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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의 바다, 전쟁의 예술

한재섭 (광주독립영화관)

바닷가 마을 소녀 심청은 눈 먼 애비의 물색 없는 주책때문에 인당수로 떨어집니다. 주책이라지만 곧 죽어도 글월 좀 읽었다는 선비의 위신이 중놈 앞에서 떨어지자 허장성세로 만회하려다 그리 된 것입니다. 열 여섯 딸을 천길 바닷속이 잡아먹게 놔둔 애비의 허장성세는 황해바다를 두고 지난 세기 각축전을 벌여온 한중일 미국과 러시아 위정자들과 판박이입니다. 판소리 『심청가』에서 심청은 제 애비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맹인을 구원하지만 현대의 심청에서 애비는 딸을 팔아먹은 자업자득으로 제 눈을 찌르고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징벌을 받습니다.

천길 바다속으로 떨어져 황해바다를 연안에 둔 중국, 대만, 마카오, 류쿠와 일본을 떠도는 심청의 이야기는 채만식과 최인훈, 윤이상, 황석영에 의해 지속되어 왔습니다. 임진왜란과 아편전쟁이라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가 요동치는 전쟁을 후경삼아 이놈 저놈에 치이며 생을 살아 내는 심청은 이산의 이야기입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유대인의 역사만이 아니라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핏발 서린 고통의 눈물입니다.

그 눈물 중에서도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더욱 더 비참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여성은 지정성별이 아니라 아이와 노인, 장애와 소수자 등 역사의 바깥으로 밀려난 유령같은 존재들, 그들 모두를 가리키는 대명사입니다. 그 대명사들이 피워내는 꽃이 연꽃이든 해당화든 역사의 전진이라고 벌어지는 전쟁의 포화속에서 그녀들은 지지 않습니다. 지고 피기를 반복합니다. 겨울에 사라진 곰이 봄이 되면 재생하듯 그녀들은 사라지고 되돌아오기를 끝없이 반복합니다. 거기에는 다른 경계가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바다에 금이 그어져 있지 않듯이 꽃에 이름이 지어져 있나요?

전쟁은 늘 허장성세로 시작해 자업자득으로 끝납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는 전쟁을 중단 시킬 힘이 역부족이란 것입니다. 세계에 전쟁이 일어나 사람들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제 집을 떠나 세상의 황무지를 떠돕니다. 여행자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마이너리티가 되는 여행자가 아니라 평생을 소수자로 살아야 되는 이산이 시작됩니다. 위정자들의 허장성세때문에요.

그런 그들을 찬양하는 영화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카메라라는 새로운 기계장치로 시작되었고, 즉각 기존의 예술을 부정하고픈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처음 영화는 움직이는 사람들과 흘러가는 시간이 담겨있는 공간을 그대로 담을 수 있어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놀라운 기계장치였습니다. 뉴스와 라디오가 여전히 문자와 구전으로 세상의 소식을 전할 때 영화는 사건을 고스란히 담아 전 세계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기계장치의 복제능력은 다시 편집이란 힘을 발견하며 있는 그대로의 사건이 아닌 과장하고 축소하고 미화시키는 사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위정자들의 탐욕을 실현해주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카메라는 대상을 필름에 가둬두려는, 즉, 떠나가고 죽어가는 존재의 무상함을 예술로 남기려는 인류의 오랜 욕망을 실현시키는 마지막 예술매체였기에 더 쉽게 이용당했을 것입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월남전과 제 3세계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망령들이 일으킨 전쟁과 학살은 20세기 정치문화구조를 기이하게 변형시켰습니다. 아놀드 하우저가 영화의 시대를 서구 예술사의 마지막 장으로 쓴 것도 세계영화는 곧 미국영화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도 모두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냉전의 장막이 걷어졌다는 21세기에도 우리의 무의식은 여전히 냉전이 만들어 놓은 헛깨비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더욱 그럴 수 밖에요, 남쪽과 북쪽이 서로를 철저한 봉쇄와 고립으로 은제든지 드잡이질을 하려는 저희는 여전히 냉전의 시대입니다.

