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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 고(故) 이우영 작가가 그린 열차, 하늘을 날다

공연 <협궤열차의 꿈> 리뷰

진나래 (인하대 예술디자인융합 겸임교수)

공연 <협궤열차의 꿈>의 리뷰를 요청받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인 지난 3월 11일, 본 공연에 그림으로 협업을 한 고(故) 이우영 작가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저작권 문제로 괴로워했다는 소식이다. 무거운 마음에 고민도 앞섰지만, 고인에 대한 추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공연이 열린 3월 29일 수요일 오전 소래극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무심할 정도로 화창한 날씨에 은빛으로 빛나는 남동소래아트홀에 들어서자 많은 시민이 공연을 위해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협궤열차의 꿈 홍보물

마티네콘서트 마실 <협궤열차의 꿈> 홍보물
(제공: 남동문화재단)

남동문화재단(대표이사 김재열)이 운영하는 남동소래아트홀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마티네 콘서트 ‘마실’을 개최한다. ‘마티네’란 오전을 뜻하는 프랑스어 ‘마탱(matin)’에서 유래한 말로, 일반적으로 공연이 저녁에 열리는 것과 달리 평일 낮에 하는 공연을 뜻하는데, 여기에 ‘마을’의 방언인 ‘마실’을 접목하여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시간에 편안하게 마실가는 마음으로 문화를 향유한다는 의미로 기획했다는 것이 남동소래아트홀의 설명이다. 소통의 벽을 낮춘, 보다 대중적이면서도 질 높은 공연을 5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지역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한 노력이 엿보인다. 그중 3월의 ‘마실’은 콘서트드라마 <협궤열차의 꿈>으로, 인천을 중심으로 근대 문화 모티브의 창작 콘텐츠를 꾸준히 발표하며 대중과 소통해오고 있는 국악 그룹 ‘앙상블 더 류’가 이우영 작가와 협업하여 2020년 초연한 공연이다.

공연 소식을 듣고, 어린 시절 부모님과 소래포구에 젓갈을 사러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비릿한 내음이 가득한 어시장의 활기에 놀라며 축축하고 비좁은 시장 골목을 눈을 반짝이며 누볐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보여줬던, 친구 부모님이 소래철교 앞에서 찍은 데이트 사진도 눈앞에 스쳤다. 우리 부모 세대의 데이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진이었다. 젓갈과 어시장이든, 가족 나들이나 데이트이든, 인천 사람이라면 대부분 소래철교나 소래포구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 소래와 소래철교를 지나던 열차가 바로 수인선 협궤열차로, 일반 철도보다 폭이 좁은 협궤선에 맞도록 작게 만들어져 ‘꼬마열차’라는 별명이 붙었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에 식민지 물자 약탈을 목적으로 일제가 건설하여 운행을 시작했지만, 이후 소시민의 발이 되어 서민들의 애환을 싣고 내륙과 연안을 오갔다 한다.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1995년에는 이용객이 적어 잠시 운행을 중단하기는 했지만, 2012년 복선 전철로 운행을 재개하였다.

수인선 협궤열차
소래철교

수인선 협궤열차와 소래철교 옛 사진
(제공: 소래역사관)

<협궤열차의 꿈>은 이러한 인천 시민들의 추억이 어린 소래와 협궤열차를 소재로 국악과 뮤지컬, 그림을 통해 근현대사 속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낸 일종의 옴니버스식 콘서트드라마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담아내어 큰 인기를 얻은 만화 <검정 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본 공연만을 위해 그린 따뜻한 일러스트를 배경으로, 김신원, 김백찬, 박경훈, 박한규, 신환희, 엄기환 등이 참여한 창작곡들을 ‘앙상블 더 류’가 수준급 실력으로 연주하며 뮤지컬 배우들과 함께 관람객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 공연은 마치 서사적 음악 앨범의 플레이리스트를 따라 앨범을 한 바퀴 플레이하듯, 한 곡, 한 곡, 한 장면, 한 장면을 순차적으로 들려주고 보여준다.

협궤열차의 꿈 공연
협궤열차의 꿈 공연:2

협궤열차의 꿈 공연 사진
(제공: 남동소래아트홀)

공연이 시작된 이후 가야금과 거문고, 피리, 태평소, 아쟁과 같은 우리 악기가 이렇게 현대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들이 그려내는 장면과 감정들의 서사를 상상하고 있자니 어느 순간 무대 오른편에서 개화기 풍의 옷을 입은 여배우가 나와 청아한 목소리로 ‘좋은 날’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산들바람 부는 봄날처럼 밝고 경쾌한 노래에 관객들은 이미 동화되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여배우의 들뜬 마음은 곧 ‘풍각쟁이’ 오빠를 만나고, 일명 ‘뽕짝’ 느낌의 음악은 이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함께 한다. 이 외에도 공연은 전반적으로 봄날 소래의 설렘과 협궤열차에서의 따뜻한 일화들을 그려낸다.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사람들과 태극기, 투닥거리는 아이들, 풋풋한 남녀와 교복을 입은 학생들, 주전부리를 먹는 단발머리 딸과 그런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버지, 봇짐을 진 아낙네들을 그린 그림들과 음악,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나긋하고도 아련하게 시민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이들의 마음에 따스한 봄바람을 불어넣는다.

故이우영 작가 추모시간

故이우영 작가 추모시간
(제공: 남동문화재단)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작고한 이우영 작가를 추모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마도 세상이 반드시 누군가를 제대로 알아주지는 않기 때문에, 창작 활동을 하다 보면 자신의 창작임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관련은 물론, 스스로나 자신이 만들어낸 작업이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에 대해 어떤 애석하고도 찜찜하고도 소원한, 그런 감각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창작자들은 소진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누군가와 맞닿아 그간의 마음의 보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일제 수탈의 역사가 담긴 협궤열차처럼, 우리 근대 삶의 애환을 그려낸 이우영 작가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야말로 소진되었던 것이 아닐까. 문체부에서는 3월 15일 창작자의 권리 보호 및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제도적 대책을 강화하기 위해 ‘검정 고무신 사태 방지법’을 만든다는 발표를 했다고 한다. 현재 시행되는 실정법이 고칠 점이 많다는 이야기이고, 법이 얼마나 우리의 상식과 떨어져 느린 걸음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유통 사업 대행사의 대표가, 저작자가 아닌 이가 저작재산권을 넘어 저작인격권까지 가져가고자 한 것은 적법하지도 않을뿐더러, 법의 기계적 적용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상식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의 법이 인간적 상식에 얼마나 가깝고 먼지, 또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판단할 수 있지 않은가. 공연 마지막 즈음, 그가 그린 협궤열차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좀더 인간적인 그곳에서는 그에게 억울함이 없기를 기리며, 이와 함께 다른 모든 창작자들의 안녕을 기린다.

마실

남동문화재단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마다 오전 11시 마티네 ‘마실’을 진행하며, 4월 26일(수)에는 라이브 드로잉과 판소리, 서양 음악이 만나는 고전 소설 춘향전의 이야기, 다원예술극 <춘향예화담>이 예정되어 있다. 남동소래아트홀의 상설 프로그램 마티네콘서트 ‘마실’의 공연 일정은 남동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namdongcf.or.kr/user/index.php)

진나래

진나래 / 晋나래 / Narae Jin
다원예술 작가, b.1983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이후 사회학 석박통합과정을 수료하였다. 도시에 비일상적 개입을 하는 ‘일시합의기업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 로컬리서치 기반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비무장사람들’을 공동 설립하는 등, 2012년부터 다원적 방식으로 다방면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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