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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다 갑니다’ 달빛 아래 향교에서 즐기는 풍류와 난장

학산문화원 ‘달빛공감 음악회’

허은영 (시민기록단)

이번에는 야외다. 그것도 인천향교에서 펼쳐지는 풍류와 난장의 퍼포먼스. 저녁 식사 후 마실 가듯 슬리퍼를 신고 걸어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 숲을 거닐고는 정화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에 학산문화원 있는 것도 감사한데 진정 숲으로 둘러싸인 향교에서 음악회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온 가족 출동.

명륜당으로 향하는 길

명륜당으로 향하는 길
ⓒ허은영

‘달빛공감 음악회’의 드레스 코드는 한복. 옷장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한복을 꺼내 입은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선물로 받은 색색의 노리개를 저고리에 달고는 체험장으로.

전통차 시음 체험

전통차 시음 체험
ⓒ허은영

냉연꽃차

냉연꽃차
ⓒ허은영

음악회 관람 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전통문화 체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통차 시음 부스에는 초여름 더위를 뚫고 달려온 이들의 땀을 식혀줄 연꽃차 한 송이가 얼음물 속에 피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 외, 향교 컬러링, 나만의 달 꾸미기, 전통 연 만들기 체험 부스가 차례로 들어서 있었다.

향교 컬러링 체험

향교 컬러링 체험
ⓒ허은영

‘향교 컬러링’ 체험은 향교에 있는 여러 건물을 엽서로 만들어 직접 색칠하며 그 공간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 아이들이 딱딱한 교과서에서 벗어나 생생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달은 아직 뜨지 않았지만 ‘나만의 달’을 꾸미고 바로 옆자리로 옮기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연 만들기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일일이 살을 붙이고 얼레에 실을 연결했던 “라떼는 말이야”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손쉬운 연 만들기 체험인 데다 도우미분들도 여럿 배치되어 있어 각자의 솜씨로 그리고, 칠하고, 직접 날려 보는 가족 모두가 흥겨운 체험 한마당이었다.

전통 연 만들기 체험

전통 연 만들기 체험
ⓒ허은영

연 날리기 체험

연 날리기 체험
ⓒ허은영

고사리손들이 부지런히 색칠하고, 꾸미고, 만들어서 연을 날리며 도호부 관아까지 몇 차례 왕복 달리기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 제기차기, 투호 놀이, 활쏘기 등 전통 놀이 삼매경에 빠질 즈음 음악회 입장을 위해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인천향교 명륜당 야외무대. 200여 명의 관객들이 객석과 더불어 툇마루 등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 숲의 산들바람과 향기에 젖어 들며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ㅁ’자형 건축물인 명륜당 마당은 야외무대의 산만함은 찾아볼 수 없이 아늑하고, 위로는 숲에 둘러싸인 하늘과 구름과 새들이 또 하나의 무대를 선사하고 있었다.

거문고 산조

거문고 산조
ⓒ학산문화원

산조합주

산조합주
ⓒ학산문화원

1부는 ‘예술숲 전통음악 합주단’의 공연으로, 대금독주인 ‘상령산풀이’와 ‘거문고 산조’ 등 독주곡으로 시작해 국악 관현악의 무대로 이어졌다. ‘정악’에 해당하는 ‘유초신지곡’중, ‘염불도드리’에서 ‘타령’으로 넘어가는 관현악의 무대는 서양음악의 관현악 연주에서와 달리 속삭임도 서막도 없이 웅장한 합주가 귀로 달려드는 무모함이 느껴진다. 마치 거대한 헤테로포니의 파도가 밀려와 관객석을 덮치는 것 같아 몸이 긴장한다. 모든 악기가 주인공인 양 소리를 높인다. 좌고(左鼓) 연주자만이 그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서퍼처럼 편안해 보인다. 순간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라는 마음으로부터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속악인 산조합주로 자연스레 이어지며 좌고 연주자는 징잡이가 되어 흥겨운 고깃배를 띄운다.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며 어깻짓을 덩실덩실.

선비들의 풍류를 담은 전통음악의 향연으로 1부가 막을 내리고 2부에서는 21세기의 아리랑이라 부를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곡, ‘난감하네’로 독창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퓨전국악팀 ‘프로젝트 락’의 무대가 펼쳐졌다. 선비들의 풍류에서 난장으로, 전통음악에서 창작음악으로의 진입이 시작된 것이다.

‘프로젝트 락’의 공연

‘프로젝트 락’의 공연
ⓒ허은영

우리에게 익숙한 판소리 사설에 현대적 감성을 접목한 ‘난감하네’는 생판 모르는 토끼를 잡으러 육지로 나가야 하는 별주부의 처지가 현재 우리네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진정 난감한 처지에 몰릴지라도 웃음으로 헤쳐 나갈 힘을 주는 것 같았다. ‘프로젝트 락’의 백미는 가창력과 관객을 몰입게 하는 매력을 갖춘 보컬에 있기도 하겠지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완벽한 조합으로 무대를 펼치고 있는 연주자들의 실력에 있기도 한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곡인 ‘beautiful days’를 시작으로 전통민요를 재즈록 스타일로 해석한 ‘밀양아리랑’ 그리고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난감하네’를 절정으로 관객과 하나 되는 무대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몰입으로 가려 하는 순간, 한 호흡 쉴 겸 연주자들 소개가 이어지며 전통악기 소리를 듣는 순서가 이어졌다.

대금의 청아한 소리가 바람결 따라 울려 퍼지고 이어서 일명 ‘깽깽이’라 불리는 해금 연주가 시작된다. 숙연해지는 무대, 코끝이 시려오는 순간 객석이 웅성거리며 누군가 ‘유재하, 그대 내 품에’라며 해금 연주자가 연주한 곡의 제목을 맞춘다. 그렇지, 제목은 기억나지 않을지라도 추억과 감성을 소환하는 게 음악의 힘이지.

연주곡인 ‘FAST TRAK’은 2집 타이틀곡으로 전통음악인 ‘도라지타령’과 현대적 감성이 만나 익숙하면서도 현란한 모던록을 선사한다.

그 외에도 영화 ‘왕의 남자’ OST로 유명한 ‘인연’과 2집에서 새롭게 선보인 ‘이몽룡아’ 곡이 시원한 음색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그리고 드디어 엔딩곡이자 앙코르곡은 집에 가기 아쉬운 200여 명의 관객과 역시 집에 가기 아쉽다는 ‘프로젝트 락’이 펼치는 난장의 향연, ‘난감하네 디스코’ 버전으로 마무리되었다.

달빛 아래, 숲으로 둘러싸인 하늘 아래에서 풍류와 난장을 동시에 즐겼던 우리들은 굳이 서로의 소감을 묻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공연 시간 내내 아이들도 어른들도 흥겨움에 흠뻑 빠져든 시간이었다.
“잘 놀다 갑니다.”

허은영

허은영 (許銀寧, Heo Eun-Young)

시민기록단으로 활동 중이며 학산문화원을 통해 ‘일용할 문화적 양식’을 얻고 있는 미추홀구 주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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