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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젊은 문협 만들고파”
신임 인천문인협회장 정경해 시인을 만나다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론티어학부대학 교수)
정경해 (Jeong Kyung Hae, 鄭鯨海)
1995년 《인천문단》 신인상 시부문 대상,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 2005년 《문학나무》 신인상. 2016년 국민일보 신춘문예 「신발」 당선. 시집 『가난한 아침』, 『술항아리』, 『미추홀 연가』, 『선로 위 라이브 가수』. 창작동화집 『미안해 미안해』, 『동생이 태어났어요』. 시산문집 『하고 싶은 그 말』. 인천문학상, 인성수필문학상 수상.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문학석사).
이메일: kore6258@hanmail.net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
이야기는 한 아이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을 따라 충주에서 서울 변두리로 이사 온 아이에게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이의 집은 고향에서보다 더 가난해졌고,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은 녹록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겐 모든 것이 새롭게 신기했다. 그리고 ‘글쓰기’를 만났다.
시인은 그 첫 번째 감동을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글짓기 시간에 발표를 하는데, 난생 처음으로 담임선생님께 큰 칭찬을 받은 것이다. 글쓰기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모를 나이였지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홍은동은 시인이 ‘시인’이 되겠다는 첫 꿈을 갖게 만든 곳이었다. 홍은동 산 중턱, 아버지의 손으로 직접 지은 산 중턱의 흙벽돌집, 때로는 실직한 아버지 때문에 온 가족이 배를 곯을 때도 있었지만, 다정한 이웃 덕에 허기를 면하던 날들과 가난했지만 단란했던 가정…….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의 그 자신을 만든 삶의 자양분이었다고, 정경해 시인은 고백한다.
제2의 고향, 인천으로
정경해 시인이 인천으로 오게 된 것은 좀 더 훗날의 일이다. 1979년에 결혼한 시인은, 1980년 3월에 인천으로 이사하게 된다. 첫 시작은 자유공원 밑이었다. 그 뒤로 열 번을 넘게 이사 다녔지만, 인천을 떠나지 않았다. 인천이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어준 것이다.
시집 『미추홀 연가』는 이러한 인천에 대한 사랑에서 탄생하였다. 어느 날, 문득 그의 머리를 스쳐 간 생각 때문이었다. 인천에서 40년을 넘게 살았는데, 인천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을 더 알고 싶고 인천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천을 알리기로 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시에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을 한 편, 한 편씩 인천 연작시로 이어나갔다.
시간이 멈춘 배다리,
배다리에는 잠들지 않는 이야기들이 산다
햇살이 물고 다니며 풀어놓는 끊임없는 이야기와
달빛에 걸어놓은 숨기고 싶은 속내까지
오래된 외투가 어울리는 마음 넉넉한 헌책방이 있어
언제든지 달려가 글자를 들이켜도 눈총 주지 않아
늘 배가 부른 가난한 발걸음들이 모여 산다
수문통 갯골 배다리 시절 먼 이야기와
싸리재 유랑극단 떠돌이 약장수의 발자취까지
집집이 배다리 역사 줄줄이 몇 두릅씩 달아놓고
밤이면 소주잔을 기울이며
주인 노릇 못한 격랑의 세월에 울분을 토하는
우각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하다
싸리꽃 향기에 취해 극단 패를 따라간 영자와
그녀를 짝사랑한 양키시장 지미 킴의 연애사가
뭉근히 국물 우려내듯 줄어들지 않는 우각리 이야기
벽화 속 오래된 영혼들에 발목이 잡힌,
배다리에는 숨결 퍼덕이며 잠들지 않는 역사가 산다
– 인천 52 「배다리」 전문
시인이 마주보고 살아온 인천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푸근하고 넉넉한 정경이 한 편 한 편의 시에서 묻어난다. 가난한 시인이 어느 곳에 발길을 내딛어도 어느 한 켠이라도 다정하게 엉덩이 붙이고 함께할 수 있는 곳. 바로 시인이 뿌리내린 인천인 것이다.
시집 『미추홀 연가』
(사진 제공: 정경해)
한국근대문학관에 전시된 『미추홀 연가』 수록 작품
(사진 제공: 정경해)
시인이 동경하는 ‘시인’
정경해 시인의 오늘을 만든 삶의 궤적을 들으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시인을 동경하게 만든 그 시, 혹은 그 시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에 정 시인은 두 시인의 이름을 꼽았다. 바로 김기림 시인과 기형도 시인이 그들이다.