전쟁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전쟁은 방독면,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확성기, 화염방사기와 소형탱크 등을
빌어서 버림을 당하고 있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굳건히 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전쟁은 꽃피는 초원을 불꽃 튀기는 기관총의 열대 식물로써 더 한층 다채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전쟁은 총탄의 포화와 대포의 폭음, 사격 뒤에 오는 휴식, 향기와 썩는 냄새 등을 합하여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 1909년 2월 20일. 「미래주의 선언」일부 , 『르 피가로( Le Figaro)』

그래서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이 구체제를 일시에 소거해버리는 전쟁을 찬양하는 선언문의 섬뜩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미래주의에 모든 오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제를 일시에 혁신시키고자 하는 예술도 전쟁의 속성과 닮아 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예술 형식인 영화는 그래서 전쟁과 잘 어울렸습니다. 뉴스릴 필름부터 스펙터클한 굉음과 폭발 장면의 전쟁영화, TV로 생중계되는 폭격장면과 롤플레잉 게임과도 같은 현대 전쟁은 모두 카메라에서 시작되었고 우리의 시각체계와 사고를 장악했습니다. 그것은 시각의 지배입니다.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저희는 전쟁의 영상들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시각이미지는 그것들을 더 효과적으로 파고들고 빠져들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왔습니다. 전쟁의 예술은 없다고 모두 손시래를 치겠지만 예술은 어떤 면에선 전쟁을 닮았습니다.

이제 바닷가 마을 심청은 집으로 돌아왔을까요? 판소리와 소설, 희곡과 영화의 대상일 뿐이지 예술가도 전쟁광도 아닌 심청이는 돌아왔을까요? 황해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요?

한국 최초의 이민이 시작된 곳, 산동반도의 중국인들과 일본과 미국의 군대가 상륙한 곳, 수많은 북쪽 사람들이 터전을 잡은 곳, 성냥공장과 방직공장으로 시골의 소녀들을 빨아 들인 곳, 부두와 공장으로 역시나 시골의 육체들을 소진 시킨 곳, 지역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이민과 이산이 모여든 곳이 인천입니다. 벌써 열 한번째나 되는 인천의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세계의 모든 심청이들을 향해 연대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는 ‘우리는 모두 이산자이다’ 라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야 전쟁을 찬양하는 영화가 나올 수 없음을 절박한 심정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이구요.

10회를 기점으로 영화제의 장소를 개항장 일대로 옮기며 톤앤 매너를 일신한 것은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지역 영화제에 머물지 않고 ‘우리는 모두 이산자다’라는 세계인들과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영화제의 새로운 미래를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을 ‘환대의 광장’으로 명명하며 영화제의 중요 장소로 선택하여 한국 최초 극장인 애관극장과 신포동을 연결하며 개항도시 인천 맥락들을 샅샅이 부각시키려는 전략은 결국 이산자의 후예들인 원도심 주민들에게 경제적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부대행사로 가시화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애관극장과 환대의 광장 사이에 놓인 신포동의 골목길마다 숨은 상점, 문화공간(책방 등) 탐색과 역사적 맥락을 잡아가려는 서사는 세계의 개항이 이루어진 인천의 미세혈관을 지탱시키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디아유람단’(인천스펙터클 협력)과 이와 맥락을 공유하는 환대의 광장에서 펼쳐진 만국의 이산자들을 연결할 수 있는 도서관, 식음료, 놀이문화, 플리마켓 등 영화제의 비전을 드높이는 섬려한 프로그램 실행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사업을 벌일 때 인천 문화에 천착하는 로컬 에디터 그룹들과 함께하는 점 역시 영화제를 찾는 국내외 영화인들과 관객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디아스포라 라와 인천을 강렬히 각인 시킬 수 있는 성공한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하대가 1952년 하와이 이주 50주년 기념으로 하와이 교포들의 고국에 대한 눈물 서린 성금으로 만들어졌음만 보아도, 인천과 미국, 인천과 이산의 역사와 문화가 얼마나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한미동맹 70주년은 강화도와 인천 상륙작전이란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역시 위정자들만의 관점일 수 있습니다. 외려 우리는 1902년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로 간 노동자들처럼 이국땅 인천항에 상륙해 인천과 한국문화의 한 지류를 만들어낸 미국 병사들의 보통의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을 영화제는 한미동맹 70주년에 맞추어 미국 내 디아스포라를 다룬 릴리 헤베시(Lily Hevesh)의 영화와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평화를 염원하는 도미노 퍼포먼스로 풀어냈습니다.

이처럼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국경만이 아니라 이념의 문제도 발본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인종 국경 민족 성별 계급의 문제는 전쟁과 재난으로 이산자가 되어버리는 순간 농구의 피벗처럼 삶의 방향이 180도 뒤엎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막을 수 없지만 인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언제나 이산자들의 영화가 (늦지 않게) 도착하기를 응원합니다.

한재섭

한재섭 (韓在燮, Han Jae Sub)

광주독립영화관 관장/ 인류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지역문화의 보편성과 특이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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