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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로 다시 보는 한국사

한국 이민사 박물관에 다녀와서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최근 한국 이민사 박물관에 다녀왔다. 한국 최초의 이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멕시코, 중앙아시아, 일본 등 재외 동포가 각각 어떤 역사의 역동 속에서 이주민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하와이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민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스스로 여기던 중에도 ‘사진 신부’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었기에 다소간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이민사에 대해서 정말로 아는 바가 없나? 그간 내가 관심을 두어왔던 여러 형태의 이야기들이 한국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이민의 역사’와 관련되었다고 직시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이민사 박물관을 돌아보는 동안 그간 접했던 여러 텍스트(혹은 만남)를 떠올리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겪고 보고 알아 온 것이 ‘이민사로서의 한국사’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진신부

하와이 이민과 『시선으로부터』

박물관 전시 내용 중에서도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하와이 이민을 보다가 ‘사진 신부’에 이르러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가 생각났다. 하와이에 농장 노동자로 가게 된 이민자들이 그곳에서 정착하고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사진을 매개로 중매 결혼을 하곤 했다는 사실은 역사 교과서에서 언급될 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다. ‘사진 신부’는 이민자 남성의 사진만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고 하와이로 이민을 가게 된 여성을 일컫는 것이면서, 그러한 방식의 결혼 형식을 아우르는 용어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 심시선은 전쟁 중 가족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총살당하는 비극을 겪고, 친척의 도움으로 ‘사진 신부’로 위장하여 하와이로 이민을 가게 된다. 이 소설이 ‘하와이 이민’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단, 이데올로기 전쟁으로서 한국 전쟁의 참상을 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이민자가 되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삶을 톺아보는 데 ‘사진 신부’라는 사실이 차용되고 있음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후 심시선이 독일인과 결혼해 화가로 살아가면서 한국인으로서 가스라이팅과 여성혐오, 인종차별에 시달렸으며, 그것을 자신의 삶 자체로 겪어 밀어나간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이 소설이 곧 ‘사실’은 아닐지라도, 하와이 이민사에서 젠더 경험의 차이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재일조선인과 〈수프와 이데올로기〉

재일 동포와 관련한 전시 공간에 이르러서는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인천에서 매해 개최되는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접했다. 이 글이 발표되는 4월을 맞아, 4.3을 기리는 영화로 언급되어도 좋을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재일조선인 2세인 양영희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주 출신으로 오사카에 살다가 일본 패망 직전 폭격으로 인해 제주로 피난갔던 어머니 강정희는, 제주 4.3의 참상을 경험하고 오사카에 돌아와 조총련에 종신하는 아버지를 만나 결혼한다. 아들들을 북한에 ‘선물’로 보낸 이후 맏아들의 자살을 겪은 데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면서도 남한 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거두지 못하는 부모를 양영희 감독은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남한 정부가 이데올로기를 명목 삼아 제주 양민 학살에 가담했고 어머니가 그 생존자임을 안 이후, 양 감독은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행을 결심한다.

이 영화는 제주 4.3에 대한 이야기면서 비극적 한국사에 대한 생존자의 이야기로 읽힌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읽히는 까닭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시선’이 이 영화를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얼마간 한국사에 대한 이해는 ‘이민자가 아닌 시선’에서의 그것으로 이야기되어 온 바가 적지 않다. 요컨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곳 한반도에 살아온 ‘합일된 정체성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토대로 그러한 ‘믿음’을 재생산하는 것으로서 ‘민족의 역사’가 구성되어온 측면이 결코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재외동포는 한국사를 보증하고 구성하는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미 존재함에도 ‘보이지 않는 존재’ 혹은 ‘우리’라는 ‘경계 바깥의 존재’로 밀려나지는 않았나.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알츠하이머가 가속화되는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 4.3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비자를 발급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한국 전쟁을 전후한 기준으로 오사카에 거주 중인 ‘조선인’의 신분으로 분류되므로, 대한민국에 입국할 때 한시적으로 유효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정체성에 대한 분열 없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기 역사를 ‘아는’ 이 가운데, 이러한 사실을 주지하고 자기 역사의 한 부분으로 사유하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이민사로서 역사를 재사유해야 하는 까닭이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수프와 이데올로기

내가 만난, 독일 이민자

이민사 박물관에는 동아시아 바깥의 이민자에 대해서도 고루 다루고 있었다. 한국인을 간호사, 광부 노동자로 파견했던 독일과 관련한 전시 공간에 이르자, 코로나가 본격화되기 직전 여행을 다녀왔던 일이 새삼 떠올랐다. 여러 도시를 둘러 마지막으로 베를린에 방문했을 때였다. 한 미술관에서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미술관 가드(guard) 중 한 명이 다가와 한국인이냐고 한국어로 물었다. 우리는 그렇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그렇다면서 유독 반가워하는 이 중년의 남성을 보자 궁금해졌다. 파독 노동자로 독일에 와 자리를 잡았다면 저 사람 나이께쯤 되었을까? 여기에 오래 사셨냐 물었더니, 파독 광부로 와 파독 간호사로 온 한국인과 결혼해 손주까지 보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착했다는 뜻이었다. 혹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이미 여기에서 삶의 터전을 깊이 일궈두었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한국에 가는 일이 요원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한두 번 방문한 게 고작이라고.

파독 노동자라는 사실만으로 쉬이 짐작할 수 없는 그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 것에, 그 이후 언제든 한국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게 된 것에, 독일행을 선택한 그의 ‘노동자’로서의 역사적 정체화가 얼마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주워섬기고 있을 무렵, 그는 이 미술관이 예전에는 열차가 정차하는 역이었고, 전쟁 당시 독일이 수탈한 전쟁 물자를 보관하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미술관에 대한 소개에서 그러한 독일 역사에 대한 부분은 안내되어 있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독일이 보여주지 않는 어떤 역사를, 이민자로서 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위의 만남들을 거치며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이 합일된 것이 아니라, 분절된 조각이 한데 모인 것처럼 온통 틈과 균열로 이루어진 비동일적 주체화와 관련돼 있다고 여긴다. 이는 얼마간 개화와 전쟁, 국제 정세와 국가 정책에 따른 민족의 이산(離散)과 관련된 경험에 의한 것이겠으면서도, 나아가서는 오늘날 인간이 주체로서 자신을 사유하는 방식과 관련돼 있다. 우리가 합일된 정체성으로서 자기를 사유하는 한, 경계 밖으로 어떤 존재를 밀어내는 일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내부적 다양성을 포용할 수 없게 된다. ‘타자를 승인하는 일’이 아니라, 타자의 조각이 모여 ‘우리’가 만들어져있음을 생각하는 일. 이것이 오늘날 이민사로서의 한국사를 사유해야 하는 까닭일 것이다.

선우은실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2016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 <<시대의 마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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