김기림 시인에 대한 작가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정 시인은, 김기림 시의 현대성에 감탄했다고 밝혔다. 학위논문을 쓰면서 김기림 시인의 시를 꼼꼼하게 읽어나가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00년 전의 시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시어들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놀랍다고 한다. 이처럼 정 시인은 김기림 시인의 시에서 시간에 녹슬지 않는 시의 매력을 보았음을 강조하였다.
반면 기형도 시인을 통해서는 시의 또 다른 매력을 보았다고 한다. 특히 「안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이 너무나 컸다고 말한다. 한 편의 시에 담긴 서사가, 그리고 그 서사를 통해 전달되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이면에, 시인의 통찰력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시를 통해서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러한 시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진실에, 정 시인은 자신 역시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 그리고 화합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인천문협은 인천작가회의와 함께 인천 기반의 문인들이 소속된 양대산맥이다. 오랜 역사와 함께 많은 작가들이 소속된 단체인 만큼 그 수장이 된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큰 명예일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책임 역시 무거운 자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 시인 역시 두려움과 부담감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사실 정경해 시인이 인천문협의 수장이 된 것은 기록할 만한 사건이기도 하다. 인천문협 70여 년의 역사에 첫 번째 여성 수장을 맞이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 시인을 인천문협의 회장이라는 묵직한 자리로 이끈 것은, 그곳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이번 인천문협의 회장 1차 공모에서는 후보자가 없었고, 정 시인은 2차 공모에 단독 후보로 나와 당선되었다. 그는 실질적인 선거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오랜 시간 인천문협과 함께 해온 만큼 내면에 축적된 마음가짐은 단단했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그는 문협 회원들을 더 높이는 회장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문학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천문협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다짐한다.
그 중심에는 문학과 화합이 있다. 문인협회의 회장으로서 정경해 시인의 각오는 그 처음도, 그리고 그 끝도 ‘글’이라고 말한다. 글 쓰는 사람은 ‘글’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 법이고, 문인이라면 마땅히 글로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문협의 회장으로서 그는, 문협의 모든 활동이 문인들의 글쓰기를 위한 단단한 토대가 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약속한다. 또한 인천문협 회원들이 집필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 충실하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이처럼 그가 꿈꾸는 문학으로의 화합은 모든 회원이 자기 글로 자기 색과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그 자리, 그곳이 바로 인천문협이 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인천문인협회 제62차 정기총회 및 39대 회장 선거 후 단체 사진
(사진 제공: 정경해)
“미추홀문학상(가칭)을 위한 첫 번째 기부자로서 인천문협의 성장을 견인하고 싶습니다.”
정경해 시인의 당선사에서 언론이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가칭 미추홀문학상에 대한 공약이었다. 인천문협은 ‘인천문학상’이라는 수상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이것은 그해에 출간한 작품을 심사하여 가장 우수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그러나 정 시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원들에게 힘을 더하고 싶었다. 그것이 그가 미추홀문학상을 제정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미추홀(인천의 옛 이름)이라는 명칭이 붙은, 미추홀문학상 역시 인천문협을 대표하는 상으로 명맥을 잇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 명예와 수준뿐만 아니라 상금도 인천문학상과 대등하게 유지되길 희망한다.
문학상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심사의 엄정성일 것이다.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한 작가 가운데 그 대표성과 문학성을 충분히 가진 작가를 선정해야만 수상의 의의가 보다 뚜렷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정 시인은 인천을 대표할 수 있는 활동 기준과 함께 여타가 인정할 수 있는 작품성을 가진 작가를 선정하기 위해 심사과정의 공정성에 주력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와 함께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는 것은 역시 수상에 따른 상금과 그 기금 마련이다. 이에 대해 정 시인이 가장 심사숙고했던 부분임을 강조한다. 정 시인은 이 기금 마련에 있어서 자신이 솔선수범하는 첫 기부자가 될 것임을 약속한 바 있다. 인천문인협회의 수장으로서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여러 개인과 유관기관의 기부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더 젊은 인천문협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경해 시인에게 현재 인천문협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이끌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지 물었다. 정 시인은 ‘젊은 문협’이라고 답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인천문협의 회원들 역시 문학 활동의 연륜이 깊으신 분들이 많다. 원로 문인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인천문협을 사랑하고 든든한 전통으로 지탱해주셨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신임회장으로서 정 시인은, 이러한 원로 문인들의 지지에 적극 응답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을 영입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라 말한다.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젊은 문인들이 인천보다는 중앙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풍토를 탓하기보다는, 인천과 중앙 모두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도 회장의 소임 중 하나일 것이라 말한다.
이제 인천문협은 새로운 리더십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신임회장인 정경해 시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더 젊은 인천문협으로의 변화가 이끌어지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