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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놀이터가 우주와 만났을 때
인천도시역사관 특별전 <놀이터를 부탁해>
강수환 (아동문학평론가)
오늘날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란 어떤 곳일까. 놀이터는 현대 도시를 구성하는 필수적 공간이다. 가령 150세대가 넘는 공통주택이라면 반드시 어린이 놀이터를 설치해야 하는 법령이 존재할 정도다. 공원, 학교, 아파트 단지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놀이터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궁금하다. 어린이들은 그만큼 놀이터를 잘 활용하고 있을까.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북적이며 즐겁게 노는 풍경을 마주한 적이 언제였던가. 어린이를 위해 마련한 장소에 정작 이들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뺑뺑 토성
우주로 미끄럼
인천도시역사관의 특별전 「놀이터를 부탁해: 1980’s 도시의 놀이터」는 놀이를 둘러싼 1980년대 도시 어린이의 생활사 전반을 재현해낸 전시다. 전시장의 중앙에는 당시의 놀이기구들을 재해석한 ‘우주 놀이터’(cosmic playground)가 배치되어 있다. 로켓 모형의 미끄럼틀(우주로 미끄럼), 토성을 닮은 회전무대(뺑뺑 토성), 은하수처럼 굴곡진 철봉(은하수봉), 테트리스 블록 형태를 한 정글짐(테트리스짐+)까지 이곳의 놀이기구는 모두 제각각의 우주를 담고 있다. 실제로 오랜 시간 놀이터는 어린이가 일상의 현실로부터 일정 분리되어 친구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유영하는 무중력의 우주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은 웃고 우정을 나누며 때로는 다투고 화해하곤 했다. 타자라는 행성과의 즐거운 충돌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자기 세계라는 우주를 건져 올리며 조금씩 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놀이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에 해당하는 장소인 셈이다.
은하수 봉
테트리스 짐
물론 곽이브 작가와 이웅렬 디자이너가 우주 놀이터라는 재해석을 수행한 데에는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바로 당시 어린이들에게 놀이터의 기구들만큼이나 크게 사랑받은 비디오 게임이다. 화려한 시청각적 자극을 바탕으로 당대 어린이들을 매혹한 ‘오락실’은 새롭게 떠오른 일종의 전자 놀이터였다. 전시실 한편에는 1980년대에 제작되어 흥행한 전자게임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 작은 오락실에 설 때, 우리는 친구의 플레이를 어깨 너머로 바라보던 그때를 상기하게 된다. “우주 산업의 기반이 된 디지털 시각언어 ‘픽셀’”로 이루어진 그래픽 속에서, 우리는 적을 물리치는 탱크 조종사 혹은 우주비행사가 되고, 위험에 빠진 공주를 구출하는 전사가 되기도 한다. 놀이터에서는 오직 상상의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생성되었던 어떤 우주가, 이곳 전자 놀이터에서는 첨단의 그래픽으로 직접 눈앞에, 심지어 다음 동전을 기다리며 무한히 펼쳐졌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놀이터는 공고했던 우주의 지위를 비디오 게임에 차츰 헌납했다. 서두에 어린이가 놀이터에서 북적이는 모습을 예전처럼 보기 어렵다고 말했는데, 이들이 모습을 감추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부와 자기 계발에 쫓기느라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마도 대표적인 원인이겠지만, 꼭 그뿐만일까. 김기정의 동화 『뭐 하니? 놀기 딱 좋은 날인데!』(낮은산, 2008)를 보면 놀이터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에게게. 재미난 곳이란 게 기껏 놀이터냐?”(69면) “난 4학년이고, 시소는 시시해. 하나도 재미없어!”(70면) 혹시 어린이들이 놀이터를 떠난 것은 이 장소가 이들에게 충분한 재미를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디지털 우주로 향하는 지금의 어린이들을 보면, 이들이 놀이터를 떠났다기보다는 더 재밌는 놀이터를 찾아 헤매는 중이라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더 정확할 듯하다.
하지만 단순히 놀이터만이 문제는 아니겠다. 동화 이야기를 마저 이어보자. 최초에는 시시하고 재미없는 곳에 불과했던 놀이터였으나, 어떤 계기를 통해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급기야 저녁이 오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논다. 더 재밌고 근사한 놀이기구가 새로 생겨서? 물론 아니다. 이들은 이 장소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며, 바깥세상을 보고 싶은 공주가 되고 이를 가로막는 장군이 되어보면서, 바꿔 말하자면 일상의 ‘나’와 분리된 새로운 우주를 창안하고 경험함으로써 놀이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던 것이다. 뻔한 놀이기구들로 가득했던 놀이터는 이 순간 “높다란 담장과 으리으리한 궁궐의 지붕. 그리고 담장 밖에 울창한 숲”(72~3면)이 된다. 결국 문제는 재미없는 놀이터가 아닌, 놀이의 경험 속에서 고유한 우주를 찾는 방법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있었다.
비디오 게임 영상에 푹 빠진 어린이
현실에서 지금의 어린이는 비디오 게임을 통해 우주를 경험하는 것에 더 익숙할 것이다. 이들에게 놀이터는 일상을 벗어나 우주로 향하는 시작점이기보다는, 현대 도시의 풍경 일부를 구성하는 흔한 일상적 공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실감 나는 그래픽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놀이터에서 우리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감각하며 나만의 우주를 생성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우주 놀이터가 전자오락(테트리스)의 설정과 시각 문법 (픽셀)을 참조하여 재해석을 시도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비디오 게임의 영향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 놀이터가 다시 어린이들이 서로의 우주와 마주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우리는 우주 놀이터로부터 읽을 수 있다.
장난감들
학용품들
1980년대의 놀이 생활사를 재현한 이 전시에는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찾아온 부모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 다수는 당시의 놀이터에서 어린이의 얼굴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테다. 놀이터를 매개로 두 세대의 우주가 마주치는 순간이 정겹다. 지금의 놀이터는 분명 1980년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다양해지고 안전해졌으며 세련되어졌다. 그만큼 오늘날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자양분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놀이터의 모습은 오히려 예전보다 활기를 잃어가는 추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부모 세대에 속한 많은 이들은 자신이 뛰놀던 놀이터를 바라보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지난 토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회고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재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필요한 시간, 공간, 경험 등은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다. 놀이터를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이곳을 채우는 경험에 있다. 어린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전하기 위해, 우선은 우리가 그 시절 놀이터에서 발견했던 저마다의 우주를 기억하는 일에서 출발해보는 것은 어떨까.
강수환 (姜受芄, Kang Soohwan)
아동문학평론가, 매체연구자.
xysnp@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