가지 경험을 하고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후에 그 공간을 기억할 때면 그곳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될 텐데 경험의 내용 즉,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가 곧 그 공간의 정체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내부 공간
내부 공간

내부 공간 ⓒ라이프 라이프

중간의 시간

포털사이트에 ‘라이프 라이프’를 검색하면 독립서점으로 분류가 되어 있으나 실은 그곳은 독립서점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공간이다. 책을 소개하고 판다는 점에서 서점이 맞지만, 커피와 디저트를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카페이기도 하고, 책을 매개로 기획된 관객참여형 전시가 운영된다는 점에서 전시장이기도 하며,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는 워크숍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곳을 흔히 말하는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칭하자면 공간의 특수함과 매력이 한순간에 모두 평평해진다. 공간의 정체성 자체가 공간을 분류하는 기존 범위 바깥의(혹은 ‘중간’의) 독립적인 본질을 가지는 것이다.

이 독립성 때문인지 ‘라이프 라이프’에는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흐른다. 그 신비로움은 이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곳의 시간이 멈춘 까닭은 ‘라이프 라이프’가 ‘삶과 삶 중간’에 위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행 기차를 타기 위해 9번 승강장과 10번 승강장 사이 빨간 벽(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돌진한다면, 일상과 다른 차원의 시간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은 작고 오래된 가게들이 죽 이어지는 부평동 길주남로 46번길 작은 나무 입간판 뒤로 슬쩍 들어가면 된다.

‘라이프 라이프’ 입간판

‘라이프 라이프’ 입간판 ⓒ라이프 라이프

그 멈춘 시간 동안 우리는 현실에서 시간과 함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가치들에 대해 마음껏 감각하고 생각할 수 있다. 이때 감각과 생각을 돕는 것은 책이다. ‘라이프 라이프’에서는 매달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책에 대한 해석의 확장을 돕는 관객참여형 기획 전시를 운영하기 때문에 혹 아무런 생각의 재료 없이 이 공간에 방문하더라도 그달의 책을 읽고 전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멈춤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한 권의 책 앞에 멈춰 서서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오래도록 몰입하는 그 시간은 다른 책으로 넘어가 새로운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충분히 이해하고 흡수하는 ‘책과 책 중간의 시간’이다.

빠홈:질문의 땅-사람은 얼마만 한 땅이 필요한가

기획전시 <빠홈:질문의 땅-사람은 얼마만 한 땅이 필요한가> ⓒ라이프 라이프

용기의 시간

‘라이프 라이프’에서 선정한 책과 연계 전시, 프로그램에는 삶을 되짚어 보게 하는 질문이 담겨 있다. ‘라이프 라이프’의 첫 번째 선정 도서인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연계 전시 <빠홈:질문의 땅-사람은 얼마만 한 땅이 필요한가>에는 사람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이, 배우 김혜자의 에세이 「생에 감사해」와 그 연계 전시 <꿈 부화기>에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꿈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 인근에서 무국적 주점 ‘기화바’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추천 도서 「합니다, 독립술집」과 연계 전시 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을 안주 삼아 마시는 한 잔 술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있다. 이 공간은 현실은 자꾸만 뒤로 밀어내는 질문들을 부단히 전면에 내세우며 우리 삶에서 그 질문들과 저마다의 답이 가지는 의미를 일깨워 준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아니겠냐며 내 어깨를 흔드는 ‘라이프 라이프’의 질문들로 하여금 삶을 구성하는 철학적 가치에 대한 지지와 연대 속에서, 떠밀리듯 내딛는 잰걸음이 아닌 나의 결정에 따른 한 걸음을 내디뎌 볼 용기가 생겨나는 것이다.

기획전시

기획전시 < Trinity shot > ⓒ김민지

삶의 본질을 생각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것은 ‘라이프 라이프’를 만들고 운영하는 두 주인장의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단지 프로그램 안에서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공간 자체가 그 태도를 원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부부 사이인 기획자 A와 Q가 이 공간을 만들 때 공간의 쓰임과 방향을 바탕으로 무수한 고민을 담아 직접 설계한 가구들과 매달 선정 도서와 어울리는 무드의 음악으로 업데이트되는 플레이리스트, 마진과 효율보다 재료의 싱그러움과 건강한 맛을 우선에 두고 오랜 시간을 들여 직접 만드는 디저트까지.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 속에 자신의 리듬에 맞게 멈추고 생각하며 나아가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주인장의 삶, 시간, 취향이 가득 담긴 이 공간 안에 있다 보면 그들의 자기다운 질서와 속도로 하여금 나다움의 용기가 절로 북돋아진다. 누군가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었을 때 배부름 이상의 든든함이 느껴지는 것은 만든 사람이 음식에 쏟은 에너지가 음식을 통해 먹은 사람에게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두 운영자가 공간에 쏟은 시간과 애정을 머금고 있는 ‘라이프 라이프’에 머무르다 보면 나 또한 자연스레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기획자 A와 Q는 함께 생각하고, 휴식하고, 놀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라이프 라이프’를 열었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만의 질서를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내 편을 꾸려 사회를 움직이는 지배적인 시간 질서에 맞서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지 제멋대로 추측해 본다. 그런데 친구가 필요한 것이 그들뿐일까. 삶의 본질을 구성하는 가치들은 촛불과도 같아서 여러 사람이 벽을 만들어 바람을 막아야만 잘 지켜낼 수 있다. 그 본질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 어서 ‘라이프 라이프’로 가서 A와 Q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된다.

김민지(金珉志/Kim Min Ji)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여전히 문화예술교육을 잘 모르겠지만 마냥 애정이 가서 괴롭고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나의 행복 말고도 다른 사람의 행복에도 작게나마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기를 바라며
장래희망은 매일 읽고 매일 쓰는 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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