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수호대 표지
ⓒ돌베개
김중미는 인천을 대표하는 작가다. 인천 동구 만석동을 배경으로 한 『괭이부리말 아이들』 (창비 2001)부터 강화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창작한 『모두 깜언』 (창비 2015)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은 늘 시대의, 인천의 가장 약하고 여린 곳에 닿아 있었고, 위태로운 어린 주체들 속에서 마침내 연대와 희망이라는 결말을 이끌어냈다. 『느티나무 수호대』 (돌베개 2023) 역시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 중 하나인 ‘다문화’ 주체, 즉 이주배경아동과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이다. 작품에서도 말하듯 서울 외곽의 위성도시나 일부 농어촌은 이미 인구의 30퍼센트가 다문화 주체이건만,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는 멸칭이 되어버렸고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벽은 시간이 갈수록 더 견고해지는 것만 같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부모가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인해 수시로 굴욕과 비참에 맞닥뜨린다는 사실은 다문화 주체가 서 있는 현실 그 자체이며, 이는 ‘다문화’라는 단어 대신 이주배경아동이라는 말을 쓰자는 제안을 무색하게 만든다. 급식카드로 빵을 산 아이들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장에서 내쫓는 빵집 주인(28쪽)이나, 태생적으로 낯가림이 심한 도훈이에게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다문화 아이라서 낯을 가린다.”고 하거나, 겉모습만 보고 한국 국적을 가진 니카를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부르고 요한이에게 걸핏하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이들을 다문화라 지칭하건 이주배경아동이라 지칭하건 상관없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름을 차별하는 이유는 보통 무지와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무지는 쉽게 두려움으로 치환, 공격성으로 표출된다. 여기에 코로나와 같은 위기가 더해지면 공격의 수위는 극도로 높아진다. 작품은 코로나를 거치면서 극단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차분하게 조명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느티샘이라는 존재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아가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고 건강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게 어때서? 우리 다문화 맞잖아. 그리고 솔직히 대포읍 사람들 다 다문화 아니냐? 6학년 때 샘이 그랬잖아. 우리 대포읍 사람들 모두 다문화라고. 대포초등학교 학생들이 다 다문화인 거라고.”
“그건 나도 알아. 우리 아빠가 그랬어. 우리 아니면 집도 못 짓고, 아픈 사람들 돌볼 수도 없고, 채소랑 과일도 못 먹고, 생선도 못 먹고, 돼지고기 소고기 치킨도 못 먹는다고. 한국은 진짜 다문화 사회인데 사람 인식만 다문화가 아니라고.
금란이 말에 니카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보여 줘야지. 우리 모두가 다문화다. 우리를 그렇게 대하지 마라. 우리가 여기 있다. 우리는 기죽지 않는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는다.”
니카가 가슴을 팍팍 치기까지 하며 너스레를 떨자 금란이가 피식 웃었다. (69~70쪽)
“한국은 진짜 다문화 사회인데 사람 인식만 다문화가 아니라”는 말이 폐부를 찌른다. 우리의 무지와 앎에 대한 게으름은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두터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뻔히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대하고, 우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기어이 차별의 딱지를 붙인다. 그래도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기죽지 않고,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아빠를 미워하고 자신을 증오했던 아이들이 이토록 건강하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느티샘 덕분이다. 이 소설에서 느티샘은 대체 불가한, 특별한 존재다. 어쩌면 느티샘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느티샘의 역할은 지대하다.
소설에서 마을의 당산나무인 느티나무는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사람이 되어 나무 밖으로 나온다. 일제강점기 엄마 느티나무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처음 사람이 된 느티나무는 이후 대포초등학교의 임시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거둔다. 느티샘은 엄마에게 버림받고 만신창이가 된 예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맙고 대견하다. 견뎌 줘서. 예은이는 참 강한 아이구나. 반가워, 언제든지 와서 쉬다 가도 돼.”(76쪽) 예은이는 살면서 이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느티샘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없던 것처럼 치부했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그들을 살리는 말을 한다.
