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광역-기초 간 지역문화재단의 열린 협치를 위하여
김희식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사무처장)
지역문화를 이야기하다
우리가 지역문화에 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초기엔 지방과 중앙이라는 이분법적 시각 속에 중앙의 문화에 대한 배타적 인식이 강했었고 이는 지역의 이기주의와 단순 균형 배분 논리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지역문화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형식적인 틀로서의 중앙과 지방에 대한 구분이었을 뿐 지역 주민들의 주체적 인식이 함께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1900년대 초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변방의 지역이 아닌 중심의 해체를 향한 주체적 문화운동으로서의 지역문화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역문화는 지역의 지역성과 민족의 민족성 그리고 근대성을 이야기하는 역사적, 철학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지역문화는 한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상호 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적 가치지향을 말하는 것이다. 기존의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시각의 지방이 아닌 역동성을 갖는 문명과 예술, 삶의 총체로서의 생명력 있는 평등한 지역의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지역문화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한 지역이 자기의 문화적 생명력을 품고 문화의 자치와 민주화를 이루며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여 지역문화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지역문화재단의 탄생
지역문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2000년대 초 지역적 자각에 의한 분권과 자치라는 화두를 앞세워 각 지역마다 지역문화재단의 탄생을 이루게 된다. 지역문화재단은 지역문화진흥을 위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설립 운영하는 재단법인으로서 1997년 경기문화재단을 필두로 2023년 현재까지 광역 17개 전지역, 그리고 기초 124개 등 전체 지자체의 60%인 140여 개 재단이 설립, 운영 중이다. 특히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기초문화재단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1)
1) 「지역문화재단의 현황분석 및 변화방향 연구」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공동연구 2022-1 p4
지역문화재단의 현실
또한 각 지역에서 지역문화 활동에 대한 지원기구로서 지역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지역의 문화사업은 이전 시기의 관제 중심의 문화사업 지원과는 많이 달라졌다. 특히 지역사회의 문제해결을 해 나가는 데 있어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은 실로 지역문화의 시대를 실감하게 된다. 기존의 중앙 문예 진흥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것들이 지역과 지역성에 근거하여 실질적인 사업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 광역중심의 지역문화재단은 점차 기초지자체의 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상호 간의 기능이나 사업이 중복되거나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중앙 사업에 대해 경쟁하는 양상을 가져오며 서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기도 한다.
물론 현재 대부분 광역재단은 기존 예술지원이 주요사업이었던 초기 모습에서 관광과 문화산업, 영상까지도 포괄하는 통합된 문화 전달체계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기초는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면서 자치단체장의 관심 사항에 사업을 주력하거나 시설, 축제 관리, 생활문화에서 상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점차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지역문화재단에 있어 광역과 기초의 관계는 상하 관계나 종속의 관계가 아니다. 지역문화재단은 지역문화정책과 실천의 핵심 주체이다. 광역은 광역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기초는 기초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광역과 기초가 존중과 신뢰의 바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칫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지역문화를 무너뜨릴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광역과 기초 간의 협치 모델을 만들어가려는 상호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조직은 그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인적 물적 자기 확장의 조직 증식성을 꾀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지역 안에서 자기 이기주의와 단순 균형 배분논리에 빠져 서로를 배타하는 행위는 지역문화를 확장하고 활성화하는 데 매우 위험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광역과 기초의 협력 방안
최근 전국의 광역문화재단과 지역의 기초문화재단 사이에 협력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 광역과 기초의 협의체 수준의 모습이긴 하지만 한 광역 단위 안에서 상호 역할과 협력 구조를 만들어 간다는 것에 있어서 바람직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지역에서 연대와 협력의 열린 협치를 이룩하려는 각 지역재단의 노력은 한편으로 우려했던 상호 간의 배타성과 지역 간 갈등을 극복하고 창조적으로 지역자원의 한계를 넘어서 지역 이슈에 공동 대응하려는 유의미한 시도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광역문화재단의 연합체인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와 기초문화재단의 연합체인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간의 공동 관심사에 대한 협력은 상호 간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협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아직 두 단체 간의 법제화와 통합에 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상호 협력에 대한 합의 과정에서 재단의 종사자들에 관한 교육 사업이나 공동관심사에 대한 정책 세미나 등 사업 간 발 빠른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진일보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지역문화재단의 내일
지역문화재단은 현재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사업과 조직의 확장과 더불어 지역의 과제에 대한 문화적 해결방안에 있어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이 한층 요구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산의 정부와 지자체의 의존성이나 사업의 모호성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 앞으로 지역문화재단은 조직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닌 문화에 대한 주체적 인식의 변화가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서로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함께 손잡고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김희식 (金熙植. kim heui sik)
시인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사무처장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역임
흥덕문화의집 관장 역임
2008문화의달추진위원회 사무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