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인천 연극의 유서 깊은 자긍심

제41회 <인천연극제>

황승경 (연극평론가)

인천 예술인들이 공감하고 교류하는 축제 한마당인 ‘제41회 인천연극제’가 4월 11일부터 23일까지 수봉문화회관 소극장과 문학시어터에서 열렸다. 이번 연극제의 대상 수상작품인 극단 십년후의 <애관 “보는 것을 사랑하다.”>는 6월 16일부터 7월 7일까지 제주에서 열리는 ‘제41회 대한민국연극제 in 제주’에 인천 대표로 출전한다. 이번  예년에 비해 가장 많은 극단의 참여한 제41회 인천연극제는 태풍, 해피아이, 동쪽나라, 사람 그리다, 민, 공연창작소 지금, 피어나, 한무대, 대중아트컴퍼니, 십년후,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 등 총 11개 극단이 참여해 시작부터 눈길을 모았다. 이번 연극제는 단순한 본선을 위한 지역 예선의 의미를 넘어 인천 시민들에게 매일 각기 다른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연극축제를 선사했다. 11일 동안 관객은 예술적 감수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다양한 시선과 관점에서 성찰과 사유를 통한 삶의 가치를 반추할 수 있었다.

제41회 인천연극제 포스터

제41회 인천연극제 포스터
©인천연극협회

올해는 인천항이 근대 개항한 지 140주년 되는 의미 있는 해다. 대한민국 근대화를 견인한 인천은 최초 서양식 극장인 협률사가 개관한 도시이기도 하다. 시립극단이 전국 최초로 설립되고 대한민국 연극을 대표하는 걸출한 연극인들을 배출한 도시라는 유서 깊은 자긍심은 인천 연극의 원천이다. 더구나 인천광역시는 ‘2025년 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 개최지로 최종 선정되었다. 대한민국연극제는 6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대연극축제로 인천의 내수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지역 민간극단의 작품은 화려한 무대 장치와 안정적인 연습 기간을 갖춘 공공극단과 같은 잣대로 바라볼 수는 없다. 이번 인천연극제는 신구조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으며, 동시대적인 실험적 요소보다는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풍자, 해학으로 현 시대상에 접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폐회사를 하는 인천연극협회 최종옥 회장

폐회사를 하는 인천연극협회 최종옥 회장
©황승경

대상을 받은 극단 십년후의 송용일 대표

대상을 받은 극단 십년후의 송용일 대표
©황승경

인천 연극이 보다 성숙되고 정제된 연극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중량감 있는 희곡의 육성과 발굴이 시급하다. 이번 연극제 폐막식에서 인천 연극의 원로인 극단 미추홀 김종원 대표의 일갈처럼 일부 공연은 ‘최고의 축구선수가 잔디밭에서 뛰지 못하고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뛰는’ 형상이었다. 1980년대 인천은 많은 신생 극단들이 창단되었고 소극장운동이 활성화되었으며, 대한민국연극제의 전신인 전국연극제에서 잇달아 우승을 차지하는 연극의 황금기였다. 지역 연극의 중심이었던 인천 연극이 당시의 위상을 되살리며 공연 인프라를 확장하기 위해 양적 성적 못지않은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환경 마련이 중요하다. 이번 인천연극제로 입증한 인천 연극의 내재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선 인천 연극의 균형 잡힌 성장을 되짚어야 한다.