그뿐만 아니다. 느티샘은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않으니 급식조차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아침상을 차린다. 그런데 여기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것이 대포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마을의 청년들이다. 어느 날 느티나무를 궁금해하던 새봄을 앞세운 채 느티샘은 아이들의 아침거리를 마련하는 산책길에 나선다. 발효 빵집의 젊은 사장님은 금방 만든 빵을 내놓고, 1978년부터 3대째 운영하는 새마을 슈퍼사장님은 우유를 종류별로 꺼내고, 청년 채소 가게 사장님도 아이들이 먹기 좋게 토마토를 미리 손질해 두었다. 느티샘은 한 번도 돈을 내지 않았고, 모든 가게 주인은 행복한 마음으로 먹거리를 내놓는다. 느티나무로 돌아온 느티샘은 아침상을 차리고 여기저기서 모인 아이들은 자연스레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더 어린아이들을 챙긴다. 이 장면에서 파리 코뮌이나 80년 광주의 금남로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그만큼 뭉클하다.
느티샘도 먹거리 제공자들도 생색이란 없고, 그래서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은 채 자연스럽고 당당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여기 온 애들은 느티샘이 돌보는 애들이냐는 새봄의 질문에 예은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우리는 서로를 도와. 물론 느티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만.”(165쪽) 새봄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아침은 어쩌면 독자인 우리들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같은 아침이다. (이 작품을 판타지로 보기에 느티샘은 너무 일상적이고 너무 특별하다. 판타지에는 최소한의 규칙이 있는데 느티샘에게는 그런 것도 없다.) 현실과 비현실이 마구 뒤섞이는 마술적 리얼리즘은 느티샘 뿐 아니라 느티나무라는 공간 자체에서도 일어난다. 느티나무는 쉴 곳이 필요한 사람이 오면 언제든 문을 열어주고, 나무 안으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커다란 공간에서 아이들은 원하는 어디에나 앉거나 누워 놀거나 쉬거나 책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느티나무 안에서는 각자 자기 언어로 말해도, 그러니까 통역하지 않아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2부의 후반과 3부부터 이야기는 자연스러움의 경계를 넘어선다. 댄스 컴퍼니 쿨레칸과 에마뉘엘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지식책과 비슷한 모양새를 취한다. “쿨레칸은 ‘뿌리의 외침’이라는 뜻이래. ‘우리 모두는 여행자들이며, 어디를 가든 자신의 존엄성과 뿌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대.”라는 말은 새봄의 입을 통해 전해지지만 작가의 전언으로 들리고, 아이들의 회의 장면은 ‘무심코’와 ‘장난으로’라는 말로 타자의 존엄성을 헤집는 우리의 무지와 무신경함을 요약해 보여준다. 이후 에마뉘엘이 느티나무에 찾아와 함께 춤을 추고 인권에 대해, 평등에 대해, 환경에 대해, 멀리서 온 손님과 환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모두 옳고 필요한 말이지만 목적성이 뚜렷하게 지시적으로 드러나 문학으로서의 감동은 점차 덜해지니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천연기념물이 되기보다 마을의 당산나무로 사람들 곁에서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함께 희망을 가꾸기를 바라는 느티샘의 바람으로 종결되는 이야기는 한결같이 아름답다. 느티샘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속상할 일이 생겼을 때는 이리로 오면 어때?” 이런 느티샘 덕에 요한은 자신의 이웃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고, 속상할 때 느티나무에 찾아와 다음날 다시 학교에 갈 힘을 얻는다. 도훈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느티샘의 환대를 통해 아이들은 잃었던 자신을 찾고 힘을 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 장면을 되짚어 계속 읽으면서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공간이 어디에 있을까?’ 잠시 아득해졌지만 나는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이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믿는다. 『느티나무 수호대』는 그런 책이다. 지치고 힘들어 더 이상 날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이 잠시 깃들어 숨을 고르고 다시 날 수 있는 힘을 찾게 해주는 곳. 그야말로 마술적 리얼리즘이 유장하게 펼쳐지는 곳.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믿고 싶고 붙들고 싶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송수연 (宋受娟 Song Soo-yeon)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2014년 계간 『창비어린이』 평론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