[평론가 노트]

진동하는 허상 속 일상: 극단 공연창작소 지금 <각다귀들>
일명 ‘셀럽’이라 불리는 유명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유명인의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사이에서의 논란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각다귀들>은 현대사회의 피폐하고 부조리한 자화상을 조명하고 인식의 각성을 역설적으로 되돌린다.
암묵적인 ‘적정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사생활 보도’라는 타협점이 만들어졌지만 적정선에 대한 기준은 어디인가. ‘알 권리’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행동 중에서 공공의 이익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권리’를 내세워 공인이 아닌 유명인이나 일반인의 사생활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언론을 힐난하면서 대중은 속칭 ‘증권가 찌라시’, ‘연예계 X파일’을 훔쳐본다. ‘궁금증’, ‘호기심’으로 포장해 소비하는 재생산된 사생활은 전파하는 대중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인가. 연출자 이은선은 블랙라이트를 이용한 가면으로 입체적인 무대를 구현했으며 이러한 모순된 사회의 이면을 과감하게 조준한다.
유명 고발 방송프로그램의 인기 PD이자 진행자인 기문(김인철)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연이어 특종을 낸다. 시청률에만 혈안이 된 기문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부인의 임신으로 한적한 11번가로 이사를 온 기문 가족은 이사 첫날부터 음산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지나친 이웃의 관심과 개입은 기문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이들에게 기문은 이미 유명인이다.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인한 오보, 자극적 뉴스로 인해 허위, 미확인 정보가 확산되어 진실을 왜곡, 은폐, 날조, 호도한다. 악화된 저널리즘 환경 한복판에 있는 언론인을 중심으로 인권침해와 타인의 자유 속박 등 유·무형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연극의 제목이자 현대인들을 모두 지칭하는 듯한 ‘각다귀’는 우리의 허상을 표출한다. <각다귀들>은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인의 사회적 책임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동시에 이 뉴스에 열광하며 재생산하는 대중의 속살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인천 공연예술의 행방과 향방: 극단 십년후 <애관 “보는 것을 사랑하다.”>
인천에는 128년 동안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모진 풍파를 고스란히 맞닥뜨리며 자리를 지킨 애관극장이 있다. 1895년에 개관한 ‘협률사’는 일본인들이 인천에 세운 최초의 근대극장 인부좌(仁富座, 1892)에 대응해 조선인 정치국이 세운 최초의 실내근대극장이다. 1911년 축항사로, 1920년대 ‘애관(愛館)’이란 명칭으로 변경되면서 신극뿐 아니라 한국 근대영화사의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역사를 함께 한 산증인이 된 것이다. 애관극장은 인천에 마땅한 문화시설이 없던 식민지 시대 인천 시민들의 설움과 한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주었으며 동시에 청년문화운동이 시발된 예술의 전당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애관극장이 폐관 위기에 처하자 시민단체와 예술인들은 기꺼이 ‘애관극장 살리기 운동’에 동참했고 인천시도 지역적 가치와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극단 십년후는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 ‘보는 것을 사랑’해 온 애관극장의 영광과 질곡의 역사를 무대에 선사한다. 한민국(윤기원)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는 <애관 “보는 것을 사랑하다.”>는 애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극중극 형태로 연극과 영화가 교차된다. 지역성을 수려한 극예술로 무대화시켜 창조적 능력과 향토적 품위를 드높인 작품으로 주인공의 대사가 가슴에 울림이 되어 남는다. “지킬 것은 지켜야 해. 그게 살아남은 자의 도리야!”

40년 전 사회상의 해학적 귀환: 극단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 <쫄병 수첩>
2023년 청년 세대를 대표하는 용어 MZ, Z세대와 대칭되는 586세대라는 용어가 있다. 19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 학번으로 50대 연령이지만 특히 과거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고 운동권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세대를 지칭한다. 현 586세대가 Z세대였던 1982년의 전라도 어느 섬마을이 극중 배경이다. 40여 년 전과 비교해 현재의 정치·문화적 사회상은 상전벽해다. <쫄병 수첩>은 방위병으로 고향에서 군복무 중인 청년들을 내세워 시대적 사회상을 예리하지만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황승경 (Hwang Seung Kyung, 黃 承 景) 연극평론가

평론집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2020)’와 학술서 ‘3S 보컬트레이닝(2013)’을 펴냈고 예술을 통한 성찰이 세상을 시나브로 변화시킨다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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